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양극화가 정말 심각하다. 대형교회와 작은교회, ‘이건 아니다’ 싶을 정도로 심각하다. 한국교회의 가장 큰 현안은 80%에 달하는 농?어촌교회와 작은 개척교회들이다. 대형교회는 몸집이 커지고, 농어촌교회나 작은교회는 점점 힘을 잃고 사라져 가고 있다.
그런 양극화를 극복하고 건강한교회로 나아가는 해답이 있는가? 해답을 찾는다면 미자립교회를 자립할 수 있도록 부축하고 건강한 교회로 세워가는 일에서부터 찾아야 한다.
양극화 극복의 대안은 ‘성장제일주의’가 아니라 '건강한 교회‘세우기운동이다. ’건강한교회‘가 해답이다. 이제 한국교회는 ‘건강한 교회’ 운동을 통해 세상 속에 교회의 교회다움을 회복하며 빛과 소금이 되는 교회의 영광을 다시 드러내야 할 때이다.
설이나 추석에 고향교회나 작은교회 방문운동은 한국교회 전체가 건강한 교회로 가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한국교회만이 아니라 한국사회가 함께 경제적으로나 인적으로 어려움을 당한 농어민들과 그들과 함께 하는 작은교회가 일어설 힘이 도저히 없을 때, 스스로 일어서거나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없을 때, 그들을 일으켜 세워주는 격려와 배려, 이것이 이 시대에 먼저 선 자립교회와 도시교회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선물일 것이다.
매년 설이 지나면 상계감리교회 서길원 목사의 경우 전국의 1,000여명의 목회자를 초청하여 격려하고 매년 100여개의 농어촌 미자립교회를 인적 물적으로 지원하는 작은교회 리메이크를 통해 목회 생태계를 다시 복원하고, 건강한교회의 가치를 창출해, 한 교회의 선한 영향력이 작은교회를 넘어 전국적 네트워크를 가져올 정도로 퍼져 나가고 있다.
성경에 보면 보아스가 곡식을 벨 때에 룻을 위하여 이삭을 주울 수 있도록 배려하므로 그 한 에바로 룻과 나오미가 생계를 유지한 것을 볼 수 있다. 이 땅 백성들이 암울한 오늘에서 더 암울할 것 같은 내일을 바라보며 한 숨 쉬고 있을 때, 참다운 신앙이라면 반드시 그들에게 희망과 용기와 기쁨을 불어 넣어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도 한국교회가 그들에게 희망이 되어주지 못한다면, 그들을 품고 격려와 위로도 하지 못하고 방치한다면 그런 지도자들로 어찌 한국교회의 미래와 희망을 논할 수 있을까?
또 산정현교회 김관선 목사는 고향교회 방문하기 캠페인을 꾸준히 전개하고 있다. 김관선 목사는 “어찌보면 저수지는 물을 가두는데 목적이 있지 않습니다. 흘려보내지 않으면 그 많은 물은 재앙이 될 날이 옵니다. 한쪽에서는 가뭄으로 고통당하는데 둑이 무너질 정도로 물을 가두어 두고 흘려보내지 않는 저수지가 있다면 모두를 불행하게 할 것입니다. 섬기는 교회를 포함해서 웬만큼 힘을 가진 교회나, 한국교회는 그동안 쌓아둔 것을 흘려보내서 새로운 에너지를 만들어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건강한 교회와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어 낼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건강한 교회로 미래를 열고, 보다 건강한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 농어민과 그들을 돌보는 시골 농·어촌의 고향교회, 그리고 작은 개척교회 목회자들에게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배려하고 격려하는 넉넉한 마음이 절실하다.
감리교회의 존경받는 지도자 대치동 성은교회 김인환 목사도 2007년부터 설이나 추석 명절을 즈음해 '고향 교회 방문하기'라는 이색 캠페인을 10년째 펼치고 있다. 소속 교회 성도들이 저마다 고향교회를 찾아 어려운 교회에 힘을 실어주자는 것. 김인환 목사는 평소 "어려운 여건 속에서 꿋꿋이 고향을 지키는 교회와 목회자들을 찾아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우리 신앙의 '못자리'같은 농어촌 교회를 가슴으로 보듬자"고 강조하고 있다.
한국교회의 신앙의 못자리이자 신앙의 뿌리는 시골의 농·어촌교회와 작은 개척교회였다.
그런 저 낮은 곳에서 사랑을 실천하는 사마리아 사람들과 그런 교회들로 채워질 때 한국교회미래는 희망이 있다. 이제 여리고 언덕에서 강도만나 경제적으로 육신적으로 사회적으로 소외당하는 이 땅 백성의 억울한 자리로 가까이 다가가서 그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 상처를 치유해주며, 그들에게 참된 기쁨을 되돌려주는 선교가 절실히 필요하다.
사실 이 시대에 농어촌의 작은 교회, 특별히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고향교회와 목회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한국교회가 함께한다는 그 마음을 전하는 일이 아닐까 싶다. 이 귀하고 복된 나눔과 배려가 있을 때 ‘건강한 한국교회’의 희망을 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