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으로 국가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도 바라지도 않았으며,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들이 지금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였다. 어찌하다가 우리 정치가 이렇게 추락하는가? 모든 국민들은 분노를 넘어, 우울하기까지 하다.
일련의 사건들이, 국민이 직접 선출한 대통령에게서 비롯된 것이라서 더욱 그렇다. ‘설마’하며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던 생각이, 대통령의 입으로 실토되는 것을 보면서 무너졌다. 그간의 언론보도가 얼마나 진실에 가까울까? 또는 정말 사실일까에 대한 의문들도 부질없이 무너졌다.
지금 국민들의 마음은 크게 무너져 내렸다. 아니, 절망하고 있다. 대통령에게 사적(私的)으로 가까이 있던 사람이 국정에 관여한 흔적이 분명해지며, 거기에 상상하기 어려운 범죄적 비리까지 드러난 마당이라, 어떤 말로도 현재 상황을 변명하기 어렵게 되었다.
급기야 대통령은 4일 대국민 담화를 통해서, ‘국민 여러분께 깊이 머리 숙여 사죄 드린다’고 하였다. 대통령의 담화 내용에서 표현된 단어를 살펴보면, ‘사과’ ‘송구’ ‘잘못’ ‘책임통감’ ‘자괴감’ ‘죄송’ ‘용서’라는 말들이 반복되고 있어, 얼마나 한 개인의 잘못된 행동이, 국가적 혼란을 야기한 것인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국민들로서는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를 듣고 있는 것도 슬프다. 성공한 대통령의 자취가 국가적 자랑이지, 어찌 실패한 것을 좋아할 리가 있는가? 대한민국 대통령의 몰락은 그 자신에게도 더 할 수 없는 불행이겠으나, 국민들에게도 불행한 일이기는 마찬가지이다.
우리 국민들은 여성 대통령의 등장을 자랑으로 여겼다. 정치 선진국인 미국보다, 또한 중국과 일본에도 없는, 우리 정치가 민주화를 넘어서, 선진화의 진입이라고 인정받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현 사태는 순수하지 못한 정치권의 선동과 대치와는 다르게, 시민들로 하여금 연일 분노케 하고, 심지어 대통령의 최종 책임까지를 요구하는 상황은 매우 곤혹스럽고, 아프게 다가오고 있다.
그렇지만, 당장 대통령 한 사람이 물러나는 문제의 여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가 처한 엄위한 현실을 어떻게 잘 해결해 나갈 것인가의 문제이다. 국가안보는 정치적인 수사(修辭)가 아닌, 그야 말로 국민생존의 문제이다. 경제도 더 이상 추락해서는 안 된다.
지금 우리나라는 19세기 한반도를 둘러싸고 벌이던 열강들의 각축장의 재판(再版)이라고 본다. 그런 측면에서, 작금의 위험한 국제질서와 관계를 절대로 가벼이 보아서는 안 될 것이다.
지금 국정최고의 책임자와 정치 지도자들은 국민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정치가 무엇인지, 숙고해야 한다. 반드시 국가적 혼란은 피해야 한다. 현금(現今)의 정치사적 혼란이 큰 비용을 치른 후에 얻어지는 것이라면, 국가와 사회에 큰 피해를 주는 것은 물론, 대한민국 국민 모두를 피해자로 전락시킬 것이다.
대통령은 담화문에서, 스스로 책임감과 함께, 필요하다면, 검찰 조사에 응하겠으며, 수사 당국에는 철저하고 신속한 수사를 하도록 하겠다고 다짐하였다. 이것이 약속대로 지켜지고, 누구도 사사로이 국정에 개입하는 일이 사라지며, 국가 원수 주변에서 이권을 챙기는 일이 완전히 사라지기를 바란다.
우리 국민들은 슬기로운 민족이다. 1980년대 군사독재 시대를 마감시키고, 이웃나라에서 ‘쓰레기통에서 장미가 피어나겠는가’ 라며 조롱하던 일들을 부끄럽게 하였고, 정치적 민주화와 경제 선진화를 동시에 이뤄 주변국들에 부러움을 사도록 한 민족이다. 이처럼 우리 국민들은 국가가 위기에 처해 있을 때, 국가 사랑의 숭고한 정신으로 힘을 합하고 지혜를 모았던 민족이다.
우리 국민들은 정치권의 이익을 위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진정 국가의 미래와 국민들을 위한 것이 무엇인가를 깨닫고, 함께 헤쳐 나가기를 바란다. 우리 국민들은 정치적 선동가나 짝퉁 정치적 메시야를 결코 원하지 않는 것이다.
풍전등화와 같던 조국 독일을 위하여 눈물로 호소하던 피이테(Fichte)의 ‘조상들과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후손들을 두고 맹세’ 하던 진정, 애국 애족의 목소리를 내는 지도자를 찾고 싶은 것이다.
이제 대한민국을 누구보다 더 사랑하는 우리 기독교인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 기독교인은 누구의 잘못을 말하기 전에, 내가 국가를 위해서, 위정자를 위해서, 국가와 사회 지도자를 위해서 눈물로 기도했는가를 돌아 볼 일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일반은총인 인류의 역사는, 인생들의 일을 통해서 거울로 보여주신다. 더 중요한 것은 성경에서 무엇을 말씀하시는가? 국가적 위기 때에 어려운 문제들 앞에 당시 신앙인들은 어떻게 대처해 나갔는가를 알려 주신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당대 사람들과 조상들의 죄까지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는 모습을 보였다. 느헤미야 선지자는 망하고 무너진 조국을 위해 울었다. 그는 할 수 있는 능력을 다하여, 예루살렘의 무너진 성벽을 중수(重修)하였다. 이것이 참 신앙인의 모습이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지 못한 것, 스스로의 죄에 대하여 회개하지 아니한 것, 지도자들을 향하여 바르게 할 것을 요구하지 못한 것에 대한 ‘통회하는 눈물의 기도’가 있어야 한다.
결과를 탓하고, 원망하고 시비하는 세상적인 방법으로는, 일부 개인적 목적을 이룰 수 있을지는 몰라도, 거룩한 큰 뜻을 이루지는 못한다. 어찌 일반 정치가들처럼 우리 기독교인들이 손가락질을 먼저 하겠는가? 요나의 말처럼, 이 큰 풍랑을 만난 것을 나의 탓으로 돌리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한다.
국민들의 실망을 희망으로 바꾸시고, 슬픔의 눈물을 닦아주시는 분,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 우리 하나님께 기도하자. 그 분께 지혜와 능력을 구하자. 지금은 애국의 외침이 필요한 때이다. 기도의 무릎을 꿇어야 할 때이다.
인류 보편적 진리이며, 현대국가 대부분이 헌법에 적시한 대로, 국가 권력은 국민들의 손에 의하여 창출된다. 따라서 그 위대한 결정들이 국가에 퇴보가 되거나 위기가 되지 않도록 지혜와 뜻을 모을 때이다. 국민의 손으로 뽑은 대통령이 끝까지 책임을 지라고 말해야 한다. 그렇게 하도록 좀 더 기다리며, 차분하게 미래를 위해 대처해 나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