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칼럼] 요즘 나는 기상하면 안양천을 돌며 운동 하는 것이 이제 습관화 되었다. 어제도 여전히 자전거로 한강변을 돌다가 기어를 높이려고 5단 기어를 넣은 것이 화근 이었다. 그것은 자전거 브레이크가 고장 난 것이었다.
주행을 멈추고 자력으로 고쳐 보려고 해도 듣지를 아니해서 뒤 부분을 손으로 끌고 가려니 거리가 만만치 않을 뿐더러 주위에 자전거 수리점이 있을 리도 없다.
한참 끌고 오다 힘이 부쳐 자전거를 버리고 올까 생각 하다가 오랫동안 사용하던 자전거여서 정도 들고 친해졌던 터라 버릴 수 없다. 땀을 흘리며 양천구 신월동에 까지 와서 결국 수리를 하니 마음이 놓이게 된다.
글 서두에 이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현재 브레이크가 고장 난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이다.
그 동안 고위 공직자를 임명하기 전에 적격 여부를 챙겨보는 청문회라는 것이 있는데 단골로 등장하는 것이 부동산 투기, 세금 탈루 본인이나 자녀의 병역 기피 등이었다.
최근의 여러 가지 보도 내용은 굳이 들추지 않더라도 우리 사회 지도층들의 멈출 줄 모르는 사욕 채우기 행진은 서민들의 사기를 떨어트리고 어려운 시기에 더욱 삶을 힘들게 하고 있다.
마치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동차와 같이 욕망의 질주를 멈추지 못하는 경우와 같다. 욕심은 분수에 넘치게 무엇을 탐하거나 누리고자 하는 마음이다.
나도 자전거의 기어를 좀 더 높이려는 데서 사고 난 것처럼 말이다. 분수에 넘치는 것은 다 사고가 나게 되어 있다.
2톤 트럭에 5톤을 실으면 차가 고장 나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남보다 빨리 가고자 하는 욕심에 과속하면 교통사고로 본인은 말 할 것도 없고 남에게 피해를 준다. 욕심 부린다고 해서 다 갖는 것도 아니요 욕심 부려 얻은 것을 끝까지 보관 할 수 있는 보장도 없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서 만나를 먹을 때도 욕심을 부려 이틀 분을 가져오면 하루 분은 썩고 말았다고 한다.
결국 욕심을 부려 보았자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오히려 욕심 때문에 죄를 짓고 죄 때문에 망하게 된다.
얼마 전 부터 유명 가수 J씨의 그림 대작 문제가 세인의 관심 속에 회자 되고 있다. 그는 실제로 노래로 또는 그림으로 벌어들이는 돈은 엄청난 것이다. 그의 노래를 나도 즐겨 부르기도 하였고 미국에서 신학을 하고 목회자의 길을 걸을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 존경을 보내기도 하였다.
그런데 무엇이 부족 했던지 그를 존경하던 많은 분들에게 실망을 안겨 주게 되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전에 읽어 보았던 한시가 기억난다.
이미 가득한 그 만 못한 일이고
이미 세워진 그 날을 오래 보존키 어려 우리라
금과 옥이 집안에 가득하니 그걸 어찌 다 지킬 것인가?
부귀하면 교만하기 쉽고 또 재앙을 당할 지니
공을 세우고 나면 뒤로 물러남이 곧 하늘의 법도일 지니
목회를 오래 동안 하신 존경하는 선배 목사님이 한국교회를 빗대어 하는 말이 “한국교회는 벽돌 바벨탑을 쌓는 일을 멈추고 이제는 복음의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는 글을 읽어 보았다.
긍정을 보낸다. 다문화 센터에 부임하한 후 하나님이 맡겨주신 사명으로 알고 열심으로 일하는 중에 좀 더 크게 넓혀 보자 하는 욕심이 생긴다. 브레이크가 마모되는 것은 아닌지?
수리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빈 그릇에 더 많은 물건을 채울 수 있듯이 나의 마음 그릇은 무엇으로 채워져 가고 있는가?
우리 사회의 지위 높은 분들과 관심을 받고 교계의 지도자들이 멈출 수 있는 용기 비워둘 수 있는 여유는 부족한 것은 아닐까? 앞으로 나아가는 것도 중요 하지만 제어 장치가 바로 설수 있을 때 한국 교회는 희망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4~15)
주일 학교 때 암송했던 말씀이 어느 때보다 진지하게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