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들을 위해 헌신했던 '숭고함'과 '사랑' 그 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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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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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벽안의 독립운동가 프랭크 월리엄 스코필드 선교사 추모기념식 개최
벽안의 독립운동가이자 선교사였던 스코필드 박사를 추모하는 기념식이 12일 서울대에서 열렸다.

[기독일보 이수민 기자] 벽안의 독립운동가이자 선교사였던 프랭크 월리엄 스코필드 박사(한국명 석호필)를 기념하는 추모기념식이 12일 낮 서울대학교에서 열렸다.

스코필드 박사 내한 100주년을 맞아 벌써 14번째로 치뤄진 기념식에서 성낙인 서울대 총장은 "그는 대한민국 근대사에 매우 특별한 인물"이라 말하고, "1916년 선교와 교육을 위해서 아무런 연고도 없는 한국에 오셔서 나라가 다시 설 수 있도록 도움을 줬다"면서 "3.1운동 민족대표의 한 사람이고, 외국인으로서 유일하게 국립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된 인물"이라 설명했다.

이어 성 총장은 "한국이름 석호필(石虎弼)이라는 한자에 담긴 뜻과 같이, 호랑이처럼 강한 의지로 당시 일제 지배 하에서 고통 받던 한국인들을 물심양면으로 돕고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말하고, "고아 및 어려운 처지의 한국인을 위해 헌신했던 '숭고함'과 '사랑' 그 자체"라며 "국적과 인종, 피부색에 구애받지 않는 진정한 인류애와 배려의 정신을 실천했다"고 평했다.

12일 서울대학교에서 '제14회 스코필드 박사 추모기념식'이 열린 가운데, 참석자들이 국민의례에 임하고 있다.

이경근 서울지방보훈청장은 "그는 민족의 독립의지를 세계만방에 알린 3.1운동이 서울에서 일어나자, 카메라를 들고 직접 참여해 학생들을 격려하고 현장을 사진으로 담아 세계에 알렸다"고 했다. 또 "불편한 몸을 이끌고 제암리와 수촌리 학살현장을 직접 방문, 그 실상을 카메라에 담고 기록해 식민통치의 부당함과 참상을 언론을 통해 국제사회에 널리 알렸다"고 이야기 했다.

이 청장은 "열정적인 독립운동으로 그는 일제의 감시와 핍박, 신변의 위협을 느꼈지만, 한국에 대한 애정과 한국인에 대한 사랑으로 대한민국 독립을 위한 강한 의지를 멈추지 않았다"면서 "해방 후 대한민국을 다시 찾아 생을 마칠 때까지 큰 한국사랑을 보여줬다"고 했다. 이어 "그의 독립운동은 정의와 양심, 한국에 대한 깊은 사랑, 그리고 넘치는 인류애의 발로였다"고 평가했다.

이외에도 추모기념식에서는 정남식 연세대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과 에릭 월시 주한캐나다 대사가 축사를 전했으며, 김재홍 서울대 수의과대학장이 장학증서 수여를, 정운찬 회장(호랑이스코필드기념사업회)과 정문현 회장(Primacorp Ventures Inc.)이 격려사를 전했다. 또 김경숙 교수(한양대 겸임)의 '스코필드박사 내한 100주년 기념 무용'이 펼쳐지기도 했다.

제14회 스코필드 박사 추모기념식을 맞아 내빈들이 기념촬여에 임하고 있다.

특별히 행사에서는 이만열 박사(숙명여대 명예교수, 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가 "내한 100주년을 맞아 스코필드 박사를 다시 생각 한다"는 주제로 특강을 전하기도 했다. 그는 스코필드 박사의 생애 전반을 되돌아보면서 삶의 의미를 살펴봤는데, 독립 전에는 한국의 독립을 위해, 독립 후에는 한국의 젊은이들을 가르치고 남은여생 자신이 묻힐 이 땅을 하나님 나라로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 박사는 "스코필드가 한 때 몸담았던 서울대가 한국 최고의 지성을 자랑하는 대학이면서도 그 같은 인물을 얼마나 양성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면서 "1910년대 식민지 하의 한국을 찾았던 스코필드에게서 자기희생적인 삶을 찾을 수 있다면, 지금 한국의 젊은이들이 우리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에 얼마나 파송되고 있는지, 특히 서울대 출신들이 얼마나 이 험난한 길을 선택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따끔하게 충고하기도 했다.

한편 참석자들은 행사 전 오전 8시 30분 국립현충원 애국지사 묘역96호에서 스코필드 박사 묘지 참배의 시간을 갖기도 했다.

스코필드 장학금 혜택을 받는 학생들이 "사랑해요~"를 (사)호랑이스코필드기념사업회 정운찬 회장과 함께 외치고 있다.

1889년 영국에서 태어나 캐나다로 이민 갔던 스코필드 박사는 1916년 한국에 아내와 함께 왔으며, 1919년 독립 운동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다가 1920년 일제에 의한 반강제 추방으로 캐나다로 돌아갔었다. 이후 1958년 정부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해 1959년 대한민국으로 영구 귀국했으며, 1968년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국민장)을 받은 후 1970년 4월 12일 소천해 같은달 16일 국립묘지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됐다.

2016년 3월에는 국가보훈처로부터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되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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