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의 어느 봄날부터, 나는 문산에서 남북의 평화통일을 위해 기도하며 목회하는 내 동생 백경삼과 기도 친구들인 이기환 김영식과 함께, 한 달에 한 번 철원으로 기도 소풍을 간다. 감리교 목사 이상욱이 남한의 북쪽 끝 <철원제일감리교회>에서 시골 교회의 연세 많은 어른들과 지역교회 목회자들과 더불어 매주 목요일 11시에 통일기도회를 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난 후에, 한 번 방문했다가, 한 달에 한 번 동참하기로 했던 것이다. 이 기도회는 '복음' 통일 기도회이다. 오직 기독교의 십자가 복음으로 남북통일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통일신학이 분명한 기도회이다.
사실 나는 그 몇 달 전부터 수시로 철원에 가곤 했다. 왜냐하면 그 곳에 <국경선 평화학교>의 정지석과 그의 동역자 전영숙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해서 헌신할 피스메이커를 길러내겠다는 간절한 기도와 열정이 그 학교를 시작하게 하였고, 한완상, 서광선 이양호를 비롯한 많은 이 땅의 크리스챤 리더들이 자원하여 이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명강의의 한 꼭지씩을 감당하여 왔다. 예수 복음의 핵심은 바로 평화(샬롬)이고,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은 반드시 역사 속에서 평화를 만드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평화신학이 분명한 학교이다.
철원은 참 아름다운 곳이다. 특별히 정지석과 그 제자들이 매일매일 오르며 기도하고, 철원의 토박이 그리스도인들과 수많은 예수제자들이 이상욱과 이영호의 안내를 받아 수시로 오르며 평화와 복음 통일을 기원하는 <소이산>에서 바라보는 북쪽의 풍경은 철마다 장관이다. 황금물결이 일렁이는 그 너른 평원과 저 멀리 북으로 보이는 평강고원의 지평선, 그리고 크고 작은 산들의 어울림은 이 곳이 바로 이스라엘 정탐꾼들에게 보게 하셨던 그 가나안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정말 풍요롭고 평화스러운 에덴과 같은 땅이다. 인간들이 그 땅에서 어떤 분탕질을 하였든, 그 하나님의 땅은 여전히 평화롭고 풍요롭다. 그래서 우리는 그곳에서 하나님을 또 다시 믿고, 우리의 소망을 얘기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 땅 한 가운데에는 한국전쟁 당시 그 처절했던 고지전의 현장인 백마고지와 아이스크림 고지가 있다. 열일곱 열여덟 살부터 스물 몇 살의 남북한 젊은이들과 중국과 미국의 몇 만 명 젊은이들이 이 곳에 장대비처럼 쏟아져 내린 포탄에 맞아 사지가 찢기고 불에 타버렸다. 하늘로부터 휘휘 던져진 그 포탄들은 당시에 북한 땅이었던 그 곳의 <노동당사>와 <철원 제일 감리교회당>도 때려 폐허로 만들었다. 소이산에서 내려와 그 주변 땅을 걷다 보면, 여전히 지뢰 매설을 표시하는 가시철 경계들이 곳곳에 보이고, 1950년 12월 24일, 같은 날 미군 폭격기에 의해서 무너져 버린 공산당의 노동당사와 기독교 교회 예배당의 잔해가 보인다. 전쟁은 그러한 것이다. 전쟁은 공산당의 꿈도 교회당의 기도도 다 헛된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오직 죄와 악의 승리일 뿐이다. 정당한 전쟁은 결코 없다. 승자도 있을 수가 없다.
이 땅, 철원의 어떤 농부는, 남북으로 나뉘어진 북쪽 철원과 남쪽 철원의 주민들이, 서로를 기뻐하며 떡 잔치 벌일 날을 고대하고 있다. 그 형님은 북쪽의 사람들이 하늘로부터 내려온 빗물을 그들의 산과 골짜기에서 정성껏 모아 남으로 흘려 보내주어서 올 해 농사도 잘 지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북쪽의 평강고원이 선물한 감자로 빚은 떡과 남쪽 철원의 그 기름진 토양이 선물한 오대쌀로 친 떡을 가지고, 내년 어느 날 궁예의 마당에서 만나 한바탕 풍악을 올려보자고 한다. 정말로 재미없게 적들의 동태만 감시하던, 오피와 지피의 남북 젊은이들도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달려 내려와 족구도 하고 씨름도 하고 줄땡기기도 하면서 신나게 놀아보자는 것이다.
정은 씨와 근혜 누이가 이거 좀 할 수 있게 도와 주면 좋겠다. 핵폭탄이나 싸드 같이 위험한 것은 이 땅에서 치워버리고, 아랫말 윗말 함께 모여 잔치벌일 궁리나 해 보면 참 좋겠다. 어차피 우리 끼리 그냥 하면 될 텐데, 뭐 그리 어려운지. 그렇게 하기 힘들면, 이장님들끼리 만나서 상의할 수 있게 도와주든지. 그냥 끼리 끼리 놀게 하면 그만인데. 그게 평화이고, 통일인데.
/글·사진=평통기연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