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칼럼] 한국은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거치면서 국토 전체가 황폐화되 어 다른 나라의 원조 없이는 버틸 수 없는 세계 최대의 빈곤국 중 하나였다. 오죽 했으면, 6·25전쟁을 총지휘했던 미국 맥아더 장군 조차 “100년쯤 지나야 이 나라 경제가 제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을까?
그러나 한국은 특유의 근성과 부지런함으로 1962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시작으로 불과 20여 년 만에 세계가 놀랄 만한 경제성장을 이뤄냈다. 1인당 국민소득은 1962년 87달러에서 1979년 1693달러로 20배 가까이로 증가했고, 지금은 국민 소득 2만불, 세계 경제규모 10위를 기록하고 있으니, 많은 이들이 이를 독일의 ‘라인강의 기적’에 비유하여 ‘한강의 기적’이라 불러왔다.
그러나 그 한강의 기적에 구멍이 나기 시작했다. 성수대교와 삼풍 백화점 붕괴 사고로 많은 이들이 ‘한강의 기적’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밤을 새서라도 일하는 한국인의 근면성의 어두운 이면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한국인의 빨리 빨리 근성이 이제는 안전을 무시한 채 무리하게 공사기간을 단축함으로써 부실공사를 야기하는 주범이 되었다.
단기간에 큰 성과를 내려는 근시안적 사고가 사회 곳곳에 팽배해 있다 보니 세월호 침몰과 경주 마우나리조트 붕괴, 구의역 스크린 도어 사망사고 등, 부실로 인한 피해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러한 사고에 대한 원인 규명과 반성보다는 빨리 또 다른 성과를 만들어 이러한 문제들을 덮어버리고자 한다.
얼마 전 필자는 언론을 통해 기독교 한국 루터회가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루터 전집”을 제작하기로 하고, 일차로 2017년까지 25권을 출간하기로 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루터의 저작을 한국어로 접할 수 있는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그 보다 짧은 2-3년 안에 25권의 책을 번역 출간하기로 했다니 가히 ‘한강의 기적’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루터교를 사랑하는 같은 루터란으로 한 가지 염려스러운 점이 있다. 한국 루터회가 번역을 위해 참고하고 있는 것은 루터 전집 영문판(Luther’s works: American Edition) 인데, 총 55권으로 되어 있는 루터 전집 영문판은 독일어와 라틴어로 되어 있는 바이바르 판(Weimar Edition, WA)을 1955년부터 1986년까지 약 30여년에 걸쳐 번역 출간한 결과물이다. 그런데 사실 이것도 WA 의 약 1/3 정도만 영어로 번역된 것으로 여전히 영어권 목회자들조차 루터전집에 접근하기 힘든 부분들이 남아있다. 이 때문에 미국 컨콜디아 출판사는 56권에서 82권까지 루터 전집의 출간 계획을 세워 매년 평균 한 권씩을 출간하고 있다.
루터 전집 영문판(LW) 55권의 편집인을 맡았던 펠리칸(Jaroslav Pelikan)과 레만 (Helmut T. Lehmann)은 전집 서문에서 이런 경고성 메시지를 남겼다. “루터의 저술들은 한번에 통째로 전부다 번역될 수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 그 만큼 장기적인 계획과 인내를 가져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
이번에 한국 루터회가 발표한 루터 전집 번역 일정은 영문판 번역 일정에 비해 약 1/10 의 시간을 단축시킨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과연 루터 전집의 한국어판 출간은 또 한번의 ‘한강의 기적’을 이룰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될 일이다.
■필자인 정진오 목사는 루터 대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대학원 신학과에서 석사와 박사를 취득했다. 이스라엘 히브리대학교 Research Fellow와 예일 신학대학원 Visiting Scholar를 거쳐 현재 미국 시온루터교회 (LCMS) 한인부 담임목사로 재직중이다. 연락은 전화 618-920-9311 또는 jjeong@zionbelleville.org 로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