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칼럼]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전세계 복음주의 신앙인들, 특히 한국의 복음주의 신앙인들로부터 두터운 존경을 받는 분입니다. 저도 그분의 저서 ‘산상수훈’에서 크게 배웠고, 퓨리턴이즘에 관한 그의 저서에서도 많이 배웠습니다. 그리고 1952-55 중에 웨스터 민스터 교회에서 매 금요일 마다 가르쳤던 교리강좌를 편집한 세 권의 씨리즈 저서에서도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특히 그분은 구원의 교리에서 성화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매우 심도 있게 가르치면서, 성화가 구원과정의 종국적인 과정임을 에서 다음과 같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원래에 성화가 구원의 전과정의 종국임을 가르쳐 = 신구약을 통해서 어디서나 발견되는 첫 번째 중요한 원칙은 ‘성화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다’는 것이다. <살전 4:3> 은 이를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그분께서 구약에서 하신 모든 일의 목적은 궁극적으로 우리들의 성화이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으신 목적도,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목적도 우리들의 성화이다. 그러므로 분명히 이해해야 할 첫 번째 원칙은 “구원의 전과정의 종국은 성화(sanctification is the end of the whole process of salvation)”라는 것이다.
이렇게 성화가 구원완성의 필수적이고 종국적인 과정임을 가르친 로이드 존스 목사님이 칼빈의 견인론, 구원보장론, 한번 구원 영원구원론을 부추기는 ‘믿음 구원, 행위 상급’론(論)을 주장하는 것을 지난 연말에야 읽고 필자는 놀램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한국 교회 주류에서 한번구원 영원구원론이 편만한 배경에는 로이드 존스의 ‘믿음 구원, 행위 상급’론이 있음을 인식하고 이 행위상급론을 검토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 로이드 존스의 ‘믿음 영생, 행위 상급’론의 근거 = 로이드 존스 목사는 그의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습니다:
<고후 5:10>은 “이는 우리가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라고 말씀한다. 이제 바울은 분명히 크리스천들에게 쓰고 있으며 그는 마음 속에 신자들만을 두고 있으므로, 바울의 말씀은 신자들 중에도 차별이 있을 것임을 의미한다. 이는 구원의 관점에서가 아니다 – 바울은 <고전 3:15>(“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에서 매우 분명하게 확립했다.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글은 계속됩니다: 사람의 공력은 완전히 불타버릴지라도“자기 자신은 구원을 얻어야 한다” 그가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이신 터, 십자가에 달리신 그분 위에 서있다. 그것이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다.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엡 2:8). 우리를 구속하여 구원하는 것은 주님에 대한 우리의 신뢰함과 그분의 완전한 사역이다. 아 그렇다, 그러나 우리의 행위는 차별을 낳기 때문에 중요하다. 우리 모두는 영화를 얻으며, 우리 모두는 구원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원 이후에 우리의 행위가, 우리의 의롭게 됨에 관련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상급을 받는가에 관련하여 고려될 것이다
■ 다른 교리의 분파작용을 경계하는 말씀을 구원교리의 근거로 삼을 수 없어 = 첫째로 로이드 존스 목사가 <고후 5:10>과 <고전 3:15>, 그리고 <엡 2:8>를 묶어서 영생은 믿믐으로 얻고 행위는 천국에 가서 상급 받는데나 소용된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말씀의 대상과 내용을 혼동하는 데서 기인합니다.
<고후 5:10>은 고린도 교회 성도 일반에게 해당되는 말씀인데 비하여 <고전 3:15>은 <3:9>에 의하여 분명한 바, 바울 및 아볼로와 같은 하나님의 동역자에게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또한 <고후 5:10>은 성도가 죽었다가 부활하여 그의 행위가 선한자는 영생을 악한자는 영벌을 받은 것임을 말씀하는 데 비하여 <3:15>은 사역자가 그 공력에 따라서 상을 받게 되며, 공력이 없는 자는, 구원은 받되 부끄러운 구원을 받을 것임을 말씀합니다.
<요 5:29>의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친언은 <고후 5:10>이 어느 신자이거나 간에, 선한 행위를 한자는 영생을, 악한 행위를 한자는 영벌을 받게 됨을 가르치는 것임을 의심할 여지가 없게 합니다. 다시 말하면, 마음으로 믿는 믿음으로 영생을 얻는 것이 아니고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갈 5:6)의 열매인 행위로 영생을 얻는다는 것이 요 5:29를 포함하여 모든 성경의 통전적인 가르침인 것입니다.
교회에서 다른 교리가 가르쳐짐으로 생기는 분파작용에 관련하여 한 말씀을 보편적인 구원교리의 근거로 삼을 수는 없습니다. 어찌하여 바른 교리로 교회를 세워 공적을 이룬 자는 천국에 가서 상급을 받고 그렇지 못한 자는 부끄러운 구원만 받으리라는 말씀을 근거로 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으므로 행위는 구원에 관계가 없고 천국에 가서 상급 받는 데나 소용된다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구원이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은혜임을 어떻게 부정할 수 있겠습니까? 십자가 상에서 대속 사업을 이루신 분도 성자 하나님이요, 예수님을 믿을 수 있도록 믿음을 주시는 분도 성부 하나님이십니다. 성령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마음에 부어(롬 5:5) 거듭나게 하신 분도 성부 하나님이시고 매일 같이 우리가 육신대로 살지 않고 말씀대로 살도록 우리에게 능력 주시는 분도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칭의 구원을 받은 신자는 “나더러 주여 주여 부르는 자 마다 천국에 다 들어 갈 것이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믿고, 내주하시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함으로써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 2:12) 말씀에 따라 죄짓지 않고 거룩한 삶을 사는데 진력하는 성화의 과정을 걸어감으로써 마침내 영화에 이른다는 성경의 통전적인 구원론을 어떻게 거부할 수 있겠습니까?
칭의구원은 궁국적 구원이 아니고 구원의 시작입니다
둘째로“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엡 2:8>은 칭의구원을 가르치는 구절입니다. 행위가 없어도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어 영접함으로 얻는 칭의구원을 곧 구원의 완성으로 생각하는 것은 성경의 다른 말씀들,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친히 가르치심과 매우 크게 어긋나는 생각입니다.
<엡 2 장>은 그리스도 밖에 있던 자들이 그리스도의 피와 십자가로 하나님과의 화목하게 하심을 말씀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칭의구원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칭의구원 받기 이전의 예수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인간의 능력에 의한 율법적 행위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으며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주시는 믿음으로 얻게되는, 구원의 시작인 칭의구원을 우선적으로 가르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엡 2장>에서 칭의구원을 가르친 후에, 3장에서부터 6장 끝에 이르기까지 성화필수 구원론을 가르칩니다. 사도 바울은 바로 뒤이어 <2:10>에서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우리의 행함이 구원의 목적임을 가르치고, <엡 4:17~18>은 “이제부터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너희는 행하지 말라; .저희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라고 이방인처럼 행하면 생명을 얻지 못할 것을 가르칩니다. 그리고 <엡 5:5>는 “…음행 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하는 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라고 성화가 없는 신자는 영생을 얻지 못할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믿음구원, 행위 상급’론은 성경 말씀과 상충되는 잘 못된 이론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 마음에 부어주신(롬 5:5)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의(갈 5:6) 행위와 인간이 자기 의와 자기 능력으로 행하는 율법적 행위를 분간하지 못하고, 성경을 성령의 능력이 아닌, 인간의 능력으로 잘 못 풀어서,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의 행위 없이도 영생을 받는 것처럼 ‘영생 믿음, 행위상급’론을 주장하는 것은 큰 오류가 아닐 수 없습니다.
‘믿음 구원, 행위 상급’론은 율법의 완성이요 복음의 집약인 산상수훈의 모든 말씀과 상충됩니다. 또한 사 복음서와 모든 서신서들이 결론적으로 성화가 모든 구원과정의 종국임과 따라서 성화가 영생에 필수적임을 가르치는 말씀들과 상충됩니다.
필자는 로이드 존스 처럼, 성경을 통달하시는 분이, 진리의 핵심인 구원과 영생을 논함에 있어서 원래는 성화필수 구원론을 가르치다가 후에는 믿음영생, 행위상급론을 주장하는 실수를 범하셨음에 마음이 아픔니다.
그리고 오늘 날 유럽의 기독교가 인본주의와 계몽주의에 의하여 거의 초토화된 주요 원인을 로이드 존스 목사님 같이 탁월한 유럽의 기독교 지도자가 구원론을 성경대로 철저하게 흔들림 없이 가르치지 않았던 데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개인적으로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전할 수 없는 인간인 그분의 실수를 이해하면서, 그분의 성화론을 비롯한 많은 가르침들 중에서 성경에 어긋나지 않는 부문은 앞으로도 계속 소중하게 간직해야 할 것입니다.
‘믿음 구원, 행위 상급’론이 한번구원 영원구원론을 부추겨서 개인의 구원과 교회의 영적 순결의 회복에 미치는 악 영향을 생각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고 개인의 구원과 교회의 개혁을 위하여 오늘 날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필수적인 일은, 한국교회가 ‘믿음 영생, 행위 상급’론에서 어서 속히 완전히 벗어나도록 기도하면서 바른구원관을 선교하는 데 진력하는 일입니다.
▶ 김병구 장로는 싱가폴 장로교단 장립 장로, 시카고 '약속의 교회' 은퇴장로로서 바른구원관선교회(바로가기)를 섬기며 기독교신문 '크리스천투데이'에서 칼럼니스트로도 기고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영원한 성공을 주는 온전한 복음>(한솜미디어 펴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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