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칼럼] 오래 전 전도하기가 쉽지 않은 때에 지방의 섬에서 신앙생활 하다가 자녀를 따라 교회 근처에 이사 온 권사님 한 분이 교회를 나오셨다.
얼마동안 교회 봉사에 열심 하던 분이 갑자기 교회를 그만 두겠다고 한다. 후에 들리는 소리로는 목사님도 ‘생명나무’에 대해 잘 모르시는 것 같은데 계시록을 바로 알아야 하는데 참 아쉽다는 말이 전해온다.
평생 목회의 길만 고집하고 걸어왔는데 ‘어떻게 해서 이런 말이 전해 오는가?’하고 본인의 믿음에 점검해 보게 되었다.
20세기의 광포한 독재자 히틀러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이 지구상에는 문화를 창조하는 우수한 민족과 문화를 파괴하는 열등 민족과 남의 문화를 모방하는 민족이 있다. 독일의 게르만 민족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문화 창조의 민족이다. 현대는 우수한 민족이 세계를 지배해야한다. 독일은 인류를 지배하고 지도할 역사적 사명과 책임이 있다.’
그는 급기야 이러한 잘못 된 신념에 기초한 믿음으로 마침내 세계대전을 일으키게 되는데 이일로 인하여죄 없는 자들 이 얼마나 많은 피해를 입었던가.
성경을 부분적인 것을 픽업해서 자의로 해석하는가 하면 잘못 된 맹신주의 신앙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알아야 한다.
우리의 어떠한 믿음 인가를 점검해 보아야 한다.
첫째는 경신(經信)은 깊이 생각하지 않고 경솔하게 믿는 것이다. 정규 신학 훈련을 거치지 않은 지도자를 믿고 따르는 맹신 주의에 빠진 경우이다.
얼마 전에 어느 세미나에서 강사의 설교 가운데 한국 교회의 위기를 말하면서 목회자들이 강단에 신발을 신고 올라가는 경우를 들면서 한국교회의 위기를 말하는 것을 보았다. 자신의 성경 읽는 것을 자랑 하면서 하루 30장 이상 읽지 않는 목회자는 목회자 자격이 없다고 몰아친다.
나는 평생 그렇게 못한 목회자이기에 대꾸 할 염치도 없지만 분명 그분은 자기의 의를 들어내고 있음에 마음이 씁쓸하였다.
주님은 자기의 의를 주님의 의보다 더 들어내는 바리새 주의가 교계를 혼란케 하고 있다.
둘째는 미신 신앙으로 어리석고 나약한 인간의 종교 형태이다.
그리고 셋째는 맹신이다. 이성적 판단력이 없는 맹신은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고 덮어 놓고 믿으라고 한다.
젊었을 때 기도원의 강사가 회중들 앞에 따지지 말고 ‘덮어놓고’ 믿으라는 외침이 귀에 선연하게 들려온다. 한편으로 긍정적인 면도 인정 하지만 폐해도 많은 것 같다.
넷째는 광신이다. 이것은 신앙의 가장 저급하고 가장 나쁜 형태이다.
광신주의자는 이성과 관용의 정신이 결여되어 자신의 신앙 자기의 종교만이 옳고 바르다는 것 까지는 좋은데 지나쳐 아집과 독선에 독단에 빠지는 경우는 충격 적이다.
그는 절대로 남의 얘기를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참 믿음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나의 삶과 죽음이 전적으로 하나님 안에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확신이요 수용이다.
또한 자신의 한계를 인정한다는 뜻이요, 사람은 결코 홀로 설수 없다는 것을 시인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영으로 평화의 도구로 거듭난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신앙이란 관람석에서 무대 위에서 연출하는 배우들의 몸짓과 말에 울고 웃는 것이 아니라 시나리오를 몸으로 실현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일에 열심 있는 사람은 믿음이 깊은 사람이요, 남을 사랑 할 줄 아는 사람이다. 나의 믿음의 점검해 보니 솔직히 낙제 점수 수준은 면한 것 같아 스스로 위안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