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리뷰] 당신이 모르는 노벨문학상 수상자들의 '지금' 『16인의 반란자들』

사진과 함께 느끼는 생생한 일상의 숨결;'문학'과 '참여'란 무엇인가를 묻는 인터뷰
▲ 『16인의 반란자들』 사비 아옌 지음, 정창 옮김/스테이지팩토리, 21000원

매해 10월이 되면 스웨덴 한림원은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발표한다. 수상자의 작품은 전세계 수많은 서점에서 독자들을 기다리고, 작가의 나라는 하나의 축제가 된다. 그리고 너무 많은 사람들을 만나느라 작가는 글을 쓸 수 없을 정도로 바빠진다.

『16인의 반란자들』에 수록된 작가들은 문학기자 사비 아옌(Xavi Ayen)과 사진기자 킴 만레사(Kim Manresa)와 함께 짧게는 6시간, 길게는 8일 동안 이야기한다. 그들이 사는 도시에서, 그들의 가족들을 만나며, 그들에게 가장 민감한 사안을 활자화된 언어가 아닌 혀끝에서 맴도는 말로 들을 수 있다. 

인터뷰 내용은 매끈한 책장의 질감을 넘어 작가의 목소리와 손의 체온이 와 닿는 것처럼 사실적이다. 그동안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들에 대한 글들은 많았지만 이 책은 적당한 호흡으로 사진과 함께 어우러진 세심한 배려에 기인해 긴 여운을 남긴다.

▲ 1998년 수상자 주제 사라마구(Jose Saramago).『돌뗏목』,『죽음의 중지』로 우리나라에서도 친숙한 작가다.

"예술은 세상을 바꿀 힘이 없어요. 만일 그럴 수만 있다면 우리는 그야말로 행복할 거요. 『돈키호테』,『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햄릿』만 봐도 그렇잖소……. 작가는 메시아적인 자세를 취하면 안 돼요. 나는 약속은 하되, 거기에 어떤 희망도 심지 않아요." P29

『눈먼 자들의 도시』로 유명한 주제 사라마구는 오랫동안 기자를 하다가 오십이 넘어 본격적으로 소설을 썼다. 사라마구는 환상적 리얼리즘으로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한다.『눈먼 자들의 도시』 역시 '모두들 눈이 멀어 나만 볼 수 있다면?'이라는 설정에서 시작한다. 작가는 환상의 허상이 아닌 본질로 독자를 이끈다. 독자가 생각하게 만드는 것, 읽는 행위에 몰입하게 만들어 철학이 아닌 행동을 촉구한다는 것. 이것이 사라마구 문학의 줄기다.

리스본 도심 중심지에서 기자들과 만난 작가는 아흔이 넘은 지금도 하루 종일 글을 쓴다고 말한다. 이것이 기적이라고 작가는 고백한다. 최근에 일 년 가까이 입원했을 정도로 건강이 쇠약해졌지만 다시 기운을 회복한 작가는 신작 『카인』을 발표했다.   

▲ 1993년 수상자 토니 모리슨(Toni Morrison). 『빌러비드』,『재즈』 등 많은 작품을 집필했다.

"이제는 공식적이고 법적인 제도는 사라졌지만, 일을 하고도 돈을 못 받거나 자기 마음대로 일을 처리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어요. 실제로 아테네, 로마, 러시아 같은 거대문명들은 이름만 다를 뿐 노예들의 힘을 바탕으로 형성되었잖아요. 내가 관심을 갖는 것은, 이러한 '구속'이 우리 인간에게 많은 것들을 깨닫게 해줌으로써, 동시에 각자의 자아 속에 위대한 자존심은 물론이고 자유를 싹트게 함으로써, 그들의 주인과 똑같은 악마가 되지 않게끔 해주는 거예요." P60~P61

토니 모리슨은 시적이고 아름다운 문체로 미국인들의 사랑을 받는 작가다. 오바마 대통령 역시 그녀의 문학에 애정을 표현했을 정도다. 그러나 가장 짧은 순간, 가장 강렬하게 토니 모리슨의 글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은 그녀의 노벨문학상 수상연설문을 읽는 것이다. 수상문을 하나의 우화로 비유한 응축력은 스파클링 와인잔에서 빛나는 샴페인처럼 세련된 형식미와 깊이를 보여준다. 프린스턴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강의를 하며 집필을 병행하는 그녀는 함부로 낙관하거나 비관하지 않는다. 그것은 같은 흑인들에게도, 오바마 대통령에게도 마찬가지다.

맨해튼의 한 호텔에서 작가는 "노벨상이 당신의 무엇을 바꾸어놓았습니까?"라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다. "피상적으로 중요한 변화는 돈이에요. 좋은 것은 나 자신과 내 작품에 대해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는 거예요. 하지만 나의 일상은 물론이고 작가로서의 생활도 바꾸지 않았어요. 노벨상, 아니 나한테 주어진 어떤 상도 나를 좋은 작가나 좋은 사람으로 바꾸지는 못할 거예요."

▲ 2006년 수상자 오르한 파묵(Orhan Pamuk).『고요한 집』,『검은책』등으로 작품성과 대중성을 겸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나는 경박한 자들을, 저 위에서 종교와 문화적 신념과 특권층이 아닌 계층들을 경멸의 눈으로 내려다보는 상류층을 증오해요. 나는 엘리트들의 오만함에 분노해요. 그들은 교만과 자존심으로 이 나라를 다스리고 민주주의와 문화를 파괴하고 있어요. 그건 서양이 이라크나 다른 나라들에게 저질렀던 어리석은 짓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어요. 세계를 지배하는 자들의 오만하고 천박한 행위 역시 마찬가지요." P104

『내 이름은 빨강』으로 만개한 스타일을 보여준 오르한 파묵은 터키 문학사상 가장 높은 판매부수를 기록한 작가다. 기자들이 탄 비행기가 아타튀르크 공항에 착륙할 때, 여행객들 대부분은 파묵의 에세이『이스탄불』을 읽고 있었다.

터키의 정체성을 모욕했다는 이유로 터키 극우민족주의자들은 작가에게 살해위협을 가하고 있다. 항상 경비원들이 따라 붙지만 그는 기자들과 함께 산책을 하며 오랫동안 대화를 한다. 작가는 자신이 나고 자란 이스탄불을 사랑한다. 스웨덴 한림원은 오르한 파묵을 "이스탄불의 우울한 영혼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상징을 발견한 작가"라고 밝힌 바 있다. 자신의 태생을 통해 인류의 역사를 세심하게 복원한 그의 글은 작품성과 대중성을 겸비했다.

첫 소설이 나올 때까지 3년이 걸렸고, 출간까지 4년이 더 걸렸지만 파묵의 어머니는 아들에 대한 확신을 단 한번도 놓지 않았다고 작가는 고백한다. 이 믿음으로 파묵은 여전히 이스탄불에 있는 그의 작업실에 머물 것이라고 사비 아옌 기자는 확신한다.    

▲ 2000년 수상자 가오싱젠(高行健).『영혼의 산』,『피안』 등으로 중국의 천안문 사태를 세계에 알려졌다.

"어떤 '이즘'이 없이 산다는 것, 그게 바로 나의 저항의 형태이다." P166

7년 동안 자전적 소설『영혼의 산』을 집필한 가오싱젠이 노벨문학상을 받았을 때 중국 언론은 이와 관련된 모든 뉴스를 차단했다. 작가는 여전히 중국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고, 그의 책들은 금서 조치됐다. 작품에서 천안문 사태를 다뤘다는 이유로 가오싱젠은 기피 인물이 되었다.

파리의 레알 구역에서 작가는 기자들과 레몬차를 마시며 요즘은 건강이 악화되어 밤에는 무조건 잔다고 말한다. 그는 노벨문학상을 받기 전까지 화가로 생계를 유지했다. 가오싱젠은 "나는 권력의 한계에 대항하는 매커니즘으로 형성된 시스템을 믿는다. 이러한 의미에서 나는 급진적인 정치혐오주의자일 것이다"라고 진술한다.

하지만 그의 소설 역시 하나의 목소리이자 형태일 뿐이다. 독자들은『영혼의 산』에 내재된 아름다운 울림을 통해서 역사의 비극을 더 생생하게 느낀다. 작가는 아직도 하루 종일 울려대는 전화와 팩스에 시달린다. 자신이 좋아하는 프낙 서점 연극 코너 앞에서 기자들과 헤어진 그는 또 다른 작품을 위한 시간을 갖는다. 

노벨상 수상 이후 해당 작가들을 만나는 것은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을 마주하는 것처럼 예측할 수 없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들이 수상 전에도 치열하게 글을 썼으며, 지금도 가능한 범위까지 글쓰기를 확장한다는 사실이다. 인문학의 매혹을 넘어 자신의 단어와 문장으로 경계와 한계를 극복한 작가들. 노벨상은 이들을 변화시키지 못했지만, 그들의 작품은 세상을 좀 더 풍요로운 곳으로 만들었다. 이 16명의 반란자들은 말과 글과 행동으로 변방을 오간다.

#노벨문학상 #오르한파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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