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 11일 오전 한국복음주의협의회(대표 김명혁 목사, 이하 한복협)가 한국중앙교회에서 11월 월례회를 개최했다. 다음은 박삼열 목사(한복협 중앙위원, 송월교회 담임)가 전한 "나의 삶 나의 감사" 발표 전문이다.
"나의 삶과 나의 감사"
가을을 맞아 이런 주제의 시간을 갖게 된 것이 뜻이 있다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 모두가 결국은 그런 고백을 하겠습니다만, 성경 속 인물들을 보면 한결같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대표적인 인물 사도 바울은 자기의 생애를 돌아보면서 모든 것이 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구약의 다윗 역시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시23:6) 라고 하면서 감사의 마음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당연히 그렇겠지요. 다 헤아리지 않아서 그렇지 저 역시도 마지막엔 하나님의 은혜를 꼽다가 하늘나라를 가지 않겠나 생각됩니다.
그런 가운데, 제한된 시간에 맞추어 몇 가지만 적어보려고 합니다.
1. 무엇보다도 그동안 귀한 만남을 주셔서 저의 오늘이 있게 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합니다.
박윤선 목사님을 만나게 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합니다. 박목사님은 제가 다닌 합신의 교장선생님이셨지만 제가 교육전도사, 전도사, 강도사, 부목사를 지내면서 가까이 모신 목사님이십니다. 그분에게서 배운 것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 중에는 내용도 내용이지만, 그분의 분위기 자체가 우리로 경건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게 된 것은 그 모든 것이 실은 그의 성경관에서 나온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박목사, 설교 본문이 정해지면 그 본문을 한없이 읽게. 그러면 본문이 분해가 된다네. 기억하게. 분해 = 해석이네. 인간은 계시의존사색으로만 구원을 얻는다네.”라고 하신 말씀은 지금도 제 목회의 가장 중요한 골간이 되고 있습니다.
김준곤 목사님을 만나게 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합니다. 저는 CCC 출신은 아닙니다만, CCC 출신을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김준곤 목사님의 백문일답, 민족복음화, 전도훈련, 그리고 그분이 만들어 낸 수많은 생명의 언어들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2009년 그분이 하늘나라 가시기 전이었습니다. 인천에서 전도대회를 준비하면서 박성민 목사님께도 상의를 드렸습니다만, 김준곤 목사님을 모시고 말씀을 들었습니다. “어부가 혼자 나가서 낚시를 할 때와 인천의 100교회, 200교회가 함께 출어해서 그물을 던지는 것과는 아주 다르지요. 기도하면서 열심히 해보세요.” 그 해 인천에서는 198개 교회가 함께 전도훈련을 받고 CCC 여름 수련회를 마친 대학생 1,600명 가량이 버스 40대를 타고 와서 한 주간 함께 전도했습니다.
김명혁 목사님을 만나게 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합니다. 김목사님은 제가 아는 교수님 중에 제일 공부를 많이 하신 분이셨습니다. 귀국하신 목사님의 첫 인상은 베이지색 버버리 코트에 창백한 인상의 그야말로 학자 중의 학자이셨습니다. 그러나 곧 알게 된 것이 통합적이고 눈물도 많으신 분이셨습니다. “사랑하는 아들 철원아, 아빠가 너를 대신해서 훌륭한 목사가 될게”라는 글을 읽으며 우리 모두는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그러면서도 너무 한 쪽으로 치우질 수 있는 저를 바로잡아주시곤 했습니다. 어느 해인가 목사님을 모시고 부흥사경회를 했습니다. 마치고 가시면서 “박목사, 너무 잘 하려고 하지마!”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님, 학교에서 저희를 가르치실 때는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하시요!’ 라고 하셨잖아요?” 그랬더니 “그 말도 맞고 이 말도 맞아!”라며 웃으셨습니다. 그 해 우리교회에서 드린 사례금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교회 이름으로 아프가니스탄 고아들을 위해 보내졌는데, 목사님이 그렇게 하셨습니다.
안만수 목사님을 만나게 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합니다. 박윤선 목사님은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박목사, 시중에 전도교재 뭐 없나?” “왜 그러시나요?” “많은 신학자와 목회자가 배출되었는데, 그들이 교회에 가서 성도들이 힘써 복음을 사랑하고 열심히 전도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그러는 중에 당신의 목회의 후임자로 안만수 목사님을 청빙했습니다. 당시 안목사님은 대치동에서 맨손으로 개척 이미 수 백 명의 성도가 모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후로 제가 가까이서 뵈는 안목사님은 정말 전도에 힘쓰시는 분이셨습니다. 같이 비행기를 탈 때가 여러 번 있었는데, 그 때마다 늘 스튜어디스를 전도하곤 하셨습니다. 최근에는 그분의 지도력을 따라 ‘박윤선 주석 성경’ ‘박윤선과의 만남 1,2,3권’을 비롯한 정암의 저서들과 그분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진 ‘개혁신학’의 후대에의 전수의 운동을 정말 감사한 일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저의 선친 박도삼 목사님을 생각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합니다. 선친은 가난한 인천의 구 도심지인 우리 동네 사람들을 정말 사랑했습니다. 당시 피난민이 대부분이었던 우리 동네 주민은 신, 불신을 막론하고 그분의 사랑의 울타리 속에서 자라났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면 반드시 거두니까, 여러분 힘을 내세요!”라던 그분의 자주 쓰신 말씀은, 복음의 우리 동네 버전이었습니다. 장례식이 진행되면서 성도들은 자원해서 “사랑의 씨를 뿌린 농부”라는 제목의 영상을 만들었습니다. 그 영상이 상영될 때 많은 이들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자기들에게 부어진 그분의 평생이 고스란히 생각났던 것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여러분이 계시지만, 제한된 시간에, 위의 열거한 분들을 만나게 하셔서 저의 오늘이 있게 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합니다.
2. 목회가 하나님의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감동의 운동이라는 것을 맛보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보내신 목회지는 인천의 구 도심지입니다. 별로 부유하지 않고, 연세 드신 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약 20년 목회해 오는 동안에 장례예배를 인도한 것이 약 900명 정도 됩니다. 그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성도를 보내고 세우는 일관 관련한 감사의 에피소드를 주시곤 하셨습니다.
박 모 권사님이라고 계셨습니다. 지난 해 60대 후반으로 하늘나라 가신 분입니다. 그분의 남편은 권사님의 40대 중반에 먼저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그 후 아들 둘을 홀로 키웠는데, 가정을 이룬 첫째 아들의 며느리가 몇 년 후에 암으로 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후 엄마 없는 손주들은 다 권사님이 돌보며 키워냈습니다. 그렇게 힘든 세월을 사셔서 그런지, 권사님은 교회 내 동년배 친구들보다 몸이 쉬이 쇠약해지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권사님이 한두 주를 넘기기 어려울 것 같다는 전갈을 받고 저와 제 아내는 심방을 갔습니다. 누워계신 병실에 들어가 잠시 묵도를 한 후, “간호사님, 잠시 커튼을 드리워도 되지요?”라고 묻고 권사님은 누워계시고, 아들과 새 며느리, 그리고 우리 내외는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권사님, 성탄절 찬송 하나 불러도 좋지요? ‘고요한 밤 거룩한 밤...’” “권사님, 이번에는 고난주간 찬송 하나 부릅시다. ‘갈보리 산 위에 십자가 섰으니...’” “자, 그러면 부활절 찬송도 부를까요? ‘무덤에 머물러 예수 내 구주...’” “권사님, 가을의 추수감사 찬송도 하나 부릅시다. ‘넓은 들에 익은 곡식...’” “권사님, 그러면 이제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를 사랑하셔서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예수님처럼 작은 십자가를 주셨던 것을 감사합니다. 이제 남모르는 평안을 주시며 인도해 주셔서, 영화로운 천국에 가서 모두를 만나게 해 주세요...”하며 심방을 마친 후 일어서려는데, 권사님이 작은 목소리로 “목사님, 귀 좀 이리로 대주세요.”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귀를 가까이 갖다 댄 저에게 권사님이 나직이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님, 저의 평생의 최고의 예배였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권사님은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목회는 정말 감사한 선물인 것 같습니다.
김 모 권사님이 계십니다. 얼마 전 하늘나라로 간 그녀의 남편은 보통의 한국의 남성이었습니다. 약한 모습은 잘 안보이려고 하고, 그러니 말 수가 적었습니다. 아내 따라 교회에 나왔는데, 표현이 없으십니다. 그런데 병으로 곧 세상을 떠날 것 같은데, 권사님이 생각할 때 남편의 신앙을 잘 모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구원의 확신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는 겁니다. 그래서 서울 보훈 병원을 찾았습니다. 병실에 들어가 역시 커튼을 쳤습니다. 그리고는 이야기를 시작했어요. 그동안 수고 많았다고... 열심히 사셨다고... 아내가 착하지 않느냐고...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아내가 당신을 교회로 인도하려고 애쓴 마음 이해하냐고... 다 안다고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그 배후에 하나님의 사랑이 계신데 그것 아셨냐고... 아신대요... 우리는 다 죄인인데, 하나님은 독생자를 보내주셨는데, 그런 말씀 들은 것 기억나느냐고요... 다 기억난대요. 이제 천국가면 예수님 만날 텐데, 착한 아내를 지키고 계시는 주님 만나고 싶지 않느냐고... 그렇게 하고 싶대요. 그럼 이제 부르시면 가겠느냐... 그렇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정말로 감사하다고... 주님만 의지하고 따르며 천국 가게 해 달라고...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데 하나님께서 작은 종이지만 한 귀퉁이에서 사용해 주시는 게 정말 감사합니다.
교회 안에는 수줍고 소심한 여성들이 언제나 꽤 있습니다. 교회마다 주방 군기가 억세잖습니까. 그래서 보통은 억세고 외향적인 여전도회원 중에 회장도 되고 주방의 메인 주걱을 잡고 진두지휘하곤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수줍고 소심한 여성들이 꽤 많은 겁니다. 그런데 그런 여성일수록 담임 목사의 사모가 다가서면 너무 황송해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 아내가 다가갔습니다. 그리고는 몇 명을 모았습니다. 이렇게 말을 시작했습니다. “여러분은 아름다우세요, ‘작은 누룩들’이세요. 성경에는 ‘누룩’이라는 말이 부정적으로 쓰일 때도 있지만, 아주 긍정적인 것으로 쓰일 때도 있어요. 여러분들은 ‘아주 좋은 작은 누룩들’이에요. 우리 조용히 엽서 쓰는 일을 합시다. 시어머니 장례를 마친 착한 며느리에게... 여름성경학교 마친 후 교사들에게... 연말 당회를 마친 장로님들에게... 구치소에 가 있는 어느 집사님의 아들에게...” 몇 년이 지난 지금 그 ‘작은 누룩들’은 교회 안의 연세 많으신 한나회 노아회 어르신들의 주일 간식을 제공하고 있고, 전국 구치소와 교도소 20여개의 100여명의 수감자들과 엽서를 주고받습니다. 물론 때로는 힘겨운 부탁이 오기도 하지만, 그 때마다 기도하면서 주님 주시는 힘으로 잘 감당해 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감사합니다.
우리 교회는 차이나타운 바로 옆이고 근처에는 공단지역도 있습니다. 그래서 외국에서 시집온 다문화 부인들이 좀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 매주 토요일이면 8개 나라에서 온 40여명의 외국인 부인들이 그들의 자녀들과 함께 모이고 있습니다. 이 일은 제 아내가 책임자가 되고 여러 성도들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토요 다문화 학교를 통해 가능한 최고의 교육기회를 제공하려고 힘쓰고 있습니다. 공교육에서 처질 수 있는 아이들이기 때문에 개개인을 품는 일에 부교역자들의 아내들이 총동원되고 있습니다. 그에 대한 비용은 교회에서 나가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세컨드핸드 숍 – 파랑새’라는 작은 가게를 만들고, 성도들의 옷과 넥타이 등을 기증받아 거기서 수익금을 만들고 있습니다. 시부모와 관련한 한국문화, 법률상담, 요리강습 등 해마다 아이디어를 위한 회의를 끊임없이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런 중에 우리교회 성탄절 행사는 ‘다문화 성탄파티’로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매해 12월 초가 되면 제대로 된 성탄파티를 엽니다. 그러면 그들의 한국 남편과 가족, 그리고 후원자들 하면 약 300여명이 모여서 ‘기쁘다 구주 오셨네’를 부릅니다. 아, 주님의 은혜가 거기에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금년이 벌써 3년 째, 지역의 목사님들과 뭐 하나 시작하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함께 중구청장을 만나러 갔습니다. “이곳은 우리나라 개항지요 기독교 선교사들의 입항지인데 성탄절에 등 하나 달기 조심스러운 게 말이 되겠습니까. 거리에 크리스마스 장식을 합시다.” 그랬더니 청장의 말이, 하늘의 귀인들이 방문한 것 같대요. 그렇지 않아도 애를 많이 쓰지만 여기는 구 도심지, 사람들의 발길이 그리 많지 않아 힘들고 속상한데, 어떻게 하면 되겠냐고요. 구비에서 예산을 마련해 달라고 했습니다. 뜻있는 교회들도 얼마씩 모으겠다고요. 그래서 원도심지 거리를 약 1km 여 성탄장식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별이 빛나고, 눈이 내리고, 동방박사, 베들레헴 마굿간 등. 구청장은 신이 나서 인공 눈 쏘는 기계도 2개나 구입해서 메인 트리 지역의 건물 두 곳의 옥상에 설치했습니다. 그리고는 해마다 추수감사절이 지난 토요일 저녁, 우리 모두는 ‘기쁘다 구주 오셨네’를 목청껏 부릅니다. 성도들이 너무나 좋아합니다. 생각차, 커피, 초코파이를 많이 준비해서, 지나가는 이들이게 나누어 주면서 “메리 크리스마스”라며 거리전도를 하는데, 이것만큼 좋은 방법도 없는 것 같습니다. 지난 해 24일 저녁에는 윤형주와 조정민을 불러서 크리스마스 캐롤 싱얼롱을 했습니다. 교회마다 중창단, 합창단 등 재능기부를 하면서 캐롤의 밤을 엽니다. 동네의 분위기가 많이 바뀌고 있습니다. 구청에 들어가면 공무원들이 인사를 합니다. 상인들이 목사님을 좋아하는 것은 물론이고요.
그밖에도 노회 내 몇 교회 목회자가 함께 “우리 교회학교 살리고 가자!”하면 시작한 일, 최근에 생각하게 된 ‘우리 교단 아담한 교단이지만, 정말 좋은 교단이구나...’라고 생각하게 된 점, 아직도 하고 싶은 일이 많은 것 등, 모두 다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과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제한된 시간에 몇 가지만 나열해 보았습니다만, 하나님의 은혜는 한량없는 은혜요, 다 꼽기 힘든 은혜라고 생각됩니다.
나의 삶과 나의 감사는 앞으로도 끝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귀한 기회를 주신 하나님의 사랑 그리고 한국복음주의협의회, 고맙습니다.
/글=한복협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