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닮고 싶은 존경하는 신앙의 선배님"은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님입니다. 제가 서울고등학교 2학년 학생일 때 어느 여름 날 아침 남대문 네거리에 있던 서점에서 「사랑의 원자탄」이란 책을 사 들고 남산 숲속에 올라갔습니다. (그 곳은 제가 평소 새벽 기도 후에 거의 매일 올라가서 3,40분 동안 성경보고 기도하던 장소입니다.) 그날 저녁이 될 때까지 하루 종일 그 책을 읽으면서 울고 또 울고, 기도하고 또 기도한 일이 있었습니다. 자기 몸을 돌아보지 않고 나병 환자들을 그렇게도 극진하게 사랑하며 섬긴 사랑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사랑하는 두 아들을 총살한 원수 같은 공산당 젊은이를 불쌍히 여겨 용서하고 양자로 삼은 사랑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순교와 천국을 그렇게도 사모한 순교와 천국 사모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저는 울고 또 울었습니다. 그 후부터 손양원 목사님은 "내가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고 본 받고 싶은 신앙의 스승님"이 되었습니다. 제가 예일대 신학대학원을 졸업할 때 받은 에드워드 흄 휄로우십 상금의 대부분을 총신에 보내면서 손양원 목사님 기념 장학금으로 써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의 순교 60주년을 기념하던 2010년, 순교 60주년 기념 예배를 전국의 일곱 곳에서 드렸는데 그 준비와 심부름을 거의 제가 맡아서 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본래 이기적이고 정욕적이고 비판적이고 배타적이고 위선적인 죄인인데 성 프랜시스와 손양원 목사님과 한경직 목사님 등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과 섬김과 희생의 스승들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면서 사랑과 섬김의 부스러기를 아주 조금이라도 이어받기를 소원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반일, 반북, 반모슬렘의 입장을 지녔던 배타적인 사람이었는데 차츰 일본과 북한과 모슬렘 형제들에 대한 포용적이고 우호적인 입장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의 너무너무 귀중한 기도와 고백들을 인용하는 것으로 저의 글을 대신하려고 합니다.
"주여 애양원을 사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나로 하여금 애양원을 참으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랑을 주시옵소서. 주께서 이들을 사랑하심 같은 사랑을 주시옵소서. 오 주여, 나는 이들을 사랑하되 나의 부모와 형제와 처자보다도 더 사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차라리 내 몸이 저들과 같이 추한 지경에 빠질지라도 사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만약 저들이 나를 싫어하여 나를 배반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저들을 참으로 사랑하여 종말까지 싫어 버리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 주여, 내가 이들을 사랑한다 하오나 인위적 사랑, 인간적 사랑이 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사람을 위하여 사랑하는 사랑이 되지 않게 하여 주시고 주를 위하여 이들을 사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보다는 더 사랑치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여, 내가 또한 세상의 무슨 명예심으로 사랑하거나 말세의 무슨 상급을 위하여 사랑하는 욕망적 사랑도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다만 그리스도의 사랑의 내용에서 되는 사랑으로서 이 불쌍한 영육들만을 위한 단순한 사랑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 주여, 나의 남은 생이 몇 해 일지는 알 수 없으나 이 몸과 맘 주께 맡긴 그대로 이 애양원을 위하여 충심으로 사랑케 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저 영혼이 불쌍해서 어쩌나, 내 아들들은 죽어서 천국에 갔지만, 안재선은 죽으면 지옥 갈 텐데, 저 영혼이 불쌍해서 어쩌나. 그를 살려야 한다. 그를 용서해야 한다. 그를 사랑해야 한다." "동희야 내 말 잘 들어 봐라. 내가 무엇 때문에 5년 동안이나 너희들을 고생시키면서 감옥 생활을 견뎌 냈겠니?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기 위함이 아니었겠느냐? 제 1,2 계명과 함께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도 똑같은 하나님의 명령인데 내 어찌 이 명령은 순종치 않는단 말이냐. 원수를 사랑하라는 명령에 순종치 않는다면 과거 5년 간의 감옥살이가 모두 헛수고요, 너희를 고생시킨 것도 헛고생만 시킨 꼴이 되고 만다. 그러니 동희야, 가만히 생각해 보아라. 그 학생을 죽여서 우리에게 무슨 이득이 되겠느냐? 동희야, 용서만 가지고는 안 된다. 원수를 사랑하라 했으니 사랑하기 위해 아들을 삼으려는 것이다."
"여러분 내 어찌 긴말의 답사를 드리리요. 내가 아들들의 순교를 접하고 느낀 몇 가지 은혜로운 감사의 조건을 이야기함으로써 인사를 대신할까 합니다. 첫째, 나 같은 죄인의 혈통에서 순교의 자식들을 나오게 하였으니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둘째, 허다한 많은 성도들 중에 어찌 이런 보배들을 주님께서 하필 내게 주셨는지 그 점 또한 주님께 감사합니다. 셋째, 3남 3여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두 아들 장자와 차자를 바치게 된 나의 축복을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넷째, 한 아들의 순교도 귀하다 하거늘 하물며 두 아들의 순교이리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다섯째, 예수 믿다가 누워 죽는 것도 큰 복이라 하거늘 하물며 전도하다 총살 순교 당함이리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여섯째, 미국 유학 가려고 준비하던 내 아들, 미국보다 더 좋은 천국 갔으니 내 마음 안심되어 하나님 감사합니다. 일곱째, 나의 사랑하는 두 아들을 총살한 원수를 회개시켜 내 아들로 삼고자 하는 사랑의 마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여덟째, 내 두 아들의 순교로 말미암아 무수한 천국의 아들들이 생길 것이 믿어지니,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아홉째, 이 같은 역경 중에서 이상 여덟 가지 진리와 하나님의 사랑을 찾는 기쁜 마음, 여유 있는 믿음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합니다. 끝으로 나에게 분에 넘치는 과분한 큰 복을 내려 주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이 일들이 옛날 내 아버지, 어머니가 새벽마다 부르짖던 수십 년간의 눈물로 이루어진 기도의 결정이요, 나의 사랑하는 나환자 형제 자매들이 23년 간 나와 내 가족을 위해 기도해 준 그 성의의 열매로 믿어 의심치 않으며 여러분께도 감사드립니다."
"낮에나 밤에나 눈물 머금고, 내 주님 오시기만 고대합니다. 가실 때 다시 오마 하신 예수님, 오 주여 언제나 오시렵니까? 고적하고 쓸쓸한 빈 들판에서, 희미한 등불만 밝히어 놓고 오실 줄만 고대하고 기다리오니, 오 주여 언제나 오시렵니까? 먼 하늘 이상한 구름만 떠도, 행여나 내 주님 오시는가 해 주님 계신 그 곳에 가고 싶어요. 오 주여 언제나 오시렵니까? 천 년을 하루같이 기다린 주님, 내 영혼 당하는 것 볼 수 없어서 이 시간도 기다리고 계신 내 주님, 오 주여 이 시간에 오시 옵소서." 손동희 권사님은 아버지 손양원 목사님의 천국 신앙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아버지는 하늘 나라의 복음을 전할 뿐, 현세의 안락과 풍요를 약속한 적이 한 번도 없다. 가끔 안수 기도를 해 달라고 찾아오는 병자가 있었지만, 아버지는 특별히 병 고침을 위한 안수기도를 한 적이 없다. '나는 영혼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육신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병들면 어떻습니까? 병신이면 또 어떻습니까? 잠간인 나그네 세상에서 병신으로 살다가 천국 가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다구요.' 이런 말로 병자를 돌려보낼 뿐이다. 나병환자들과 평생을 같이 보내며 그들을 사랑으로 돌보았지만, 그들의 병든 상태를 나쁘다거나 부자연스러운 것으로 보지 않았다."
"1944년 4월 31일은 영원히 잊지 못할 날입니다. 내가 청주 옥중에 있을 때에 아버님에게서 암호 편지가 왔습니다. '여숙 최권능씨는 4월 19일 본 고향 가고, 여형 주기는 4월21일 오후 9시에 본 고향 갔다...운운'한 편지였습니다. 최봉석 목사님과 주기철 목사님의 별세하신 내용의 암호 편지였습니다. 이 편지를 받고 부모나 자녀가 별세했다는 소식보다 더 슬퍼서 30일 동안 잘 먹지도 못하고 자지도 못하고 애곡하였습니다. 계 14:13에 '자금 이후로 주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였으니 그 자취와 그 피 떨어진 이 강산이 복되고 소망이 많습니다. 사람의 살고 죽는 목적은 천태만상이겠지만 제일 좋은 죽음은 주를 위하여 죽는 죽음이니 한없이 복됩니다. 나는 이제 살기를 도모하기보다 어떻게 하여야 주를 위해 잘 죽을까 결심하고 기도합니다. 기독교는 피의 종교입니다. 스데반 이후 많은 순교자들이 옥에 갇히기도 하고 칼에 베이기도 하며 톱에 켜이기도 하고 불에 살리우기도 하였습니다. 우리 한국에도 일제 말기에 최 목사님을 위시하여 50여명의 순교자가 났습니다. 우리도 그들이 흘린 땀 쏟은 피의 길을 가자고 하는 것뿐입니다. 최 목사님의 외치던 '예수! 천당!' 하는 음성이 내 귀에 쟁쟁합니다. '주여 이 소리가 이 땅에서 끊어졌나이다. 나도 따라가게 하여 주옵소서' 하는 기도를 할 뿐입니다. 나도 피 한가지만 흘리면 다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주 목사님 최 목사님의 피의 설교가 이 밤에 여러분의 귀에 들리기를 바랍니다. 이 밤을 기하여 우리도 이 순교자들의 피의 설교를 듣고 따릅시다. 앞서간 순교자들이 우리를 보고 있으니 말만하지 말고 실천에 옮깁시다. 먹고 마시는 것을 주를 위해서 하고 나나 다른 인간을 높이기 위해서 하지 맙시다. 주만 높이다가 죽는 자가 됩시다. 말씀하시기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했습니다." (1950년 4월 21일 대구제일교회에서 고 최봉석 목사 고 주기철 목사 순교 추도예배 때 하신 설교의 일부).
손양원 목사님은 결국 1950년 9월 13일 공산군에게 체포되어 2주일간 온갖 수모를 다 당하시고 9월 28일 밤 11시쯤 미평 과수원에서 총살당하여 48세에 순교하셨습니다. 손 목사님은 자기를 죽이려는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다 총 개머리 판으로 입을 얻어맞아 피투성이가 되었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자기를 총살한 공산당을 위해서 기도하면서 그가 그렇게도 그리고 사모하던 천국으로 가셨습니다. 이튿날 아침 남편의 순교 소식을 접한 정양순 사모는 남편의 시신 앞에서 울면서 이런 고백과 기도를 드렸습니다. "오! 당신 소원대로 됐군요. 평소 주기철 목사님을 그렇게도 부러워했는데.... 하나님, 감사합니다. 평생 동안 주의 일을 하게 하시고, 손양원 목사가 소원하던 순교를 허락해 주신 은혜,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리고 있었고 그의 가슴에는 한 없는 슬픔으로 가득했지만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감격으로 가득했습니다. 너무너무 귀중하고 아름다운 고백입니다. "내가 닮고 싶고 또 닮고 싶은 존경하고 또 존경하는 신앙의 선배님들"입니다! 고맙고 감사합니다! 고맙고 감사합니다!
/한국복음주의협의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