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카드묵상] 사랑한다는 말이 어떻게 하면 가장 잘 통할 수 있을까?
목사님이 자기를 사랑한다고 느낄 때 하나님의 사랑을 더 잘 느끼게 되겠기에 가나안교회의 중고등부 학생들과 함께 활동을 하게 됐을 때 열심히 '이메일'로 의사소통을 해보았습니다.
그런데 이메일이 통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직접 '전화'를 하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시도해보았습니다. 학생들이 나보다 더 바쁜지 전화통화도 별로 만족스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시도한 것이 핸드폰으로 '텍스트'를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직통이었습니다. 텍스트를 보내면 약 1분 안에 답장이 옵니다. 거기에 덤으로 부모님들이 저에게 "우리 아이가요, 목사님이 텍스트 보낸다고 신기해 하고 좋아해요!" 하며 기뻐하는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학생들에게 가장 잘 통하는 사랑의 언어를 찾게 된 것입니다.
성경을 펼치면 하나님이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말이 꽉 차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을 잘 알아듣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사람도 많습니다.
하나님은 아담 가족과 잠시 '직접 대화'를 하셨지만 자손대대로 내려가면서 그 길이 막혔습니다.
노아의 홍수 후에 하나님은 다시 아브라함에게 '직접 대화'를 시도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잘 듣다가도 못들은 척 했고, 스스로 귀를 막아버렸습니다. 그러자 모세와 같은 중재자를 통해 '중재 대화'를 시도했지요.
그래도 너무 많은 사람들이 딴 길로 가자 '율법'을 통해 대화하셨습니다.
그러나 결국 율법으로 사랑의 언어를 삼기에는 무리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우리와 똑같은 육체를 가지고 오셔서 사람들의 쉬운 언어로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십자가'와 '부활'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해주셨습니다.
이 언어들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힘있게 통하게 되었습니다.
사랑의 언어를 찾는 것은 시행착오가 있습니다. 그것을 배우는 것은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새로운 방법을 찾아갈 때 언젠가 "와우! 바로 이것이구나!"하는 날이 올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