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성도·신앙] 한일 간의 진정한 화해를 위해 노력한 '피스메이커' 故 도이 류이치 목사는 떠났지만, 그의 정신과 신앙은 여전히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리고 있다.
2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의사당대로 국회의사당 의원회관에서 열린 '제97주년 3.1절 기념 및 故 도이 류이치 목사 국회 추모예배'에서 소강석 목사(한일기독위원연맹 지도목사, 새에덴교회 담임)는 "도이 류이치 목사(일본 민주당 원내대표 역임, 7선 국회의원)님이 지난 1월 22일 항년 77세의 나이로 별세했다는 소식을 듣고 가슴이 무너지고 흘러내렸다"고 애석한 심정을 드러냈다.
소 목사는 도이 전 의원이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 관료의 아들로 태어나 일본의 과거사 반성을 촉구하는 데 앞장섰다며 " 2011년 92주년 3·1절에 우리 교회를 방문해 독도의 한국 영유권 주장을 담은 한·일 공동선언문을 낭독하고 서명한 사건 때문에 큰 고초를 겪었다"고 했다.
이어 "도이 전 의원이 일본 나리타공항에 도착하자 우익 세력은 물론 신문과 방송사들이 마녀사냥식으로 취재했다. 하지만 그는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다가 정치생명뿐 아니라 모든 것을 잃고 말았다. 그리고 극심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힘든 나날을 보내게 되었다"며 도이 전 의원은 신념과 소신을 꺽지 않은 '일본의 양심'였다고 추억했다.
소 목사는 "도이 전 의원이 그렇게 했던 이유가 있었다. 그는 조선총독부 간부의 아들로 태어나 서울 동대문 초등학교를 다니면서 일본인 교사들과 일본인 학생들이 조선말을 쓰는 학생을 구타하는 것을 보고 자랐다. 자신도 조선인 학생을 때리기도 했다. 그런 그가 훗날 기독교에 귀의하여 기독교적 세계관과 양심을 소유하게 됐다. 그때부터 그는 지난날 일본이 한국에 가한 만행이 용납되지 않아 자책감이 들고 괴로웠던 것"이라고 도이 전 의원에 대해 설명했다.
그러면서 "도이 전 의원이 그렇게 했다고 해서 한·일 관계가 달라진 건 없었다. 그가 그토록 애쓰고 노력했지만 현실적으로 보면 허공을 친 것인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양심을 다해 한일 간의 진정한 용서와 화해의 꽃씨를 뿌렸고 끊임없이 일본을 대표해서 사죄했다. 그는 떠났다. 그러나 그의 정신과 양심, 믿음은 떠나지 않았다"고 도이 전 의원을 추모했다.
이날 추모예배 준비위원장으로 인사말을 전한 김영진 장로(한일기독의원연맹 대표회장)는 "도이 전 의원은 일본의 역사를 공부하며 일본의 역사가 가해와 피의 역사였던 것을 깨닫고 괴로워했다. 그래서 목회자가 된 것"이라며 "한일 간의 막힌 담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허물기 위해 도이 전 의원을 최선을 다하셨다"고 추모했다.
일본측 추모예배 방한 단장으로 참석한 나카지마 슈이치 목사(일본교계대표)는 "한국교회와 정치권에서 일본 목사님을 위해 추모예배를 마련해 주시고, 따뜻한 사랑과 환대를 해주셔서 감사드린다"며 "일본이 대한민국을 침략함으로써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을 겪게 한 것에 대해 깊은 사죄와 참회의 말씀을 드린다"고 추모사를 전했다.
이어 "도이 목사님은 한일관계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하셨다. 또 자기를 버리시고 그리스도의 종으로 사시다 돌아가셨다"며 "훌륭한 목회자이자 정치가로 사람들의 맘속에 남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유족을 대표인사를 한 도이 게이치(故 도이 류이치 목사의 동생) 씨는 "유족을 대표해 이 자리에 참석했다. 도이 목사님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와 우정에 참으로 감사드린다. 도이 목사님은 해방 후 혼란 속에서 신앙의 확신을 얻어 목사가 되셨고 일본 국회의원으로 활동하셨다. 지난날 보여주신 신뢰와 우정에 거듭 감사드린다. 한일 양국의 미래는 영원한 하나님의 사랑과 서로의 우정으로 변화의 길로 나아갈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전했다.
한편, 이날 예배는 조일래 목사(한교연 대표회장)의 설교, 기념 및 추모사, 평화의 메달 추서, 유가족 인사 후 김원일 목사(신생교회 담임)의 축도로 마무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