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8월 DMZ에서의 지뢰폭발로 대북확성기 방송이 재개되자 남북의 긴장은 일촉즉발의 상태로 고조되었다. 이 상황에서 남과 북은 협상을 선택했고, 결국 8.25합의를 이루어 갈등을 봉합했다. 그러나 2016년 1월 초 북한이 수소폭탄 실험을 함으로써 대북 확성기방송은 재개되고, 남북 간에는 다시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북한과 협상할 것인가, 아니면 전쟁을 할 것인가? 그리고 협상을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이고 전쟁을 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하버드대학의 협상프로그램 책임자인 로버트 누킨(Robert Mnookin) 교수는 2010년 <악마와 흥정하기: 협상할 때와 싸울 때>라는 책을 출판했다. 누킨은 우선 다섯 가지 조건, 즉 ‘협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있는지, 협상을 통하지 않고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어떤지, 협상의 결과가 양측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지, 합의가 지켜질 수 있는지, 협상의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지’ 등을 따져보고, 이에 대해 긍정적인 답변이 나온다면 악마와도 협상을 해야 하고, 이에 대해 부정적인 답변이 나온다면 싸울 준비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넬슨 만델라를 협상할 때를 안 사람으로, 윈스턴 처칠을 싸울 때를 안 사람으로 분류하면서 두 사람 모두 위대한 업적을 이루었다고 평가했다.
누킨의 조건을 검토하면 지금 남과 북, 그리고 북한과 미국은 협상을 해야 할 때이지 전쟁을 해야 할 때가 아니다. 그렇다면 북한과 협상을 하기 위해 어떻게 할 것인가? 앞에서 언급한 누킨은 협상가는 ①상대방을 악마로 보는 것, ②내 편 네 편으로 나누는 행위, ③상대방을 인간으로 인정하지 않는 행동, ④우리 편에 모든 도덕적인 정당성이 있다고 믿는 행위, ⑤내가 이기면 너는 져야 한다는 제로섬 접근법, ⑥‘싸우거나 도망치거나’라는 자세로 상대방을 대하는 행동, ⑦‘모두 진격 앞으로’를 외치는 전쟁적인 태도 등을 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FBI 위기협상팀장으로서 30년간 인질범들과 협상을 벌인 게리 노에스너(Gary Noesner)도 <시간끌기-FBI 인질협상가의 삶>에서 사람의 목숨이 경각에 달려있는 인질극의 상황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려면 협상가는 무조건 인질범에게 존중의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인질범에게 관심과 공감의 반응을 보여줘 교감을 나눠야 상대방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 즉 ‘태도 변화의 계단’을 밟고 올라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어떤 사람은 북한의 핵과 체제를 부정하고 전쟁, 그것도 핵전쟁을 각오하고 강경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한다. 세계최강의 군사력을 가진 한미동맹은 전쟁을 통해 북한의 핵을 제거할 수도 있고, 나아가 ‘작계 5015’에 따라 북의 지도부를 참수할 수도 있다. 그러나 민족의 파멸로 귀결되는 핵전쟁은 우리의 선택이 될 수 없다. 이명박 정부 이래 박근혜 정부까지 지속된 대북 고립정책, 부시정부 이래 오바마정부까지 지속된 대북 무시(전략적 인내)정책은 북핵문제 해결의 해법이 될 수 없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7.4공동선언에서 10.4정상선언까지 남북이 합의한 합의서 및 2005년 ‘9.19공동성명’으로 돌아가 서로를 인정하고 협상하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윈스턴 처칠처럼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준비할 때가 아니라 넬슨 만델라처럼 처절한 협상을 시작해야 할 때임을 명심해야 한다. 그리고 이 협상을 위해 역대정부의 합의를 깊이 살펴보고 온 힘을 다해 창의적인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아르키메데스는 말했다. “나에게 지렛대를 달라. 그러면 지구도 움직여 보겠다.” 나는 말한다. “나에게 협상권을 달라. 그러면 한반도의 갈등을 해결해 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