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 28일 한ㆍ일 외교장관의 합의를 즉각 파기하라!
“여호와께서 영원히 앉으심이여 심판을 위하여 보좌를 준비하셨도다 공의로 세계를 심판하심이여 정직으로 만민에게 판결을 내리시리로다” (시편 9:7-8)
2015년 12월 28일 한국과 일본의 외교장관은 회담을 열고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최종적ㆍ불가역적’ 해결을 선언하는 합의사항을 발표하였다.
이 땅에 하나님의 정의가 이뤄지기를 기도해 온 한국기독교장로회는 그 합의문 자체가 지니는 문제점을 주목했을 뿐 아니라 이후 이 문제를 둘러싼 한일 양국 정부 당국자간의 일련의 태도를 지켜보아 왔다. 명백히 합의 자체도 문제를 지니고 있거니와 이후 양국 당국자들의 태도 또한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진정성이 있었는지 심히 의심스러운 상황이다. 이에 한국기독교장로회는 그 합의의 문제점을 다시금 지적하며, 그 합의는 파기되어야 한다는 것을 천명한다.
첫째,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한일 외교장관의 합의는 피해 당사자의 입장이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다. 피해의 회복은 피해의 결과를 가능한 한 제거하고 교정함으로써 피해자의 고통을 구제하고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어야 하며, 또한 마땅히 피해자의 필요와 요망에 부응해야 하고 원상회복과 배상, 갱생, 만족, 재발방지의 보증을 충족시켜야 한다. 그것이 국제적 규범이 요청하는 피해 회복의 요건이다. 피해의 회복은 인간 존엄에 근거한 정의를 확립하는 것을 요체로 한다. 한일 외교장관의 합의는 이러한 기준에 전혀 미치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최소한 피해자의 의견청취마저도 생략된 졸속 합의일 뿐이다.
둘째, 일본군‘위안부’ 문제는 한일 양국간의 외교적 타협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보편적 문제로서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일본군‘위안부’ 문제는 지난 세기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통치와 전쟁의 과정에서 국가가 개입하여 일으킨 여러 범죄행위 가운데 가장 심각한 반인륜적 범죄행위로서 세계적 이목을 집중시킨 문제이다. 일본군‘위안부’ 동원은 제국주의 시대 국가폭력에 의해 희생된 민중의 고통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주는 대표적 사례이자 동시에 차마 인간이 인간에게 강요해서는 안 되는 참혹성을 지닌 반인륜적 범죄행위로서 문명사회가 직시해야만 하는 사태이다. 따라서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해결은 인류 문명사회의 윤리적 고양을 가늠하는 시금석이라 할 만큼 중차대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처럼 중차대한 문제가 그 어떤 피해의 회복과 정의의 확립을 위한 절차도 없이 단지 한ㆍ일 양국 외교장관의 합의에 의해 ‘최종적ㆍ불가역적’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셋째,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한ㆍ일 외교장관의 합의는 동아시아에서 불철저한 전후처리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동아시아 평화의 확립에도 저해 요인이 되고 있다. 이번 외교적 합의가 황급히 이뤄진 배경에는 한ㆍ미ㆍ일 동맹관계를 중심으로 동아시아 질서를 구축하는 데서 한ㆍ일간의 갈등을 시급히 해결하고자 하는 미국의 전략적 의도가 개입되어 있다는 것이 확인되고 있다. 1945년 도쿄재판에서, 1952년 샌프란시스코조약에서 청산되었어야 할 전쟁범죄는 미국주도의 국제적 역학구도 안에서 무마되고 말았다는 것을 역사는 기억하고 있다. 청산되지 못한 과거의 불행한 역사의 유산이 동아시아에서는 지속되고 있고, 이번 합의 또한 그 맥락에 있는 것이다. 인간의 존엄을 보장하고 정의를 이루기 위한 과정으로서 합의가 아니라 전략적 이해관계를 관철시키려는 과정으로서 외교적 타협은 또 다른 불의와 갈등을 배태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합의를 강요한 미국정부와 일본정부의 저의가 심히 우려스러울 뿐 아니라 이를 안일하게 받아들인 한국정부의 태도 또한 통탄스럽다 하지 않을 수 없다.
넷째,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한ㆍ일 외교장관의 합의에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실질적인 책임이 있는 일본정부의 책임표명이 없다. 지난 1993년 고노(河野洋平) 담화 이래 1995년 무라야마(村山富市) 담화, 그리고 1998년 김대중(金大中)ㆍ오부치(小淵惠三)의 공동선언, 2010년 간(管直人) 담화(2010)는 일본정부의 공식적 입장을 대변하는 것으로 식민지 지배와 전쟁과 관련하여 그 주체와 책임, 그리고 그 피해의 대상을 분명히 하는 역사인식의 발전과정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지난 2015년 8월 14일 아베(安倍晋三) 담화는 그 책임의 주체를 모호하게 피해감으로써 역사인식의 퇴보를 보여주었고, 이번 합의에서도 그 입장은 그대로 지속되었다. 그러기에 합의 이후에도 일본정부는 한ㆍ일간에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종결되었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을 뿐 책임적인 태도의 진정성은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다섯째, 과거의 역사를 기억하고자 하는 시민들이 내세운 평화의 소녀상은 국가간 외교적 타협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역사 속에, 그리고 살아 있는 구체적 사람들 가운데 기억되고 있는 역사적 진실을 국가간 외교적 타협으로 지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커다란 망상일 뿐이다. 그 기억을 지우고자 하는 것은 결국 그 기억이 담고 있는 진실로부터 외면하고자 하는 파렴치함을 드러내는 것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과거에 대해 눈을 감는 자는 결국 현재에 대해서도 눈이 멀게 된다는 진실, 망각은 노예의 길이지만 기억은 구원의 신비를 뜻하는 진실을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는 2015년 12월 28일 한ㆍ일 외교장관의 합의는 파기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다. ‘최종적ㆍ불가역적’으로 해결된 것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아니다. 인간 존엄과 정의의 정신과는 무관한 한ㆍ일 외교장관의 합의가 ‘최종적ㆍ불가역적’으로 파기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는 성서가 일관되게 강조하는 정의의 관점에서 역사적 범죄행위에 대한 책임의 문제에 접근하여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성서가 강조하는 정의의 요체는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의 온전함을 이룸과 동시에 그것의 구체적 표현으로서 인간관계 그 자체의 온전함을 이루는 데 있다. 인간관계의 온전함은 사회적으로 가장 연약한 처지에 있는 사람, 가장 절박하게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사람이 과연 삶을 보장받으며 존엄성을 지킬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그것은 인권과 정의의 요구에 상응한다. 바로 그 보편적 인권과 정의의 관점에서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그것은 한편으로 가해자의 책임을 엄중하게 묻는 한편 피해자의 피해회복을 동반하여야 한다. 그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 한 ‘최종적ㆍ불가역적’ 해결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는 세계 모든 동역자들과 더불어 이 문제의 해결 과정을 지켜볼 것이며, 그야말로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헌신할 것이다.
2016년 1월 14일
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 총회장 최부옥 목사
총회 교회와사회위원장 김경호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