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소개
이제 '믿음 같으나 믿음 아닌 것들'을 과감히 정리할 시간이다.
현대인의 내면세계를 잠식하고 있는 불안 심리
무엇이 당신을 잠 못 이루게 하는가
홀로 속 끓이는 하얀 밤을 끝내다
'불면증'과 '공황장애'가 한국 사회를 대표하는 슬픈 키워드가 되었다. 입버릇처럼 "아, 불안해", "걱정이 돼서 잠이 안 와요", "가슴이 답답해요"를 달고 사는 사람이 많다. 당신은 무슨 생각에 사로잡혀 뜬눈으로 지난밤을 지새웠는가? 오늘, 무엇이 당신을 불안하게 하는가?
누구나 자기 삶이 명확해지기를 원하고, 자기 결정과 계획이 옳다는 확실한 증거를 원한다. 하지만 삶은 매뉴얼을 제공하지 않고 좀처럼 직선을 그리지도 않는다. 인생의 불확실성 앞에서 어찌할 바 몰라 염려만 하는 고질병에는 크리스천도 예외가 없다. 절호의 기회가 올 때까지 구석에서 마냥 기다리는 대신 불확실성 속으로 몸을 던지는 법을 배우면 우리 삶이 어떻게 달라질까? 미국 크로스포인트교회의 담임목사 피트 윌슨이 그의 네 번째 책, 《두려움이 속삭일 때》에서 이 문제에 정면으로 맞섰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염려를 끊고 싶을 때
아무리 걱정해도 걱정거리가 줄지 않을 때
하나님의 사랑이 믿어지지 않는 그런 날,
이 책을 권합니다.
이 책은 잘 지내는 척하는 표정 뒤에 숨은 우리 내면의 깊은 두려움을 끄집어내 근본 해결책을 찾는다. 저자는 우리의 문제가 사실상 두려움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문제라고 지적한다. 그러니 우리의 목표는 덜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더 믿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말이다. 믿음의 여정은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을 향한 항복의 여정이다. 단, 패배를 뜻하는 항복이 아니라 승리로 이어지는 항복이다. 만사가 어렵게 느껴지는 날이 계속된다면? 알 수 없는 불안에 잠 설치는 밤이 늘고 있다면? 이제 '믿음 같으나 믿음 아닌 것들'을 과감히 정리할 시간이다. 이 책을 통해 당신 삶의 주인을 바꾸라. 맡김과 항복의 후련함과 능력을 체험해 보라.
이 책은 한 장(chapter)이 끝날 때마다 '이것만은 꼭 생각해 볼 것'이라는 질문 코너를 통해 스스로를 점검하고, '이것만은 꼭 해 볼 것'이라는 수행 미션 코너를 통해 하나님이 주신 꿈과 계획을 향해 믿음의 발걸음을 떼도록 독려한다. 두려워도 한 발을 떼라. 두려워도 걸으라. 비로소 가야 할 길이 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 저자 소개
지은이 _피트 윌슨 (Pete Wilson)
미국 테네시 주 내슈빌에 있는 크로스포인트교회(Cross Point Church)의 담임목사다. 피트 윌슨이 아내와 함께 개척한 크로스포인트교회는 2002년에 세워진 이후 주목할 만한 성장을 거듭했고, 현재는 내슈빌 전역의 일곱 개 캠퍼스와 온라인을 통해 매주 6천 명 이상이 예배드리고 있다.
피트 윌슨은 웨스턴켄터키대학(Western Kentucky University)에서 커뮤니케이션학을 공부했고, 켄터키 주 루이빌의 서던신학교(Southern Seminary)를 다녔다. 《플랜 B》(두란노), 《세상인가, 하나님인가》,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이상 아드폰테스) 등의 저서를 통해 현실과 괴리되지 않은 믿음, 생활과 맞닿아 있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잘 담아내 전 세계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누구나 자기 삶이 명확해지기를 원한다. 자기 결정과 계획이 옳다는 확실한 증거를 원한다. 하지만 삶은 매뉴얼을 제공하지 않고 좀처럼 직선을 그리지 않는다. 인생의 불확실성 앞에서 어찌할 줄 몰라 주저앉아 있는 사람이 너무도 많다. 절호의 기회가 올 때까지 구석에서 기다리는 대신 불확실성 속으로 몸을 던지는 법을 배우면 삶이 어떻게 달라질까?
피트 윌슨은 그의 네 번째 책인 《두려움이 속삭일 때》에서 잘 지내는 척하는 표정 뒤에 숨은 우리 내면의 깊은 두려움을 끄집어내 근본 해결책을 찾는다. 나아가 우리가 하나님의 계획을 향해 믿음의 첫걸음을 떼도록 도와준다.
옮긴이 _정성묵
광운대학교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하고,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나의 끝, 예수의 시작》, 《선택 훈련》, 《바벨론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기》, 《엎드려야 한다》, 《팬인가, 제자인가》, 《팀 켈러의 왕의 십자가》, 《엄마라고 불러도 돼요?》, 《악의 문제 바로 알기》, 《긍정의 힘》(이상 두란노) 등 다수의 역서가 있다.
* 본문 맛보기
<23쪽 중에서>
사람은 누구나 집을 나서는 순간 용감한 표정을 짓는다. 회사 복도에서 마주친 누군가가 "잘 지내시죠?"라고 물으면 으레 "그럼요, 잘 지내죠. 요즘 잘 지내세요?"라고 대답한다. 버스나 동네 마트에서 우연히 만난 이웃 주민과 대화를 나눠 보면 하나같이 만사가 평안하기만 한 것 같다. 웬만큼 상황이 나쁘지 않은 이상, 문제가 있다고 인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렇다 보니 뭔가 걱정되거나 두려울 때는 우리 자신이 지독히 못난 사람처럼 느껴진다. '다들 잘 지낸다는데 나만 왜 이러는 걸까?' 하지만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다는 아닐지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남모를 문제와 두려움, 걱정을 품고 있다. 우리만 갈등이나 고난을 겪고 있다는 건 남들의 속사정을 잘 몰라서 하는 말이다.
생각할수록 이상하다. 우리는 다른 이들이 실제로 어떻게 지내는지 보지도 못했으면서 무조건 최상의 시나리오를 상상한다. 그런데 정작 우리 자신에 대해서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상한다. 다른 사람에 대해 말할 때는 믿음이 좋은 사람 같은데, 정작 자신에 대해서 말할 때 보면 믿음이 없는 것 같다.
<38쪽 중에서>
우리의 목표는 덜 두려워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을 더 믿는 것이다. 두려움 없는 삶을 목표로 삼아서는 절대 그런 삶에 도달할 수 없다. 하나님은 우리의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존재하는 분이 아니다. 우리 자신과 두려움을 우리 이야기의 중심에 두면 상황이 풀리지 않는다. 심지어 우리의 꿈도 우리 이야기의 중심에 놓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을 우리 이야기의 중심에 모시면, 아니 하나님이 우리 이야기를 쓰고 계신다는 사실을 이해하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이 되어 우리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꿈을 이루게 될 것이다.
<75쪽 중에서>
우리가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지고 노력한다 해도 모든 인간관계는 흠투성이다. 때로는 우리가 남들을 실망시키고 때로는 남들이 우리를 실망시킨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자기방어를 위해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거리 두는 법을 배운다. 마음을 다 줬다가는 상처를 받을 게 뻔하다. 그래서 언제라도 정을 뗄 수 있도록 마음의 문을 어느 정도는 닫아 둔다. 더 큰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도 이런 식으로 맺으려 한다는 것이다.
인생의 경험은 하나님을 백 퍼센트 신뢰하지 못하게 만든다. 배신이 난무하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신뢰하기란 정말 힘든 일이긴 하다. 우리는 하나님의 무조건적이고, 영원하며, 변하지 않는 사랑을 도무지 상상하지 못한다. 하나님은 한결같이 두 팔을 활짝 편 채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지만 우리는 선뜻 그 품으로 온몸을 던지지 못한다. 하지만 그분의 품에 안기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다.
<97쪽 중에서>
다니엘서에는 사자 굴 사건 이전까지 다니엘의 삶을 자세히 기록한 구절이 153개가 있다. 하지만 사자 굴 안의 상황을 기록한 구절은 단 하나뿐이고, 그 구절마저도 다니엘이 아닌 다리오의 입을 통한 간접적인 정보다. 다시 말해, 우리가 다니엘 하면 사자 굴을 떠올리기는 하지만 사자 굴 사건은 다니엘 이야기의 요점이 아니다. 이야기의 핵심은 다니엘이 매일같이 일상적인 용기를 발휘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그가 불확실성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비결이다. 그는 하나님을 믿는 습관을 꾸준히 길렀기 때문에 불확실성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109쪽 중에서>
우리는 영적으로 성숙할수록 모든 것이 분명하게 보인다고 생각한다. 영적 거인은 늘 고요한 확신 속에서 사는 것 같다. 그들은 기다림의 고통이나 걱정, 불안 따위는 전혀 모르고 사는 사람들 같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 하나님의 가장 신실한 종 중에는 오히려 가장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 많았다. 거센 풍랑으로 인해 언제 배가 가라앉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정말로 바울이 일말의 걱정도 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가? 예수님이 십자가 고통과 죽음의 불확실성 앞에서 조금도 괴로워하지 않으셨다고 생각하는가? 차이점이라면, 영적으로 성숙할수록 확실성을 덜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확실성을 덜 필요로 할수록 더 오래 기다릴 수 있다. 심지어 극도로 힘든 상황에서도 기다림의 미덕을 발휘할 줄 안다.
<154쪽 중에서>
체스에서 가장 흥미로운 건, 맨 앞 열에 일렬로 서서, 한 번에 몇 칸씩 휙휙 움직이는 룩과 나이트와 비숍의 총알받이가 되는 폰의 역할이다. 폰은 한 번에 한 칸밖에, 그것도 앞쪽으로만 갈 수 있기 때문에 쓸모없는 말로 취급을 받는다. 그래서 하수들은 폰을 대수롭지 않게 버린다. 하지만 진짜 고수는 폰을 정말 아낀다고 들었다. 고수는 폰을 게임의 막바지까지 최대한 지켜 낸다. 폰을 잘 살려서 적의 마지막 열까지 가져가면 약한 폰을 가장 강한 말인 퀸으로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내리막길을 이겨 내는 열쇠가 여기에 있다. 삶이 힘들 때는 자신이 한 칸씩만 겨우 움직이는 폰처럼 느껴지지만 계속 버텨야 된다. 마지막 열에 거의 다 왔을지도, 순식간에 내리막길이 오르막길로 변할지도 모른다.
<170쪽 중에서>
내가 살펴본 바로, 하나님의 목적에 늘 정렬된 상태로 사는 사람들은 내가 앞서 말한 거룩한 리듬에 순응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삶의 밀물과 썰물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꿈에 자신을 다시금 정렬시키기 위한 영적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유대 달력에 담긴 영적 지혜는 생각할수록 대단하다. 우선, 유대인의 하루는 일출이 아닌 일몰로 시작된다. 다시 말해, 독실한 유대인에게 새로운 날은 어둠과 고요, 고독을 통해 찾아온다. 조용한 쉼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방식에는 뭔가 깊은 영적 의미가 있다. 갱신과 항복으로 하루를 시작한다는 뜻이다. 현대 문화를 가만히 보면 고요와 고독을 얼마나 하찮게 여기는지 알 수 있다. 즉각적인 만족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면서 요즘은 거의 모든 것이 불야성을 이룬다. 새벽 3시에도 얼마든지 가게에서 물건을 사올 수 있다. 한밤중에도 텔레비전만 켜면 쓸쓸한 적막함에서 벗어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