"별빛처럼 스러진 저항적 시대 예언자 윤동주를 다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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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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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한국문인협회·(사)한민족평화나눔재단, 윤동주 탄생 100주년 기념 학술대회
새에덴교회 소강석 목사. ©조은식 기자

[기독일보 조은식 기자] 민족시인 윤동주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학술회의가 23일 오후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사)한국문인협회와 (사)한민족평화나눔재단 공동주최로 열렸다.

소강석 목사(시인, 새에덴교회, 한민족평화나눔재단 이사장)는 "저항적 시대 예언자로서의 윤동주"란 제목으로 발표하면서, "윤동주야말로 민족의 아픔과 저항정신을 시로 표현한 저항적 예언자 시인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했다.

소 목사에 따르면, 고대 사람들은 시를 언어예술이기 전에 신전에 임한 신의 이야기로 이해했다고 한다. 왕이 하나님 말씀이나 뜻대로 통치를 하고, 정치를 하도록 가르쳐주고 견제해 주는 사람이 시인이었다는 것이다.

때문에 시인의 가슴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모실 수 있는 신전이어야 했다. 소 목사는 "시인이라면 자기 개인의 서정성이나 감성만을 읊조리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당대의 시대혼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하고, 자기 시 안에 예언자적 메시지가 담겨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소 목사는 윤동주가 예언자적 시인이고 제사장적 시인이라 확실히 표현할 수 있다고 말하고, "그는 제사장과 선지자를 넘어 우리 민족의 가슴에 저항정신을 촉발시키고 독립운동에 보이지 않는 꽃씨를 뿌렸다"고 했다.

일본에서 독립운동을 모의했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재판을 받을 때, 부장판사는 윤동주가 죽어가는 것이 너무 안타까워서 자신의 행위를 한 번만 부인하면 목숨을 구해주겠다고 회유하고 사정까지 했다고 한다. 그러나 윤동주는 끝까지 부인하지 않고 죽음의 길을 갔다.

이 사건에 대해 소 목사는 "그의 삶과 시를 민족의 제단에 화제물로 드린 것"이라 평하고, "그의 시는 저항정신의 꽃이요 독립운동의 정신을 촉발시키고 고조시키는 홀씨가 되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윤동주의 시에 담겨진 저항정신은 어디서 나왔는가? 소 목사는 그것이 철저하게 '기독교 신앙'과 가치에 있었던 것이라고 봤다. 다시 말해 그가 어릴 때부터 배우고 체득해 왔던 하나님 사랑과 나라 사랑의 의식에서 발화했다는 것이다.

윤동주가 태어난 명동촌은 당시 우국지사들과 선각자들이 모였던 총 집합의 장소였다. 윤동주의 조부 윤하현은 부유한 유지요 독실한 장로, 선각자였는데, 윤동주는 조부가 선바위 아래서 독립투사들에게 독립자금을 대 주는 것을 보고 자랐다고 한다.

또 외삼촌 김약연은 명동촌에 학교와 교회를 세운 목사로, 소 목사는 "이런 연유로 윤동주는 어린 시절부터 깊은 신앙과 저항정신, 애국혼을 가슴에 품고 자랐다"면서 "그래서 그는 기독교 신앙을 기반으로 한, 저항정신과 애국혼이 실려 있는 시들을 쓴 것"이라 했다.

소 목사는 "인간의 보편가치와 서정성을 노래한 윤동주를 넘어서, 이제 일제 암흑기를 불운하게 살다 별빛처럼 스러진 저항적 시대 예언자로서의 윤동주를 다시 만나야 한다"면서 "그는 후쿠오카 감옥에서 마지막 죽음을 맞는 그 순간까지, 조국의 독립을 염원했던 애국 저항시인이었다"고 했다.

이어 소 목사는 "우리가 윤동주를 제대로 이해하고 만날 때, 이 시대를 사는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참된 인간의 자화상과 민족의 정체성까지 회복시켜 줄 수 있다고 믿는다"고 이야기 했다.

한편 행사에서는 문효치 시인(한국민인협회 이사장)이 대회사를 전하고, 소강석 목사 외에도 "윤동주의 시에 나타난 종말론적 희망"(류양선) "윤동주에 관한 비평적 관점의 확대와 심화"(송희복) "윤동주의 동시, 그 역사의식과 민족정신"(이승하) 등의 발표가 있었다.

민족시인 윤동주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학술회의가 (사)한국문인협회와 (사)한민족평화나눔재단 공동주최로 열렸다. ©조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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