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가 주관하는 이달 월례포럼에서는 ‘종교와 정치’ 문제가 다뤄졌다. 이 포럼에서 김진호 목사(동연구소 연구실장)는 기독교의 교세 감소 원인을 진단하는 한편, 이와 맞물려 펼쳐지고 있는 기독교의 정치세력화가 갖고 있는 위험성을 차분히 논했다. 베리타스는 그의 동의를 얻어 강연문 ‘교세 감소와 정치세력화, 위험한 만남’를 총 5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주
맺음글_사회적 영성
이러한 기독교 정치세력화의 주체화 담론은 ‘적’으로 해석된 ‘타자’에 대한 증오와 적대를 기반으로 한다. 타자는 개조의 대상이지 공존과 협상의 대상이 아니다. 만약 개조되지 않은 타자가 세상을 주도하게 되면 저들은 ‘우리’의 것을 위협하게 되고 결국 ‘우리’의 존재 자리까지 박탈해갈 것이다. 참여정부가 시도했던 사립학교법 개정 논의에 직면한 교회는 민주화라는 것이 공산화와 다름 아닌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치 1940년대 중반 북한 정권이 토지개혁을 주장하며 기독교의 재산을 빼앗아 간 것처럼 민주정부도 교회의 영토인 미션스쿨들을 침탈해 간다고 말이다.
하여 기독교 정치세력화의 과제는 사회를 타자들의 세상이 아닌 교회의 세상으로 반전시키는 데 있다. 여기에는 회색지대가 없다. ‘우리’의 것과 ‘적’의 것만이 있고, 역사는 ‘우리’와 ‘적’이 서로의 영역을 확대하기 위해 벌이는 전쟁으로 점철된 시간의 장이다. 기독교 신앙은 이러한 전쟁을 위해 삶의 자원을 총동원해서 ‘적’을 무찔러야 한다. 즉 정치세력화는 종교전쟁의 담론이다.
이전까지, 교회 영역 안에서 머물러 있을 때는 그러한 전쟁은 일종의 상상작용이었다. 한데 그것을 정치화한다는 것은 상상 속에 있는 ‘적’이 구체적인 대상, 개조되지 않은 타자들로 적용됨을 의미한다. 요컨대 한국에서 모색되고 있는 기독교 정치세력화는 종교전쟁의 담론이다.
사회 속에서 공공적인 것, 결코 사유화될 수 없는 것을 남겨놓으려는 노력, 그리고 그런 영역을 조금씩 확대하기 위한 노력, 그러한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제도화 과정을 민주화라고 한다면, 민주화는 모든 것을 자원으로 해석하고 자원을 독점 혹은 과점하기 위해 경쟁하는 자본주의 속에서 행위자들이 경쟁하지 않고 머물러 있을 수 있는 일종의 ‘비무장지대’(DMZ) 같은 것을 설치하려는 제도적 시도들로서 해석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공공영역은 각기 ‘우리’로서 주체화된 세력들이 구획해 놓은 영토들의 경계선을 흩뜨려 놓는 지점에 있다. 해서 경계(boundary)가 명료하게 ‘우리’와 ‘적’을 나누는 역할을 한다면, 공공영역은 경계가 모호한 지점에서 서로 다른 ‘우리들’이 만나고 거래하며 놀이를 하는 탈경계의 지대, 곧 변경지대(frontier zone)다.
한데 후기 자본주의는 이러한 비무장지대, 변경지대까지 전쟁터로 동원하려는 기술적, 인식론적 시스템을 통해 사람들에게 다가왔다. 그런 점에서 모든 경계를 교란시키며 세계를 관통하는 자본의 질서를 구현하려는 자본의 지구화 현상은 후기 자본주의적 체계의 궁극일 것이다. 이런 지구화 체계에서 공공영역은 점차 사라지고 있고, 모든 것이 경쟁과 자기계발의 공간이 되고 있다. 하여 현재의 지구화는 ‘일상의 전쟁화’와 ‘전쟁의 일상화’를 향해 치닫고 있다.
번영신학은 그러한 자본주의적 체계를 가장 잘 반영하는 신앙적, 신학적 장치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번영신학으로 무장하면서 정치세력화라는 종교전쟁을 벌이고자 하는 한국 기독교의 행보는 공공영역을 지켜내고 확장하려는 민주화의 노력에 하나의 장애물이 되고 있다.
‘정치’는 행위자들의 사적인 욕구를 공적인 것처럼 포장함으로써 타자들의 동의를 얻어내려는 생각과 행동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와 타자는 서로 협상하게 되고 공존하는 방법을 모색하게 된다. 그런데 교회의 정치세력화는 자신의 욕구를 포장하지 않은 채 타자에게 승복하라는 압박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리고 승복하지 않은 타자를 ‘적’으로 간주한다. 이러한 정치세력화는 모든 삶의 공간을 싸움터로 변질시키는 전쟁의 신앙인 셈이다. 이는 이웃을 ‘적’으로 만든다. 그리고 그 ‘적’들에 포위된 채 민주주의를 위한 청산의 대상이 된 교회의 이미지는 조금도 개선하지 않고, 도리어 더욱 악화될 것이다.
이러한 구조화된 위기에 대한 대안을 찾고자 한다면, 나는 ‘사회적 영성’을 재발견하고 회복하는 특별한 노력이 필요함을 강조하고 싶다. 「요한복음」의 어법에 따르면 ‘영’은 ‘사람이 된 신’(예수)이 인간의 육체성의 한계를 극복하고 시공간적 경계를 가로질러 모든 이들의 마음속에 함께 하는 존재다. 그러한 영의 속성을 영성이라고 한다면, 사회적 영성은 그 영이 교회 안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 구석구석에 두루 현존하고 있으며, 그 속에서 영이 된 신이 낯선 이들(타자)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함축하는 표현이다.
앞서 말했듯이 정치가 이웃을 적으로 만드는 과정이 아니라 적을 이웃으로 만드는 과정이라고 한다면, 이런 정치는 신앙의 사회적 영성화에 따르는 생각과 행위일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이웃을 적으로 만드는 정치는 오히려 사회적 영성을 유실하는 행보에 다름 아니다. 하여 정치세력화를 도모하는 오늘의 교회가 품어야 하는 생각은 ‘사회를 교회화’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적 신앙을 사회적 영성화’하는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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