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사랑, 왜 해야 하나?"(마14;13-21, 요 6;5-13)

교회일반
교단/단체
이수민 기자
press@cdaily.co.kr
  •   
한교연, 회원교단에 장애인주일 공동설교문 협조 요청(1)

[기독일보 이수민 기자] 한국교회연합(대표회장 조일래 목사, 이하 한교연)은 오는 4월 17일 장애인주일과 20일 장애인의 날을 앞두고 회원교단에 공문을 보내 한국교회가 장애인주일을 지켜줄 것을 요청했다.

한교연은 공문에서 장애인권익위원회(위원장 김양원 목사)가 준비한 "장애인의 날 공동설교문"을 장애인주일 예배시 각 교단 산하교회들이 강단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협조해 줄 것을 요청했다.

한편 한국교회연합은 장애인권익위원회 주최로 오는 28일 한국교회백주년기념관에서 제1회 장애인주일연합예배 및 문화축제를 개최해 다양한 공연과 연주, 우수 장애인단체 시상 등의 행사를 가질 예정이다. 다음은 한교연이 제시한 장애인 설교 예시 전문이다.

1. 들어 가는 말

왜 교회와 성도들은 장애인을 사랑해야 하는가? 예수님은 왜 교회를 세웠을까? 교회가 왜 복지의 주역이 되어야 하는가? 등에 대한 해답을 예수님의 3년간의 가르치심과 성경말씀을 중심으로 찾아보자.

오직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 요 6;38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고 말씀하시고 그 일을 이루기 위해 사시다가 그 일을 이루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셨다.

예수님은 승천 후 제자들이 자기의 뜻을 계속 이루게 하기 위한 방편으로 교회를 세우셨다. 제자들을 불러 3년 동안 갖가지 방법으로 강한 훈련을 시키신 것도 모두 승천 후 자기의 뜻을 교회와 제자들을 통해 이루기 위해서였다.

그럼 하나님의 뜻은 무엇이고 주님께서 보여주신 사역의 주된 내용은 무엇인가 ?

벧후 3;9에는 "아무도 멸망치 않고 모든 영혼이 다 구원 얻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씀하셨고 요6;39에서는 "내게 주신 자 중에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마4;23에서는 제자들을 선택하시고 첫 시범으로 전도와 동시 교회복지 사역 곧 약한 자들과 장애인들을 고치시며, 사랑하시는 모습을 보여 주신다. 눅4;18에서도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셨고 마11장에서도 세례요한으로부터 "당신이 정말 메시야입니까?" 라는 질문을 받고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라고 당신의 존재에 대해 분명히 정의하신다. "의원은 병든 자에게라야 필요하다"고 (눅5;31) 하신 말씀 등을 볼 때 하나님의 영혼 구원에는 병든 자나 장애인, 가난한 자, 소외된 자들의 영혼까지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은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눅 10장에서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 성도의 갈 길을 보여 주시며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고 명령하셨다.

사도행전 3장을 유심히 살펴보자.

성령을 선물로 받은 120명에 의해 교회가 탄생되고 수장격인 베드로와 요한이 제일 먼저 한 일이 중증 장애인 선교였다. 성령을 받으면 이처럼 시각이 달라진다. 동정의 대상, 귀찮아했던 대상이 선교의 대상으로 바뀌게 되고 말씀의 기적이 일어난다. 동시에 교회는 놀라운 부흥을 하게 된다. 바울도 로마서에서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라(롬15;1) 고 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완성해 드리기 위해 개인구원과 사회봉사 두가지 소명을 감당해야 한다. 교회의 복지사역은 할 수도 있고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감당해야 하는 것이 성경적이다. 교회는 하나님께 대한 수직적 의무와 수평적 의무인 이웃에 대한 사랑과 봉사를 실천함으로 진정한 교회가 되어지는 것이다.

2. 본 론

1) 변화에 대응해야 한다.

현대는 복지 시대다. 그래서 국가적으로 복지를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하고 있다. 전 국민의 관심이 복지에 쏠려 있다. 그것에 비해 교회는 산발적으로 구제 차원에서 접근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88올림픽을 계기로 눈을 뜨기 시작하며 대형교회를 중심으로 교회복지 사업이 확산되기 시작했고 지금은 모든 교회들이 관심을 갖고 어떤 방법이든 접근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제는 복지를 빼고 교회를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교회는 시대의 의식과 가치관을 제대로 파악하여 그 상황에 맞게 영혼들을 치료하고 리드해 나가야 한다. 20~30년 전 사고방식으로 신앙생활을 해서는 안된다. 시대의 급속한 변화는 온 인류를 변화추구의 경쟁자로 만들어 놓았다. 개인이나 단체, 회사는 물론 교회까지도 경쟁을 해야 한다. 그리고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엄청난 연구와 재투자를 하며 피나는 노력을 하고 있다. 각 기업은 수 백 억 원을 연구 개발비, 아이디어 창출을 위해 아낌없이 투자한다. 부단한 연구와 노력만이 생존하게 하고 전진하고 성장하게 만들지만 그렇지 못하면 도태하고 만다.

2) 교회에 복지를 명하신다.

마 14:13~21의 오병리어의 기적이 주는 교훈을 살펴보자.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하실 때 동행했던 사람들의 형편은 예수님께서 불쌍히 여길 수밖에 없는 자, 곧 병든 자들과 장애인들, 아침부터 걸어와 지친 사람들, 점심을 먹지 못해 허기진 사람들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제자들이 속히 돌려보내어 마을에 들어가 스스로 음식을 사먹게 하자고 할 때 돌려보내지 말고 여기서 너희가 해결하라고 하신다.

이들에 대해 외면하지 말고 적극적인 자세로 해결책을 찾아 복지 사업을 전개하라고 하신 주님의 명령임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3) 누가 해야 하나?

마14;16에서 예수님은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고 하신다. 이 말씀은 오늘날 교회들에게 복지 사역을 감당 할 것을 명령하신 말씀이다. 그러나 교회는 문제가 발생했을 때 다음과 같이 네 종류로 대처한다.

(1) 방관형

수만 명 무리가 계속 예수님을 따랐다. 점심도 먹지 못한 채 다들 지쳐 있었다. 분명 문제는 발생되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것이 문제인지 조차 발견하지 못했다.

아니 예수님이 이 문제를 너희가 해결하라고 지시하는데도 수수방관했다.

문제가 발생되고 있는데 문제인지 발견하지 못하는 제자들, 바로 우리 모습이 아닌가 생각한다. 교회문제, 성도들의 문제, 사회의 문제를 제대로 볼 줄 알아야 한다.

기업에는 항상 인사한파가 몰아닥친다. 명퇴, 조퇴 등이 유행처럼 번진다. 그 대상자는 누구인가? 문제를 직시하지 못하는 방관형 직원들이 분명하다.

현대사회의 문제를 교회들이 먼저 발견하고 능동적으로 대처해야함은 기독교의 핵심 사명이고, 당연한 의무이다. problem children이 되지 말고 problem settler가 되어야 한다.

(2) 회피형

예수님은 마14;16절에서 "갈 것 없다. 너희가 주어라"라고 명령하신다. 교인들의 문제, 교회의 문제를 나를 통해 직접 해결시키려는 의도가 분명하다. 그러나 제자들은 여러 가지 이유를 들기 시작한다.

①이곳은 빈들이고 ② 때도 이미 저물었다 ③ 200데나리온의 떡이라도 부족할 것이다. 맞는 말이다. 빈들에서 갑자기 수만 명의 민생고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다는 말인가? 해결하라고 명령한 사람이 잘못이고 이유와 변명이 타당하다. 문제를 회피하려고 하는 사람은 정말 타당한 이유와 변명이 얼마든지 생겨난다. 현실을 보면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현실보다 주님의 능력을 믿고 역사를 일으키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우리교회 위치가 안 좋아요, 이곳은 빈들이에요' 핑계한다면 크게 부흥한 교회들 모두 장소가 최고 좋아서이고 그 옆에 조그만 교회는 위치가 나빠서인가? '돈이 없어요, 때가 이미 저물었어요. 가난한 지역이에요' 한다면 부흥하지 않는 교회는 모두 가난한 지역이란 말인가?

장애인들을 앞에 두고서도 변명과 핑계는 많이 했지만 실제 고통당하는 입장에 서보지 못하고 고통을 회피하지는 않았는가?, 그들의 고통을 못 본채 귀찮아하지는 않았는가? 점검해 보자. 불평불만과 짜증이 몸에 벤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웃의 고통을 보며, 그 하는 행동 때문에 하나님께서 정신 차리라고 벌주신다며 의기양양해 하는 사람들도 많다. 또한 스스로 그것 하나 해결 못하고 쩔쩔 맨다고 호통만치는 사람도 많다. 우리 교회와 신앙인들의 큰 문제가 아닌가 생각한다.

장애인들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해 오고 있었는가? 혹시 모른 채 외면하지는 않았나? 다른 교회로 갔으면 좋겠다. 어디 재활원이나 요양원으로라도 보내 드릴까? 회피해 오지는 않았나? 스스로 자신을 살펴보자.

(3) 문제 해결형

문제 해결형이란 문제가 발생한 후 그 문제의 해결을 위해 발버둥치는 사람을 말한다. 문제 발생 후 잘 해결하는 사람도 필요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는 보험처리반이나 교통사고 처리반 정도의 자리가 어울리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방관하거나 회피하는 사람들보다는 훨씬 좋은 사람들이다. 때로는 그 수고와 사랑에 감동해서 전도의 문이 열리기도 한다. 가끔은 천사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얼마나 힘이 들고 피곤한 일인가?

(4) 자원 발견형

방관하고 있던 제자들이나 회피하고 있던 제자들의 눈에는 해결책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안드레의 눈에 보리떡과 물고기가 보였다. 즉시 주님께 드렸고 축사 후 배불리 먹고 12광주리가 남는 기적이 나타났다. 주님은 내게, 우리 교회에 엄청나게 많은 오병이어들을 이미 준비해 주셨다. 그러나 이것을 주님께 드려 활용하기보다 땅에 묻어 두고, 아까워하며 핑계와 변명만 하고 있다. 이제부터는 달란트를 발견해 내서 주님께 드려 주님이 일 하시도록 기회를 제공해 드리고, 활용하여 영혼을 살리고 영광을 돌리자.

삶에 지친 영혼들에게 말씀의 밥을 제공해 드리자, 그들의 지친 육체와 영혼을 시원케 해드리자, 환희와 소망을 심어드리자. 그들을 살리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특권이다. 주님은 우리들을 도구로 삼아 일하고 싶어 하신다. 우리 교회에 명하신 복지프로그램은 과연 무엇일까 영의 눈을 크게 뜨고,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장애인들의 문제 속에 뛰어 들어가 보자. 내가 나눠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찾아보자. 그래서 문제가 해결된다면 우리 교회는 기적의 주인공이 되고, 자연스럽게 놀라운 부흥의 불길이 일어날 것이다.

3. 결 론 - 복지 사역을 감당하는 자에게 내리는 축복

삼상 30장에 보면 아말렉이 이스라엘을 침공하여 성을 불사르고 다윗의 두 아내까지 사로잡아 간다. 이 때 다윗은 사울 왕 때문에 피신하던 입장이었지만 나라의 위태로움을 볼 수 없어서 군사 600명을 모집하게 된다. 허기와 피로에 지쳐 200명이 낙오를 하고 겨우 400명밖에 남지 않은 위기를 맞았다. 이 때 병들어 자기 몸조차 가누지 못하고 죽어가던 아말렉 병사 한사람을 만나게 된다. 다윗은 그 병든 병사를 정성껏 간호하여 생명을 회복시켜 준다. 결과는 어떤가? 바로 이 소년이 천사가 되어 전쟁에서 대승을 거두고 빼앗긴 부인을 찾은 것은 물론 엄청난 전리품을 얻는 축복을 받게 된다.

그 전리품을 전쟁에 동참한 400명과 낙오한 200명에게도 똑같이 분배해 주었고 이 사건으로 왕으로 추대를 받게 된다. 원수지만 병들어 죽어가는 사람을 극진히 섬겨 주었고 병든 200 명에게도 똑같이 사랑을 베풀어 주었다. 오늘날 용어를 빌리면 다윗은 교회복지 사업을 펼친 것이다. 그 보상은 실로 엄청났다. 다윗판 오병이어 기적이 일어나고 왕이 되는 축복을 받았다.

환경이 문제라고, 여건이 어려워서, 사람을 잘못 만나서 등 핑계하지 말자. 똑같은 소아마비 장애인이라도 루즈벨트는 대통령이 되고 어떤 사람은 구걸하며 사는 경우도 있다. 문제는 자기에게 주신 자원들을 발견해서 주님의 도구가 되려고 얼마나 노력했는가에 따라 다르다. 지금도 오병이어의 기적은 계속 일어난다. 교회복지 사역을 성실히 감당하여 현대판 오병이어 기적의 주인공들이 되기를 빈다.

#장애인 #한교연 #한국교회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