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가시노 게이고와 함께 일본 미스터리 소설계를 양분한다 해도 과언이 아닌 미야베 미유키. 이미 『모방범』으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필력을 자랑한 그녀는 한국에서도 고정독자층이 많다. 탄탄한 구성과 치밀한 전개, 전문가를 능가하는 자료조사는 미야베 미유키의 전매특허다. 하지만 이 모든 감탄사를 뛰어 넘는 것은 끝까지 인간에 대한 애정을 잃지 않는 세심한 심리묘사다. 이 동일함이 그녀가 집필하는 소설 특유의 아우라다.
미야베 미유키는 사회파 미스터리라는 장르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작가다. 등단하기 전 법률회사에 근무한 그녀는 여러 소송 사건들을 접하게 된다. 미야베 미유키는 이 때의 경험을 소재로 글을 쓴다. 자살, 방화, 살인, 도난 등등 그녀가 쓰는 소설은 어둡다. 굉장히 긴 호흡으로 독자에게 깊은 내상을 남긴다. 그러나 일단 책을 손에 들면 도중에 놓을 수 없다. 그녀의 어떤 작품을 읽을지, 그 시작은 독자의 몫이지만 끝을 내는 건 항상 미야베 미유키다.
『화차』는『모방범』으로 스타일이 만개하기 직전,『스냐크 사냥』의 낯선 기시감이 가신 후 미야베 미유키 소설이 본격적으로 발동을 거는 시점의 작품이다. 휴직 중인 형사 혼마는 친척 가즈야로부터 약혼녀 세키네 쇼코를 찾아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결혼을 앞둔 여자친구가 갑자기 사라졌다는 것.
가즈야는 세키네 쇼코를 찾는 과정에서 그녀가 예전에 신용카드를 발급받는 과정에서 개인파산 신청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그녀가 자취를 감췄다는 것이다. 가즈야는 먼 친척일 뿐이지만 마침 일을 쉬게 된 혼마는 세키네 쇼코를 추적한다. 그리고 그녀의 또다른 모습을 알게 된다.
세키네 쇼코의 이면은 일본사회와 직결된다. 이 책을 요약한다면 "신용카드가 초래한 개인의 불행" 정도다.『화차』의 배경이 되는 90년대 초, 일본은 거품경제가 붕괴하고 있었다. 신용카드와 소비자금융 등 사회체제는 거대 자본에 휘둘린다. 회사는 중심을 잃고, 국민은 안정을 박탈당하며 개개인의 비극은 본격화된다. 물질적 욕망을 추구하다 낙오된 사람들이 서민사회의 근간을 뒤흔들며 혼란을 초래한다.
다중채무자라는 과거를 버리기 위해 '타인의 삶'을 자신의 외피로 위장한 세키네 쇼코를 쉽게 비난할 순 없다. 그녀가 추구한 것은 '소박한 일상'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이 갈망은 단순한 허영이 아니며, 그 은폐는 사랑을 기만하는 행위가 아니다. 지금 우리가 열망하는 '평범한 행복'이 세키네 쇼코의 전부였기 때문이다.
미야베 미유키는『화차』를 통해 당시 일본 국민들이 직면했던 사회의 구조적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끝까지 잃지 말아야 할 것은 '인간다움'임을 역설한다. 그 주체가 돈이든, 사랑이든, 타인이든 절대 자신을 내던지는 무모한 선택은 하지 말 것. 언제, 어디에서나 자신을 지킬 것.
한국에서 영화화한 원작은 이번에 문학동네에서 기존 번역본에 원고지 500매 정도를 추가한 완역본으로 재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