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부흥이 필요하다. 그 전에 6가지가 회복되어야 한다."
다시금 부흥을 주장하는 이는 캘리포니아주 안텔로프 밸리에 위치한 웨스트사이드크리스천펠로우십교회(Westside Christian Fellowship Church)의 셰인 아이들만(Shane Idleman) 목사이다.
그는 "부흥이 오기 전에 반드시 일어나야 할 6가지"(6 Things That Must Happen to Bring Revival)라는 제목의 최신 칼럼을 통해 먼저 "정치적 공정성(political correctness)과 상대주의로 포화된 문화 속에서 우리는 과연 미국에 더 이상 희망이 남아 있는지 질문하게 된다"고 묻고, "우리가 이 경사로에서 계속해서 추락한다면, 희망이 거의 없을 것"이라 했다.
이어 아이들만 목사는 "전 국가적 영적 대각성 외에는 타이타닉호와 같은 상황에서 돌아서는 것이 어려울 것"이라 지적하고, "하나님께서 부흥을 주신다면, 우리가 다시 한 번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하나님께도 돌릴 수 있다면, 여전히 희망이 있다"고 이야기 했다. 그러면서 그는 '부흥이 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6가지'를 지적했다.
1. 진리의 절실한 필요성을 인정하라.
절대 진리는 지금 생사가 걸린 고지(a hill on which to die)에 있다.
전쟁에서는 빼앗아 점령하거나 방어해야 할 핵심 진지들이 있다.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이 핵심 진지들을 위해 모든 대가를 치러야 한다. 이 핵심 진지들을 생사가 걸린 고지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절대 진리가 이런 생사가 걸린 고지 가운데 있다. 적들의 무기는 국가와 가정과 가족들을 향해 있다.
상대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은 계속해서 진리에 도전하고 있고, 이것은 자기 파멸을 가져올 뿐이다. 절대 진리를 공격하는 것은 등대를 공격하는 것과 같다. 이것은 협상이나 흥정, 논쟁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사람이나 단체, 교단, 또는 운동이 절대 진리로부터 멀어질 때, 이로 인해 성령을 근심하게 하고 소멸시킬 때, 그들은 기독교에 대해 기계적으로 접근하게 되고 사람들과 시대를 인도할 수 있는 능력을 잃어버린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들의 가슴에 타오르는 불꽃이 아니며, 상대적이고, 권세 없고(무력하고), 논쟁의 대상일 뿐이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것으로, 많은 사람들은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진정으로, 신령과 진리로 하나님을 경배하고 있지 않다.
불행히도, 경고의 음성을 내는 기독교인들은 비이성적이고, 판단과 정죄를 일삼고, 편견으로 가득하고 편협하며 비관용적이라고 매도된다. 하지만 정면으로 부딪히지 않고 어떻게 경고할 수 있겠는가? (경고를 부드럽게 할 수 있는 길이 있는가? - 편집자 주) 우리는 진리를 관대하게(tolerable) 만들라고 부르심을 받은 것이 아니라 진리를 분명히(clear) 하라고 부르심을 받았다.
2. 사랑의 절실한 필요성을 인정하라.
우리가 성경의 진리, 절대 진리를 잘 전할 수 있도록 히브리어나 헬라어를 잘 읽고 해석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면, 다른 사람들이 우리가 예수의 제자인 것을 알 수 있을까?
우리가 얼마나 많은 성경구절을 인용하고 얼마나 성경을 자주 읽는지를 통해 사람들은 우리가 예수의 제자인 것을 알 수 있을까?
대답은 두 말 할 것도 없다. "아니오(No)"다.
예수께서는 지식이 아니라 사랑이 진정한 제자의 특징이라고 말씀하셨다.
물론 신학도 중요하다. 하지만 성령의 인도하심 없이 성경을 가르칠 수 있는가? 문자는 죽이는 것이고, 영은 살리는 것이지 않는가(고후 3:6)?
신학은 현대판 바리새인들의 옥토가 되고 있다.
신학생들이 얼마나 자주 (지식이 아니라) 지혜를 위해서 금식하고 기도하라고 가르침을 받고 있는가?
신학생들이 얼마나 자주 헬라어 이상으로 깨어짐과 회개의 필요성에 대해 가르침을 받고 있는가?
많은 신학생들이 목회학석사(M. Div.)에 대해 걱정하지만, 진정한 매스터(Master, 주인)으로부터 학위를 인정 받는 것에 대해서는 신경쓰지 않는다.
우리는 진리와 사랑에 있어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진리도 중요하지만, 사랑도 중요하다. 기독교의 진리는 사랑의 진리, 사랑에 의한 진리, 사랑을 위한 진리가 되어야 한다. - 편집자 주)
3. 거룩(성결)의 절실한 필요성을 인정하라.
거룩은 내숭떠는, 숙녀인척 하는 단어, 구닥다리 같은 오래된 단어가 아니다.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죄를 짓도록 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분리되는 것, 구별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이 정신적인 것이든(생각하는것), 물리적인 것이든(행하는 것). 거룩은 마음으로부터 시작된다. 우리는 또 우리가 행하는 것이나 말하는 모든 것에서 계속해서 거룩을 추구해야 한다.
A.W. 토저(A.W. Tozer)는 "성령은 무엇보다 도덕적 불꽃이다. 그것은 언어의 사건이 아니다. 거룩이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든지, 도덕적 순결이라는 사상을 수반한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왜 의지적으로 원수의 적진으로 걸어가는가? 왜 성령을 근심하게 하고 소멸시키는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으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계속해서 채우면서,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갈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R.A 토리(R.A. Torrey)는 "육체의 만족과 성령의 충만은 손에 손을 잡고 함께 갈 수 없다"고 말했다. 마태복음 12장 34절은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고 했다.
들어온 것이 나간다. (하나님으로부터 거룩이 들어와야 거룩이 나간다. 성령이 들어와야 거룩이 나간다. 거룩한 말씀을 읽고 들어야 거룩이 나간다. - 편집자 주) 지금의 때는 거룩이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때다. 그것은 우리의 가정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4. 기도의 절실한 필요성을 인정하라.
기도 없는 기독교인은 능력 없는, 권능 없는 기독교인이다. 오늘날 교회 안에 타협하지 않는 영적 힘을 가진 기독교인들은 어디에 있는가?
감사하게도, 남은 자들이 있으며, 나는 그들로 인해 감사한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교회 안에는 이런 자들이 많지 않다.
이 엠 바운즈(E.M. Bounds)는 매일 새벽 4시부터 3시간 동안 기도했다. 그에게 있어서 기도는 우선순위였다.
2차 영적 대각성 운동 기간에 목회자였던 에드워드 페이슨(Edward Payson) 목사는 너무 기도를 해서 딱딱한 나무 바닥에 움푹 들어간 곳이 있을 정도였다.
버마(미얀마) 선교사인 아도니럼 저드슨(Adoniram Judson)도 기도의 삶을 살았고, 그것은 중국내지선교회(China Inland Mission)의 설립자인 허드슨 테일러(J. Hudson Taylor)도 마찬가지였다.
조지 뮬러(George Mueller)는 1800년대에 고아들을 키우기 위해 필요했던 재정 수백만 달러를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해결했다.
감리교 운동의 지도자 중 한 명인 존 플레처(John Fletcher)는 1785년 소천할 때까지 기도의 삶을 살았는데, 너무 기도해서 그의 기도할 때 내쉬는 숨으로 인해 방의 벽들이 더러워졌을 정도였다.
하나님께 위대하게 쓰임 받았던 이들은 남성이든 여성이든 모두 기도의 사람들이었다.
5. 능력의 절대적 필요성을 인정하라.
성령은 이상한 존재가 아니라 신비로운 힘이다. 그분은 하나님의 삼위 중 한 분이시다. 그는 우리로 하여금 의에 주리고 목마르게 할 수 있으며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갈 수 있도록 권능을 부여한다.
또 항상 성령으로 충만한 삶을 살아가는 기독교인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있고 운동력이 있다. 찰스 스펄전은 "해머가 있다 한들, 그것을 움켜쥐는 손이 없다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이처럼 하나님의 성령이 없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고 말했다.
D. L. 무디(D.L. Moody)는 당시의 성경 교사들에 의해 깊이 슬픔을 느끼면서 "그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한 가지는 성령의 능력이라는 것을 그들은 왜 알지 못하는가?"라고 말했다. 오늘날의 많은 사람들처럼, 그들은 전능하신 성령의 충만의 필요성을 인정하지 못했다.
왜 많은 사람들이 성령의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지 못할까? 아마도 대부분의 경우 그 대답은 바로 교만 때문일 것이다. 많은 이들이 자신들에게 부족함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를 원치 않는다. 우리가 한 번도 경험해본 적이 없는 것을 지지하고 보증하는 것은 어렵다. 기독교인들은 모두 성령을 체험했을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기독교인들은 모두 성령께 자신을 내어 맡기고 있는가? 이것은 부흥을 맛보기 위해 가장 결정적인 단계다.
6. 그리스도의 절실한 필요성을 인정하라.
최근 통계가 사실이라면, 많은 사람들은 계속해서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있고 다시 돌아오지 않고 있다. 또는 이들은 매력적으로 미화된 기독교를 받아들이겠지만, 그 결과는 전자와 마찬가지다.
삶은 운동장(playground)이 아니라 전장(battleground)이다. 예수는 누구신가? 이 질문에 어떻게 답하느냐는 옳음과 그름, 빛과 어둠, 천국과 지옥의 차이를 낳는다.
이 질문에 대해 사도 베드로는 정확하게 답했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
예수께서도 자신에 대해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고 하셨다.
예수께서는 또 자신을 믿는 자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는 체험을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요 7:38).
이것이 부흥이다.
당신이 이러한 생명으로 충만한 삶을 경험하지 못하고 있다면, 당신은 영적 생명의 진정한 근원에 진정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오늘 당신의 삶을 온전히 내어드림으로 개인적인 부흥을 체험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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