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ene 1. 남자가 눈을 뜨면 그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것은 수많은 영화감독의 사진들이다. 슈지의 자그만 옥탑방을 벽돌처럼 에워싼 그 사진들은 슈지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그리고 그가 어떤 것을 사랑하는지 단 한 컷으로 보여준다.
Scene 2. 영화감독 지망생 슈지는 자기만의 영화를 찍고 싶지만, 지금까지 단 한편도 영화를 만들지 못했다. 그 이유가 본인의 자질 부족인지, 물건이 될 만한 시나리오가 없는 건지는 분명하지 않다.
영화는 그가 감독을 준비하는 과정보단 그가 영화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려는 노력을 집요하게 보여준다. 슈지가 책상에 앉아 자그만 수첩에 볼펜으로 무언가를 꾹꾹 눌러 적는 장면도 한 컷 뿐이다(그가 어떤 시나리오를 쓰는지도 알 수 없다). 감독은 슈지의 작가적 재능이나 영화의 결말은 모호하게 처리하지만, 슈지의 행동은 신념과 동일시할 정도로 분명히 한다. 그러나 눈송이 같은 이 한 컷들은 끝으로 갈수록 눈보라처럼 관객의 마음에 동요를 일으킨다.
영화를 만들지 못하는 슈지는 건물 옥상에서 정기상영회를 하고 도쿄 한복판에서 확성기를 든 채 소리친다. "영화가 진정한 오락이자 예술이었던 때를 기억하자"고. 하지만 아무도 그의 말을 듣지 않는다. 그가 뭐라고 하든 말든 다들 자기 갈 길에 바쁘다. 감독은 그들의 무심함 때문에 슈지가 영화를 제작하지 못하는 현실을 우회적으로 표현한다. 슈지의 목소리가 횡단보도를 오가는 인파에 휩쓸려 사라지듯. 작은 영화들이 자본의 흐름 때문에 설 자리를 잃는 것처럼. 그는 경찰들의 눈을 피해 계속 소리친다.
Scene 3. 영화의 설정은 알레고리일 뿐이다. 거대 자본에 잠식되는 것은 영화뿐만 아니라 오히려 인간성이다. 이 일반화를 감독은 영화를 통해 영화를 선공(先攻)하는 정공법으로 밀고 간다. 형이 남긴 빚을 갚기 위해 인간 샌드백을 자처하며 슈지가 폭력배들에게 처음 맞는 순간. 바위처럼 멍든 얼굴로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묘비를 쓰다듬는 순간. 남은 빚을 갚기 위해 그 날 하루 '100번의 구타'를 당하는 순간. 슈지가 내뱉는 것은 비명이 아닌 자신이 사랑하는 영화들의 목록이다.
그가 그토록 영화를 갈망했기 때문에, 그런 그의 제작비를 마련하기 위해 야쿠자에게 돈을 빌린 형이 살해당했기 때문에, 슈지는 계속 맞는다. 그것은 구조적인 부조리함에 대항하는 거창한 테제가 아니다. 얼음처럼 단단하고 순수한 분노일 뿐이다. 이 분노가 그를 지키고 새로운 영화를 만들 준비를 가능하게 한다.
영화는 "레디, 액션!"이라는 소리로 끝난다. 이 영화에는 단 한번도 '컷'이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는다. 촬영장에서 감독이 컷을 외치면 카메라는 멈춘다. 계속 나아가겠다는 의지. 이것이 모든 것의 시작임을 슈지의 선택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컷>은 현재 스폰지하우스 광화문에서 장기 상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