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이선규 목사] 사랑이라는 말에 대해 묻는다면 ‘사랑하라’는 것 이상으로 더 할 말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너희에게 새 계명을 주겠다’. “서로 사랑 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 하여라(요한13:34) 예수님께서 이렇게 사랑의 실천을 강조 하셨다.
또한 복음서를 기록한 목적을 덧붙인다. 그리스도를 믿어서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라고 끝을 맺는다.
일단 이렇게 끝을 맺은 요한은 다시 에피소드를 추가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 내용은 부활하신 주님께서 호숫가에서 제자들에게 나타나 함께 아침을 드신 후 베드로 에게 “네가 나를 사랑 하느냐”라고 세 번을 묻고는 나를 따르라고 마지막 유언을 남기는 장면이다.
나는 요즘 이 장면을 주목하여 보고 있다. 복음의 사역자의 길을 가기로 다짐을 하였으나 고향 교회를 섬기는 목회자를 보니 얼마나 고생을 하는가? 식량도 여신도 교인들이 성미를 모아 간신이 생계나 꾸려갈 정도이고 가을에는 교우들과 함께 산에 가서 나무를 하여 땔감을 마련하여 드리는 모습을 볼 때 처음에 먹었던 마음이 사라지게 되었다.
그때마다 나는 이 말씀을 읽고 다시 힘을 얻곤 하였다.
네가 나를 사랑 하느냐 라는 이 질문은 바로 나를 향하여 주시는 말씀이구나. 를 향 하 깊이 깨닫고 제 평생의 화두로 삼기로 결심하였다. 마치 주님께서 베드로를 만난 첫 순간에 베드로를 눈여겨보시고 ‘너는 요한의 아들 시몬이 아니드냐?’라고 말씀 하신 것처럼 나에게도 들려주시는 음성으로 들려오게 되었다.
힘들고 낙심 될 때 우리에게 나를 사랑 하느냐?는 그 질문을 평생 새기기로 다짐을 하였다. 그러다가 요즘 요한 계시록 2:4절에는 [그러나 네게 나무랄 것이 있다.
그것은 네가 첫 사랑을 버린 알아다]라는 말씀을 새롭게 다가온다. 에베소 교회를 위하여 참고 또 그의 이름을 위하여 잘 견딘 교회 아닌가?
그러나 그들은 주님께 바쳤던 첫 사랑을 버린 교회가 되고 말았다. 성경은 주님께 바쳤던 첫 사랑을 버린 이 교회를 향하여 다음과 같이 경고한다.
“그러므로 네가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여 회개하고 처음에 하던 일을 하라”
만일 그렇지 않고 회개하지 않는다면 “내가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로 부터 옮기겠다”고 하신다.
첫 사랑은 그것이 어떤 형태의 것이든 아름답지 않은가? 세상에는 첫 사랑이 무엇인지 조차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들은 너무나 재 빨리 첫 사랑을 체험 하고는 재 빨리 잊어버린다.
언제 내 몸과 마음을 스쳐 갔는지 조차 기억 못하는 첫 사랑이란 있으나 마나한 것이고 차라리 그것은 비극이다.
첫사랑이 아름답다고 하는 것은 그것이 비록 이루어 지지 않은 사랑 이라고 할지라도 두고 구고 아름다운 추억이 될 수 있는 사랑일 때 해당이 된다.
만일 이와 같은 사랑을 스스로 포기 했거나 예상치 않았던 제3자의 방해를 받아 망가져버린다면 그것은 영원히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만다.
에베소 교회의 경우는 스스로 버린 사랑으로 표현하고 있다. 스스로 첫 사랑을 버린다는 것은 자기 배반, 또는 자기기만이 아니면 변절일 것이다.
만일 기독교 윤리학에서 첫째 되는 죄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변절] 다시 말하면 사랑의 배반 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들 중 주님을 배반한 변절자 가룟 유다에 대하여 주님은 노기 띤 목소리로 ‘이 사람은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좋을 뻔하였다.’라고 말씀하신 의미를 이해 할 것 같다.
세상에 태어나지 않아도 좋은 사람들 -세상은 그런 사람들로 들끓고 있는 아닌지... 에베소 교회는 믿음을 지키기 위하여 ‘수고도 많이 하고 참기도 잘한’ 교회였다. 그러나 그들은 첫 사랑을 버린 교회였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첫 사랑을 끝까지 간직 할 수 있다면 만일 두고, 두고 기억 할 만 한 첫 사랑을 간직하고 있다면 얼마나 행복하고 황홀한가?
속히 사랑 했다가 쉽게 내 던지는 사랑 너무나 빨리 뜨거웠다가 빨리 내 던지고 쉽게 잊어버리는 사랑 이와 같은 사랑은 있으나 마나한 사랑있어도 그만 없어도 아쉬울 것 없는 그런 사랑 이라면 차라리 없었던 것이 좋았을지도 모른다.
이제 한국 교회는 첫 사랑을 회복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고난과 시련도 역경의 골짜기를 걸으면서도 조국을 사랑하고 고통당하는 자들을 돌아보았던 그 열정을 어디에서 잃어 버렸는가? 물으시는 주님의 음성이 한국 교회와 요즘 첫 사랑을 잃어버린 것 같은 나에게 들려오는 듯하다.
금년 한 해가 사랑을 회복하는 원년으로 기록되기를 소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