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무트 틸리케의 성령론적 착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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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회 기독교학술원 월례기도회 및 발표회 김영한 박사 개회사

▲김영한 박사(샬롬나비 상임대표·기독교학술원장)

머리말

한국에서는 아직도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독일 종교개혁적 신학자 헬무트 틸리케(Helmut Thielicke, 1906-1986)는 바르트 신학이 놓치고 있는 역사적 세계의 구조적 갈등을 윤리신학으로 접근하며, 틸리히 신학이 놓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강조한 신학자로서 바르트와 틸리히와 더불어 오늘날 정신세계에 큰 영향을 준 사상가이다.

1. 칼빈주의적 청교도적 신앙 분위기에서 성장

틸리케는 1908년 12월 독일의 바르멘(Barmen)에서 출생했다. 그는 바르멘의 게마르케교회의 칼빈주의적 청교도적 신앙 분위기 속에서 자라났다. 그의 부친은 높은 수준의 역사가이자, 신학을 아는 평신도 신학자였다. 어머니는 청교도적인 엄격함과 자상함을 가진 분이었다.

틸리케에게 입교 교육을 시행한 목사는 라우프(Adolf Lauff)였다. 라우프는 목회 중심을 강단에 두었다. 하지만 병자, 가난한 자들과 절망에 빠진 사람들을 방문하여 위로하는 데도 열심이 있었다. 그는 묵시록적인 본문을 특히 좋아하여, 종말과 주님의 재림에 관한 설교를 자주했다. 라우프 목사의 신앙과 인격은 어린 틸리케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틸리케는 대학 시절, 호흡장애를 일으키는 '갑상선종'(Pulmonary Embolism)'이라는 질병을 앓았다. 이 질병은, 신진대사에 필요한 호르몬인 티록신을 분비하는 갑상선에 생긴 혹으로 인해 신체에 이상이 생기는 병이다. 이에 따라 마아부르크(Marburg), 엘랑겐(Erlangen)과 본 (Bonn)대학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하면서도 병원을 전전해야 했다. 갑상선종은 틸리케의 육체적 가시였다.

이때 틸리케는 '피조물로서의 불안'과 죽음을 체험하는 극심한 고통을 겪었다. 어느 날, 신경위축을 억제시키는 데 사용하는 약(안전성과 실효성이 검증되지 않은 "AT-9")이 자신를 살릴 것인지, 아니면 죽일 것인지를 결정하는 '결단의 밤'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날 밤, 틸리케는 병상 침대에 마주 서 있던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를 만났다. 그는 자신을 만지는 손과 구원받았다는 느낌 그리고 충만한 능력이 온 몸으로 흐르는 것을 느꼈다. 이 사건을 통해서 1933년 '성 금요일'에 병상에서 일어났다. 이 치유사건은 그의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1939년 하이델베르크 대학 광장에서 "제국 학생연맹" 대표자가 하루종일 총통과 나치를 위한 선전을 하였다. 신학부 학생들은 이 광기에 짓눌렸고, 틸리케는 곧 닥칠 전쟁과 재앙의 어두운 그림자를 감지했다. 그 다음날 아침 그는 강의 시간에 지금 조국을 광기(狂氣)로 몰아가는 나치 독일 아닌 신앙과 건전한 이성이 통용되는 "보이지 않는 독일"(germania invisibilis)을 역설했다. 이 시국강의로 틸리케는 전임 강사에서 시간강사로 강등당하고 나중에 총통대리자로부터 해고통보를 받기에 이른다.

그리고 틸리케는 가택연금을 당하게 되고 제2차 세상대전 동안에 글 쓰고, 강연하고, 설교하는 것과 여행하는 것에 금지를 당하게 된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도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다행히 금지령은 완화되어 그의 거주지역과 인근 지역에서 설교하는 것이 허용된다. 9개월 후에 1940년 주교 부름(Theophil Wurm)의 도움으로 라벤스부르그(Ravensburg)에서 대리 목사일을 맡게 되고 1942년부터 1945년, 2차 세계대전이 종식될 때까지 슈투트가르트(Stuttgart)에 있는 슈티프트 교회(Stiftkirche)에서 설교와 지역(뷔르템베르크주)교회 신학분과에서 교육하고 저술 활동을 하였다.

2. 성령론적 착상- 제3의길

틸리케에 의하면 이러한 하나님은 인간의식과의 관계를 떠나서는 자기를 드러내시지 않으신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 의식 속에 해소되지 않으신다, 틸리케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란 경건한 자기의식이나 종교적 영역의 의식 방식이 아니라고 천명한다. 그 이유란 첫째, 인간이 신앙하기를 시작하면 인간의식의 모든 의미연관이 변화되고, 둘째, 인간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그로부터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한 그 자신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틸리케는 신-인간 관계에 있어서 "의식작용적인 관계"(eine noetische Relation)가 아니라 "존재적인 관계"(eine ontische Relation)를 중요시한다. 신앙에 있어서도 신앙의 주관이 아니라 믿음으로써 주관이 새로운 피조물로 변화되는 신앙의 대상이 중요하다고 천명한다.

틸리케는 현대적 신학사고를 "데까르뜨적 신학"(Cartesianische Theologie)과 "비데까르뜨적 신학"(nicht-Cartesianische Theologie)으로 구분한다. 현대신학의 일반적인 두 근본유형(beide Grundtypen)인 "현대주의"(modern)와 보수주의(konservativ)라는 개념이 신학적 개념으로는 불충분하기 때문에 틸리케는 근세철학자 데까르뜨적 사유(Cartesianisches Denken)를 중심으로 "데까르뜨적 "유형과 "비데까르뜨적"유형으로 나눈다.

독일 종교개혁적 신학자 헬무트 틸리케(Helmut Thielicke, 1906-1986)

틸리케는 성령론적 신학의 착상을 제시함으로써, 이 신학의 두 가지 상호대립적인 유형을 극복하고자 한다. 기독교 신앙이란 먼저 신으로부터 인간에게 주어진 계시진리(비데까르뜨적 요소)를 우리의 실존과 지성에 있어서 획득하고 수용하는 것(데까르뜨적 요소)이므로, 이 양 유형을 종합해야 한다. "신앙이란 나를 향한 신의 언약을 추인(追認, Ratifizierung)함이다." 틸리케는 성령을 "새롭게 창조하고 동시에 옛 것에 접촉하는 자"(das Neuschaffende und Zugleich an das Alte Anknüpfende)로서 파악한다.

성령론적 착상은 불트만의 자기이해를 무시하지 않고, 인간의 선(先)소여(所與)된 자기이해를 "옛 창조"로 받아들이고, 이것을 "새로운 창조"로 만든다. 그러므로 인간의 선(先)소여된 자기이해는 "선행되는 실존분석의 모습에 있어서 신학의 출발점이 되지 않고, 회상의 대상이 된다." "인간 현실은 무엇보다도 신앙 속에서, 다시 말하면, 일어나는 계시 속에서 전개되기 때문에 인간현실 속에서의 계시의 선소여적 접촉점은 불가능하다." 틸리케는 말하기를 칸트가 그의 윤리학에서 말하는 "범주적 명령(der kategorische Imperativ)"도 신법(神法)의 새로운 내용을 만나면서 죽는다. 하나님의 법은 범주적 명령을 "일반적 법(法) 부여의 원리"(Prinzip einer allgemeinen Gesetzgebung)로 만들지 않고, 그것의 고유한 전제, "너는 해야하기 때문에 할 수 있다"라는 전제를 깨뜨린다. 범주적 명령은 단지 "이제 하나님이 넘어서 버린 실존의 지평, 곧 실존의 한계"이다. 하나님의 법은 인간의 양심에 대한 심판으로서 선소여된 관계를 깨뜨리고, 인간실존과 양심을 절망의 골짜기를 통관시키면서 극단히 수정하고 방향전환 시킨다. "그러므로 신의 심판은 어떤 방식으로는 부름, 접촉(Anknüpfung)이 된다" 신 접촉의 기적이란 인간의 태도가 패역과 거역의 태도임에도 불구하고 인간태도에 접촉하는 데 있다.

3. 신율적 사고

하나님은 말씀을 선포하시면서 청취자인 인간을 단지 지성적인 이해 방식이 아니라 진리에 대한 인격적인 적응의 방식에 있어서 진정한 말씀 수납자로 만드신다. 그는 그의 성령을 통해서 말씀을 선포하시면서 자기 스스로를 회전하는 인간자아의 죽음을 가져오시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아의 창조를 가져오신다. 옛 자아는 자율적이었으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아는 신율적(theonomous)이다. 말씀의 진리는 청취자가 부름받는 인격 속의 진리이고, 신앙을 지식과 이해의 새 범주로서 건설하는 유일한 인격의 진리이기 때문에 성령의 창조적인 역사는 가능하다. 성령은 말씀을 통해서 옛 데까르뜨적 자아를 심판하여 죽게 하고, 신앙적 새 자아를 창조한다. 신앙을 일깨우는 성령의 증언은 이해의 영이다. 여기에서 이해는 옛 자아의 동일성이 아니라, 신에 대한 신뢰의 동일성의 근거 위에서 수행된다. 여기서 틸리케는 데까르뜨적 신학의 모범적인 실례로서 브라운(Herbert Braun)의 극단한 실존론 신학을 제시한다. 브라운의 신학에서는 "'신이 있다'는 명제는 신학적 진술의 정수리에 있어서 先與(Vorgabe)로서 있지 않고, '네가 있다'라는 명제의 변양일뿐이다." 여기에서 초월적이고 주권적인 신(神)개념은 인간의 상호관계성의 개념으로 해소되는 위험성에 봉착한다.

맺음말

틸리케의 성령론적 착상은 오늘날 신학적인 보수주의와 자유주의의 대립으로 치닫고 있는 오늘날의 신학계에 데까르뜨적 사고 유형과 비데까르뜨적 사고 유형을 극복하려는 제3의 사고유형이다. 성령론적 착상은 칸트적 자율성의 사유가 죽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 안에서 새롭게 태어나는 중생한 새로운 사유 안에서 가능하다. 그것은 자율성이 아니라 신율성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뜻이 중심이 되는 사고이다.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는 주어진 역사적 현실에서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참여하는 것이고 십자가를 지는 것이며 절충의 윤리로서 현실의 갈등을 해결하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성령론적 착상은 오늘날 보수와 진보의 갈등 속에 있는 한국사회와 교회의 문제에 대하여 하나의 방향을 제시해준다.

/기독교학술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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