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 밖에, 한 신문사 기자에게 전화를 받았습니다. 소위 '헬조선'을 살아가는 기독청년을 위해 몇 마디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연구한 바는 없지만, 중요한 주제라서 소통을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청년들과 대화한 경험들을 토대로 정리해 봅니다.
'헬조선'이라는 말,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 논란, 최근에는 '설국열차 같은 한국열차' 이야기까지, 점점 더 파괴되는 가정환경과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는 부실한 복지제도, 지나친 기업위주의 정책으로 인한 노동환경 악화 등이 구조적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단순히, 청년들에게 '자기계발'에 몰두하고, '할 수 있거든이 무엇이냐' 혹은 '안 되면 되게하라'는 식의 전후세대의 용기와 투지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헬조선' 논란은, 사회 구조 자체가 불공정하고 불의하다는 의식이 핵심입니다. 이런 사회와 세상을 그대로 두고, 교회도 역시 '예수 믿고 복 받자, 이중, 삼중, 사중 축복이다'는 식으로 유사-복음에서 나오지 못한다면, 이 시대의 청년들은 좌절할 것입니다.
그것은 최근 점점 더 독자들에게 외면받기 시작한 '자기계발서'의 허구성과 동일한 맥락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왜곡한 교회가 세상에 선한 영향을 주지 못하고, 그 세속적 욕망과 경쟁에 뛰어들어, 스스로 세상처럼 되어버렸기 때문에, 기독청년들이 더욱 답을 찾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미 일어나고 있는 운동이지만, 그래서 기독청년들에게 해법은 복음의 회복, 교회의 회복이 먼저일 것입니다. 세속화된 복음, '자기계발서'같은 복음과 설교, 그런 경쟁을 부추기다 못해 이제는 '상급론'을 오용하여 세속적 욕망과 경쟁을 부채질하는 일은 부질없는 것입니다. 유효기간이 지난 것이고, '헬조선'같은 세상을 진정으로 이기게 못합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세상을 상대화 시키는 절대 복음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절대 복음입니다.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가 아니라,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그 아들을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절대 복음입니다. 세상을 이기신 그 '하나님의 아들의 생명'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절대 복음입니다.
무엇보다, 복음의 '반(反)세상적, 반(反)시대적' 성격이 드러나야 합니다. '세상에서' 이기는 복음이 아니라, 진정 '세상을' 이기는 복음이 부각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 즉, 이 세상 나라를 하나님과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로 변화시키는 복음의 능력과 규모, 그 방식과 가능성을 재발견하고, 기독청년들이 이 복음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복음'으로 회복된 청년들에게 '헬조선'이라는 전쟁터는 무엇을 의미하며, 어떻게 살아나가야 합니까?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우선, 한 때 유행했던 '고지론'(高地論)이나 '청부론'(淸富論)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구지 '저지론'(低地論?, '낮은 데로 내려가자')라든지, '청빈론'(淸貧論)을 제시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돈'을 중심으로 높고 낮은 곳을 일부러 찾아갈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주신 은사와 소명을 발견하고 그것을 계발하여 세상 속에서 하나님께서 두신 그 자리에 서고자 애쓰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훈련하고 결단하며 그 자리에 감사함과 사명으로 서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복음을 가진 자'로서 '세상을 위한 제사장 공동체'인 교회로서의 삶을 살아내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조금 더 구체적으로, 절대 복음, 하나님 나라의 복음으로 회복된 청년들이, 무거운 부모의 그늘, 과거의 그늘에서 벗어나도록 힘써야 한다고 봅니다. 깨어진 가정이 많고, 부모가 지워놓은 무거운 사슬을 메고 헤어 나오지 못하는 청년들이 정말 많습니다.
어렵지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의지하여, 부모를 떠나야 합니다. 외부의 도움도 있어야 하지만, 심령으로부터, 믿음으로 오직 하나님과 함께 자기 자신의 삶을 살도록, 자신의 미래를 향해 결단하고 떠나는 일이 필요합니다.
또한, 이런 무한경쟁 사회 속에서 가장 소모적인 일은, 자신이 뛰어야 하는 트랙이 아닌, 다른 트랙에서 끝없는 경쟁을 하는 일일 것입니다. 복음을 발견하면, 자신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발견하면, 나를 이 세상에 보내신 뜻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나의 은사, 열정, 기뻐하는 일을 발견하고, 삶의 여러 영역들을 연결하여, 집중해야 합니다. 그리고 소명을 발견했으면, 사명이 주어질 때까지 인내를 가지고 훈련하고 준비해야 합니다. 세속적으로 성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 자리에서 충성되고 신실하게 살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이런 복음적인 삶, 자신의 소명을 따라 사는 삶에는 참으로 뜨거운 격려가 필요하고, 무엇보다 '세속적이지 않은' 참된 사랑의 공동체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교회의 회복이 절실합니다. 기독청년들이 이 일에 기여해야 합니다. 세속적 복음을 몰아내고,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세상을 살리려고 보내신 그 아들의 생명과 아버지의 사랑, 성령의 거룩하게 하시는 역사가, 사랑의 사귐 가운데 가득한, 지친 심령들을 환대하는 사랑의 공동체로 회복되어야 합니다.
이와 더불어 반드시, 세상을 향해 교회에게 주신 '제사장 공동체'의 사명을 회복해야 합니다. 교회들이, 기독청년들이 연대하여, 경제, 정치, 문화, 예술, 교육 등의 분야에, 의롭고 선하고 아름다운 영향을 끼치려는 다각적이고 부단한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어렵습니다.
하지만, 도전해볼만한 새 시대의 사명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미 실험을 하고 열매를 맺어가는 교회들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희망은, 이미 '지옥 같은' 이 세상을 이기신 그분에게 있습니다. 이미 와 있고, 오고 있고, 반드시 오게 될 하나님의 통치, 그 생명과 은혜와 진리, 의와 거룩과 사랑의 통치의 견고하고 확실함에 있습니다.
저에게는, 아직은 이런 정도의 해결책 밖에 생각나지 않습니다. 더 많은 지혜들이 모아지기를 기대합니다. 부디, '지옥 같은' 세상을 이길 복음과 그런 복음을 가진 교회들에서 우후죽순, 참으로 세상을 이기고, 세상을 복되게 하며, 또한 세상을 주께로 돌려 세우는 푸릇푸릇한 기독청년들이 새롭게 일어나기를 엎드려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