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칼럼] 복면의 정치 vs 정치의 복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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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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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신대 채수일 총장

복면(覆面)을 쓴 시위대를 IS 혹은 테러범과 동일시하는 대통령의 발언 후, 그 후에 등장한 평화적 시위에서는 사람들이 가면을 쓰고 등장했습니다. 복면을 쓴 폭력적 시위나, 물대포로 과잉 대응하는 국가폭력을 피하면서 평화적 시위 방식으로 등장한 것이 가면 시위였던 것 같습니다.

비폭력 평화라는 시위의 방법에서만이 아니라, 풍부한 상상력과 기지가 돋보이는 가면들이 등장한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복면을 쓰는 것은 남이 알아보지 못하게 헝겊 등으로 얼굴을 싸서 가리는 것을 말하는데, 복면의 용도는 다양했습니다. 나쁜 짓을 하면서 얼굴을 감추기 위해서도 사용되었지만, 유대교나 이슬람의 종교적 전통에서는 여성을 보호하기 위해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서구 세계에서는 여성에 대한 보호라는 본래적 의미보다는 여성 차별, 여성에 대한 성적 억압의 상징으로 받아드려지고 있지만, 본래는 여성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복면은 그 외에도 최루가스로부터 호흡기를 지키기 위한 용도로도 사용되고, 마스크는 오염된 공기 혹은 전염병으로부터도 보호하기 위한 용도로도 활용되고 있습니다. 얼굴을 가려내서 시위대를 적발하고 처벌하기 위한 채증을 어렵게 한다는 점에서 공권력의 입장에서 보면 불편한 일이겠지요. 그래서 복면을 쓰고 폭력적 시위를 하는 것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엄하게 법을 적용한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입니다.

그러나 '복면의 정치'보다 더 위험한 것, 평화를 더 위협하는 것은 '정치의 복면'입니다. 복면을 쓰고 시위를 하는 것을 '복면의 정치'라고 한다면, 타협의 예술로서의 정치가 실종된 정치, 유머가 없는 정치, 투명하지 않은 정치, 밀실 정치, 측근 정치, 파벌 정치, 국민을 테러리스트로 보는 정부야 말로 '정치의 복면'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복면은 언젠가는 벗겨질 날이 옵니다. 그것이 보호를 위한 것이든 위장을 위한 것이든 사람은 언제까지나 복면을 쓰고 살 수는 없으니까요. 정부에 대하여 시민이 복면을 쓰고, 시민에 대하여 정부가 복면을 써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보지 않는 나라는 불행한 나라입니다.

/평통기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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