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우드는 "선교사 파송해 달라"는 한국인의 호소를 듣고 발걸음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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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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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장로교가 파견한 언더우드 선교사

[기독일보 이수민 기자] 한국 최초의 선교사로 알려진 언더우드는 왜 한국에 왔을까? 최근 한국교회사학연구원에서 열린 제217회 월례세미나에서 정운형 박사(연세대 교회사)는 "원두우의 선교지 결정 과정 및 출발"이란 발표를 통해 그 과정을 자세히 소개했다.

정운형 박사는 언더우드 선교사가 조선의 선교사로 임명되고 출발하는 과정에는 극적인 요소들이 있다고 했다. 언더우드가 작성한 '회고'에 따르면, 올트만스(일본선교사)에게 조선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그의 선교지는 인도였다. 그런데 일 년 뒤, 그는 조선으로 파송해주기를 바라는 선교사 지원서를 제출했다.

언더우드는 이수정(한국 최초로 주기도문을 번역했던 성경번역자)의 글을 읽기 몇 달 전까지도 자신의 선교지가 어딘지를 모른채 하나님의 뜻을 찾았다고 한다. 그때 미국에서 한국에 선교사를 파송해 주기를 바라는 이수정이 쓴 글이 1884년 1월 26일 자 The Illustrated Christian Weekly를 통해 미국에 처음 소개됐다. 언더우드는 이수정의 글을 읽고 자기를 조선으로 부르는 음성으로 여겨 선교사를 지원하는 것으로 응답했다.

미국 북 장로교회 해외선교부는 1884년 7월 28일, 언더우드를 조선의 선교사로 임명했고, 언더우드는 11월 11일 목사 안수를 받고 곧바로 교단을 옮겼다. 그는 뉴욕에서 출발하기 전, 미국을 시찰 중인 일본 군사시찰단을 우연히 만났으며, 군사시찰단과 같이 샌프란시스코 항에서 출항하는 우편 증기선 '시티 오브 뉴욕'에 승선해 1885년 1월 25일 일본 요코하마에 도착, 한국 선교의 문을 열기 시작한다.

한편 논찬자로는 류금주 교수(교회사, 서울장신대)가 수고했다. 그는 "언더우드 행적과 관련해 기존 연구들의 불명확성과 근거가 없는 것, 잘못 기술한 논점들을 궁구해 바로 잡았다"면서 연구에 대한 의미를 부여했다. 또 행사 전 예배에서는 정판식 목사가 "배운 바의 확실함을 알게 하라"는 주제로 설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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