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7월15일 터키에서 쿠데타가 일어났다는 뉴스가 전 세계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총성이 울려 퍼지며 공항이 폐쇄되고 보스퍼러스 해협을 잇는 다리의 통행이 차단되고 “쿠데타군은 헌법질서와 민주주의, 인권과 자유를 다시 세우기 위해서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을 선포합니다”라는 놀라운 메시지가 쿠데타군에 점령된 국영방송을 통해서 흘러나왔을 때 모두가 쿠데타는 성공되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휴가차 자리를 비웠던 에르도안 대통령이 귀환화면서 SNS를 통해서 “나는 민주적 절차를 통해서 국민의 의해서 선출된 터키의 대통령이다. 온 국민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서 거리로 나와서 민주질서를 파괴하려는 쿠데타 세력과 맞서 달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그 메시지를 보고 거리로 몰려나온 시민들은 탱크 앞을 육탄으로 저지하면서 쿠테타는 6시간 만에 실패로 막을 내렸다. 혹자는 너무나 싱겁게 끝나버린 이 쿠데타 시도를 에르도안 대통령이 자신의 입지를 공고히 하기 위해서 일으킨 자작극이라고 까지 말하기도 한다.
쿠데타는 실패했고 에르도안 대통령은 다시 대통령궁으로 돌아왔지만 사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 쿠데타가 페툴라 귤렌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고 단정하고 그의 추종세력들을 대규모 숙청하고 혹시라도 이런 쿠데타가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의 뿌리를 뽑아내면서 강경 이슬람주의 쪽으로 가고 있다.
그는 7월20일 국회의 동의를 얻어 3개월간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국가 비상사태는 대통령에게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할 수도 있는 특별 칙령을 선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데 이는 법률과 동일한 효력을 가진다. 그는 페툴라 귤렌의 해로운 세균들의 잔당들을 일망타진하기 위한 조치라고 하면서 마구잡이로 체포 구금 및 숙청을 통해서 터키를 자신의 원하는 국가로 만들어 가고 있다.
최근까지 6만 명을 숙청했으며 군 장성들 총370명 가운데 3분의 1이 넘는 149명을 포함한 군인 1700명을 강제 전역시켰고 1천5백 명의 대학장들을 포함한 교육자 1만5천명을 해고시켰으며 2만1000 명의 사립학교 교사의 교원자격증도 취소했고 공무원 9천명을 해고했다. 터키 정부는 27일 뉴스를 통해 “뉴스 통신사 3개와 TV방송사 16개, 신문사 45개, 잡지사 15개, 출판사 29개 등 언론사 130 여개에 폐쇄 조처를 내렸다”고 방송했다.
서방세계는 언론탄압을 자제할 것을 강력하게 시사했지만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것은 터키 국내 문제임으로 간섭하지 말라. 나는 다만 쿠데타의 잔류세력들을 정리하는 중이라”고 일축했다. 터키 내무부에 의하면 쿠데타 이후 군인, 경찰, 교사, 판사 등 쿠데타에 연루된 것으로 의심을 받고 체포되어 조사를 받는 사람들이 6만 명이며 앞으로도 계속 수사 선상에서 그 실체가 드러날 것이라고 한다.
터키를 이해하려면 아무래도 터키의 건국의 아버지 아타투르크(케말 파샤)를 이해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오토만 제국이 600년 이상(1299~1923) 세계 이슬람의 통치권을 가진 칼리프 국가였지만 그는 1923년 10월29일 터키의 독립을 선언하고 칼리프제도의 폐기를 선언했다. 그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터키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며 1934년 터키 의회는 그의 이름 “아타투르크”는 영원히 다른 사람이 사용할 수 없도록 제한해 놓았으며 그의 이름을 말이나 글로 모독하면 처벌할 수 있는 법까지 만들어 놓았다.
그의 개혁은 상상하기 힘든 규모였다. 칼리프 제도를 포기한 것만 해도 대단하지만 그의 교육 개혁 역시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그는 서양의 교육학자들을 불러와 터키의 교육제도를 바꿨으며 학교를 건립하고 초등학교를 무료로 운영하며 모든 국민은 의무적으로 교육받도록 제도화했다. 또한 교육에 있어서 남녀의 차별을 제거하고 정치와 종교를 분리했다. 빼놓을 수 없는 그의 업적 중의 하나는 그동안 사용해 오던 아랍어 알파벳의 사용을 금하고 새롭게 만든 변형 라틴어로 터키의 모든 글자를 바꾼 것이다.
또한 그는 여성 복장의 자유화를 선언했고 공공장소에서 히잡 착용을 금지했으며, 이슬람식 달력 사용을 금하고 서양식 달력을 사용토록 했으며 모든 이슬람국가들처럼 금요일을 휴일로 지키던 것을 일요일을 휴일로 지키도록 했다. 이슬람 성직자들이 정치와 사회와 교육계에 간여하던 모든 것을 분리시켜 종교교육은 이슬람 사원에서 해야 하며 일반 교육이 이루어지는 학교에 종교인들이 간여하지 못하게 하였다. 이슬람 성직자들의 강력한 반발이 있었으나 그는 이 모든 것을 극복하고 세속주의 이슬람의 길을 유지해 왔다. 이를 케말리즘이라고 하며 지금까지 이 세속주의 이슬람 체제를 수호하는데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은 터키의 군부였다.
이번의 쿠데타 이전에도 터키에서는 1960년, 71년 80년 97년 등 여러 차례 군부가 주도하는 쿠데타가 일어났었다. 세속주의를 지향하는 아타 투르크의 노선을 벗어나 강경 이슬람 주의자들이 득세하게 되면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강경주의 통치세력을 권좌에서 축출하고 세속주의를 확립하고 다시 선거를 하여 2~3년 후에 통치권을 국민들에게 돌려주는 식으로 터키의 세속주의는 그 명맥을 유지해 왔다.
그런데 이번 쿠데타는 매우 어설픈 구석이 많이 보인다. 지금까지 보아왔던 군부의 쿠데타라면 육해공군 해병대의 모든 군부와 합동참모부 등 일관되고 통일된 행동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그런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것을 사전에 계획된 자작극으로 보기에는 사상자가 너무 많았다. 7월17일 발표된 터키 외교부의 보고에 의하면 반란세력 100명 이상과 시민 190명이 이번 사고로 사망했다고 한다. 만일 자작극이었다는 증거가 드러난다면 에르도안 대통령은 무고한 시민 190명의 사망에 대한 책임을 지고 국제사회에 해명을 하고 물러나야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철저히 준비도 안 된 쿠데타를 왜 강행했을까? 짐작컨대 에르도안 대통령이 페툴라 귤렌의 세력을 대대적으로 숙청하고자 하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군부의 핵심인물들이 사전에 감지한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미처 체제를 정비하고 절차를 밟을 겨를도 없이 더 늦으면 고스란히 앉아서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는 상황을 오판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대부분의 국민들은 세속주의를 지향하는 터키식 이슬람이 편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많은 국민들은 에르도안 대통령이 강경 이슬람화 체제로 돌아가고자 하는 시도를 우려하고 있다.
이를 익히 알고 있는 일부 군부 요인들은 ‘제대로 준비되지는 않았지만 일단 쿠데타를 시작하면 국민들은 이슬람화를 싫어하고 세속화를 원하기 때문에 급히 자신들에게 유리한 상황으로 전개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에르도안을 목숨 걸고 지지하는 원리주의 무슬림들은 맨몸으로 쿠데타군을 막아서며 저항했으며 결국은 그들을 무력으로 제압하거나 사살한다면 민심이나 국제여론은 급격히 자신들에게 불리한 상황으로 돌아갈 것을 알고 있는 쿠데타 군은 함부로 자신들을 저항하는 원리주의자들을 과격하게 진압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결국은 6시간 만에 주도 세력이 손을 들고 투항함으로 쿠데타는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그렇다면 에르도안 대통령이 그렇게 제거하고 싶어 하는 페툴라 귤렌은 어떤 인물인가? 그는 세속주의 무슬림을 표방하고는 있지만 원래는 원리주의를 추구하는 에르도안 대통령의 가장 든든한 동역자로 2001년 에르도안이 정의 개발당을 창당할 때부터 서로 돕고 의지하는 사이였다. 귤렌은 지난 2008년 미국의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가 선정한 ‘세계 최고 100대 지성’ 투표에서 1위를 차지해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이슬람 사상가다. 1999년 지병을 치료하고자 미국으로 이주한 이후 현재까지 펜실베이니아주 세일러스버그에 거주하고 있는 그는 터키 이슬람주의자들의 정신적 지주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귤렌은 봉사를 바탕으로 이슬람의 가치를 알리는 ‘히즈메트(Hizmet·봉사란 의미)’운동을 이끌고 있다. 150개가 넘는 기관 및 단체의 수백만 명의 추종자들로부터 받은 기부금으로 학교, 싱크탱크, 언론사 등을 운영하며 인재를 양성해오고 있다. 케냐부터 카자흐스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국적의 추종자들은 수입의 5~20%를 히즈메트와 연계된 단체에 기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히즈메트를 통해 성장한 인재들은 다시 정·관계와 기업·미디어 분야에 진출하며 광범위한 ‘귤렌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귤렌의 현대 이슬람 사상은 이슬람을 설득력 있게 미화시키고 있으며 서방세계에서 인정할만한 인권수준을 주장하면서 전 세계에 1,000개가 넘는 귤렌 학교, 무지개 학교 등이 운영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귤렌 계통의 레인보우국제학교등 귤렌 계통의 기관과 단체가 10여 곳이 설립 운영되고 있다. 귤렌은 지난 2001년 에르도안이 정의개발당(AKP) 창당에 나섰을 때 적극 지지했으며, 이슬람주의를 기반으로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정착시킨 에르도안의 ‘터키식 모델’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귤렌의 지지와 후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그랬던 두 사람의 사이는 에르도안이 AKP 당규까지 바꿔가며12년간 3번에 걸쳐 총리로 재직하면서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고, 대통령에 취임해 정치체제를 내각제에서 대통령 중심제로 바꾸려 하면서 완전히 틀어져 지금은 '정적' 관계가 됐다. 귤렌은 지난 2014년 3월 파이낸셜타임스(FT)에 기고한 칼럼을 통해 “행정부의 작은 분파 하나가 나라 전체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며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새로운 헌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권력을 독점해 온 에르도안의 공식 퇴진을 외친 것이다. (2016.7.17. 조선일보)
이에 에르도안은 막강한 귤렌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서 그의 측근들을 숙청하기 시작했고 이번에 쿠데타를 계기로 귤렌과 연관된 모든 인사들과 기관들의 뿌리를 뽑아버리고자 하는 것이다. 심지어는 그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어도 그의 사상에 동조하는 세력은 자신에게 해로운 세력으로 간주하고 퇴출시키려 하고 있다.
이제부터 터키는 이전의 터키가 아니다. 6.25 때 풍전등화와 같았던 우리나라를 돕기 위해서 1개 보병 여단을 파병하여 전사 721명, 부상 2,147명, 실종 175명, 포로 346명의 인명 손실을 겪었던 고마운 나라 터키는 급격히 강경 이슬람 국가로 변화되어 가고 있다. 터키는 한 때 수백 년 동안 전 세계 무슬림들을 통치하던 나라였다. 에르도안은 칼리프나 술탄 제도를 다시 부활시키려고 하지는 않겠지만 그 화려했던 이슬람의 옛 영화를 동경하고 있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강경 이슬람화를 제지시키고 세속주의 이슬람을 견지하는 세력으로서의 터키의 군부는 이제 날개 잘린 새가 되고 말았다. 앞으로도 국가 비상사태가 해제되려면 2개월 이상을 기다려야 하고 그 후 마음만 먹으면 3개월을 연장할 수 있다. 이제 에르도안의 독주를 막을 사람은 없다. 어리석은 터키 국민들은 오랫동안 곤두박질하던 경제를 에르도안이 살려놓았다고 그를 지지했지만 이제 터키는 돌아오지 못하는 강을 건너고 있다. 아타투르크의 세속주의 대혁명을 뒤집어엎고 강경 이슬람주의로 돌아가고 있다.
여기서 잠깐 이란의 역사를 상기시키고자 한다. 이란은 팔레비 왕 때 경제가 흥왕해서 중동의 파리로 불리던 나라였으며 이란 여권을 가지고 있으면 어느 나라든 비자를 요구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맘 호메이니의 이슬람 혁명을 받아들여 원리주의 이슬람국가가 된 후에는 국민 경제가 파탄이 나고 혁명 직전 미화 1달러 당 70리얄 선이었던 환율은 지금 31,000 리얄이 넘었다. 즉 화폐개혁 없이 물가가 30년간 430배 이상 오른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란 국민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 보라. 팔레비 왕의 세속주의 이슬람에서 이슬람혁명을 통해서 샤리아(이슬람율법)로 통치하는 원리주의국가로 선회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 이란 사람은 거의 없다.
이 말을 하는 것은 세속주의 이슬람에서 강경 이슬람주의로 변해가는 것은 이란의 경우가 증명하듯이 결코 국가발전과 국민들의 행복에 도움을 줄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더구나 우리나라와는 형제국가처럼 지내는 나라인지라 터키의 변화는 매우 민감한 사안이다. 터키는 한남동 모스크의 리모델링을 위해서 필요한 300억이 넘는 엄청난 돈을 쾌척하겠다고 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 원리주의 이슬람의 자금이 들어와 둥지를 틀면 한국의 이슬람이 터키의 강력한 영향을 받게 되고 자연히 강경 원리주의 이슬람으로 빠져들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현실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한국교회는 깨어서 원리주의 이슬람의 자금이 한국에 수혈되는 것을 지혜롭게 차단해야 할 것이다. 급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이슬람의 영향력이 점점 더 강력해지는 이때에 정치를 하고 국가의 전진을 위한 조종간을 잡고 있는 대통령 이하 국가의 관료들이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지혜롭게 조언해야 한다.
그들은 이를 귀담아 들어야 유럽처럼 속수무책으로 비참하게 당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돈을 탐내서 무슬림관광객들을 많이 끌어들이고 그들의 비위를 맞추는 정책을 택하는 것은 지렁이 살점을 탐내다가 낚시 바늘을 삼키는 것과 같은 어리석은 짓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래야 우리 가족들과 한국교회를 지킬 수 있으며 대한민국의 안보와 미래의 행복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 위 글은 한국이란인교회 홈페이지(4him.or.kr)에서 가져온 글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