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의식과 경제성장의 불균형이 초래한 결과
세계 어느 국가에서 시련과 전쟁 그리고 제국주의의 열강 가운데 강한 애국심과 정신력으로 버틴 나라는 한국 이외에는 유래가 드물 것이다. 그 만큼 아픈 기억 속에서도 불구하고 살아남아야 한다는 의지가 ‘한강의 기적’을 이루게 하고 마침내 이 사회는 놀라운 경제성장을 이룩했다. 전쟁 후, 국제 사회의 원조를 받던 가난한 나라 대한민국은 경제대국으로 성장하여 세계 선진 국가들과 견줄 만큼의 놀라운 경제 발전을 가져왔다.
그러나 이런 발전의 이면에 숨겨진 과거는 너무 어두웠다.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무조건 잘 살아야 하고 남보다 앞서야 했던 민족성은 빠른 경제 성장을 가져오기는 했지만, 그 과정에서 뼈아픈 페이지를 남겨야 했다. 경제 성장과 발전이란 교과서에는 ‘윤리의식’이란 단어는 없었다. 그 만큼 윤리의식의 부재상황 가운데 경제 성장 과정은 부패와 비리가 만연할 수 밖에 없었고, 과정보다 결과가 중요시 되는 것은 너무 당연한 결과였다. 현재 한국 사회는 물질적 풍요는 얻었으나 정신적 빈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이 사회는 투명한 과정과 절차보다 성장을 위한 결과가 중요했고 마침내 ‘결과지상주의’를 낳고 말았다.
2016년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부정청탁금지법)’이 마침내 오랜 논쟁 끝에 헌법재판소의 합헌으로 시행을 앞두고 있다. 소위 ‘김영란법’이라고 불리는 부정청탁금지법은 한국의 윤리의식의 부재상황을 단면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 동안 한국 사회는 빠른 경제 성장을 위해서라면 공정한 절차와 과정을 무시할 뿐만 아니라 윤리의식을 외면했다. 성장과 이윤 추구를 위해서라면 윤리적 판단과 의식은 안중에도 없었다. 이로 인해 사회 곳곳이 비리와 부정 그리고 청탁과 뇌물로 병들어 가고 있었다. 특히 높은 윤리의식을 가져야 할 고위 공직자와 언론인, 교육학자를 포함해서 이 사회 구성원 다수가 비리와 청탁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정의란 무엇인가?
조나단 에드워즈(J. Edwards)는 온전한 도덕적 삶은 인간이 만든 규칙과 법 체제에 단순히 표면적으로 순응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바 있다. 그는 인간의 규칙과 제도를 넘어 포괄적인 마음의 행동이 중요하다고 했다. 예수님도 당시 율법자들을 비판하고 입술로는 찬양하지만 마음으로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로부터 멀어져 있다고 비판했다. 예수는 마음의 행동이 도덕적 행위의 근원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가르친 것은 나의 마음에서 비롯된 온정이 사회의 빛과 소금으로 확산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올바른 것과 도덕적인 것이 외부의 제도나 규칙에만 무조건 의무적으로 따르기 이전, 마음과 타자에 대한 사랑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성경에서는 가르친다.
마이클 샌델(M.Sandel)은 《정의란 무엇인가?》의 책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이 주제는 한때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샌델을 세계 석학 반열 이상으로 대접하는 시대가 있었다. 당시의 인기가 이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한국 사회가 그 만큼 정의롭지 못했다는 것과 정의에 목말라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사례였다. 그 동안 사회 시스템의 투명하지 못한 과정과 공직자들의 비리 등으로 사회는 몸살을 앓았다. 샌델은 ‘정의란 무엇인가?’를 제시하면서, 자유주의 경제체제에서 빈익빈 부익부, 불공정, 돈으로 모든 것을 살 수 있는 자본주의를 비판했다. 특히 그는 “정의란, 윤리, 합법성, 법률, 자연법, 종교, 공정함 등 윤리의 위배에 따른 처벌 등에 바탕을 두고 내리는 도덕적 옮음(rightness)의 개념”으로 보았다. 샌델은 정의 속에 특히 ‘분배 정의’를 제시하고 형식적인 정의가 아니라,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면서 동시에 공동체의 덕(virtue)과 ‘좋은 삶’에 기여할 수 있는 결정이 정의로운 것이라 제시했다. 샌델이 말한 공동체의 덕은 개인의 지나친 행복에만 치우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행복이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 전체의 유익하고도 연결된다는 것에 주목했다. 샌델은 개인의 행복과 공동체 전체의 행복을 위해서는 부패와 청탁이 없어야 하고, 공정한 분배에 따른 정의로운 사회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영란법과 클린사회(Clean Society)
헌법재판소가 공직사회의 부패 척결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김영란법의 당위성을 인정하였다. 하지만 일부 조항에서 과잉입법이라는 지적이 제기되어 법 개정작업을 통해 조정이 이루어질지 주목된다. 이제 한국 사회는 부패척결과 부정청탁의 그늘에서 벗어나 새로운 클린 사회(clean society)로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앞으로 이 사회는 제도적 장치와 규제에만 지나치게 의존할 것이 아니라, 제도적 정비 이후 보편적인 인류애를 도모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보다 더 성숙한 도덕적 사회는 제도나 벌금 때문에 ‘윤리적 삶(ethical life)’을 사는 것이 아니라, 나와 타자의 상호관계 속에서 서로 이해해 주고 돕는 ‘사랑’과 ‘보살핌’에서 비롯된 윤리의식이 자리 잡히는 곳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다. 사회의 모든 구성원은 나의 존재감이 소중한 것처럼 타자의 존재감 역시 소중하고 나처럼 그들도 대우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으로 돌아가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 필자인 김광연은 생명윤리, 서양철학, 기독교윤리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는 생명윤리학자이다. 현재 배아복제, 인간복제, 유전자 정치에 몰두하고 논문과 글을 쓰고 있다. flowersinlak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