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노예' 부정하던 아베, 결단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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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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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등 국제여론의 압박과 지지율에 대한 자신감

[기독일보=정치외교]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역사적인 군위안부 합의를 결단한 배경에는 미국의 요구와 안정된 정권 지지율에 대한 자신감 등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는 28일 연합뉴스의 분석이 눈길을 끈다.

실제 지난 2012년 12월 2번째 총리 임기를 시작하기 전만 해도 군위안부 제도에 일본군과 관(官)이 관여한 사실을 일정한 고노(河野) 담화를 수정할 뜻을 명확히 밝혔던 일본의 대표적 우익 성향 정치인인 아베 총리가 집권 후에도 인터뷰 등 계기에 군위안부 강제연행을 부정하는데 주력했다. 또 '성노예라는 말은 근거없는 중상'이라고 국회에서 주장했다.

이런 경향은 작년 8월 군위안부 문제를 일본 사회에서 처음 부각시킨 아사히신문이 제주도에서 여성들을 강제로 끌고 갔다는 요시다 세이지(사망) 씨 증언에 근거한 기사들을 취소한 뒤로 더 강해졌다.

총리의 입장이 이렇다보니 작년 4월부터 한일 간에 군위안부 관련 국장급 협의가 계속되는 동안 일본은 성의있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아베 총리는 군위안부 문제가 마냥 피해갈 수 없다는 자각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연합뉴스는 분석했다.

우선 그 이유로, 아베 총리는 국제사회에서 자신이 군위안부 부정론자로 비난받는 상황에 직면했다. 올들어 일본과 세계 각국의 학자들이 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집단 성명을 발표했고 미국을 중심으로 군위안부 소녀상이 외국에 하나 둘 설치됐다.

역사인식 문제가 한일관계의 장애물이 되면서 한미일 3자 공조에 차질이 생기는 상황을 종식하려는 미국의 꾸준한 해결 요구도 무시할 수 없었다는 것.

작년 4월 서울에서 열린 한일정상회담 후 공동기자회견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위안부 문제에 대해 "끔찍하고 매우 지독한 인권침해 문제"라고 말한 것은 아베에게도 강한 메시지가 됐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가운데, 아베 총리는 지난 8월 14일 발표한 전후 70년 담화에서 전시(戰時) 하 여성들의 존엄 훼손을 2차례 언급하면서 변화 조짐을 보였다.

이어 11월 2일 박근혜 대통령과의 첫 정상회담(서울)에서 연내 위안부 문제 타결에 대한 '복선'을 깔았다. 박 대통령이 요구한 '연내 해결'을 명시적으로 수용하지는 않았지만 "올해가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이라는 전환점에 해당되는 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가능한 조기에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타결하기 위한 협의를 가속화"하기로 한 것이다.

여기에 집단 자위권 법 강행 처리(9월 19일)로 인해 떨어졌던 내각 지지율이 11월 이후 다시 50%에 육박할 정도로 회복된 것도 아베의 결단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정도 지지율이라면 군위안부와 관련해 양보로 비칠 수 있는 합의를 하더라도 지지층인 보수층이 크게 동요하지 않으리라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는 분석이다. 오히려 외교 과제였던 한일관계에 진전을 일구고 여성인권 문제에서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내년 여름 참의원 선거 득표 전략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아베의 결단에 쐐기를 박은 것은 이달 한국 사법부의 두 결정이었다.

지난 17일 산케이 신문 전 서울지국장에 대한 한국 법원의 무죄 판결과 23일 한일 청구권 협정의 위헌 여부 판단을 회피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아베 총리의 결단에 큰 힘을 실어 주게 됐다.

한일관계 개선을 바라는 한국 정부의 의지가 두 결정에 반영됐다는 판단을 한 아베 총리는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외무상의 연내 방한을 지시하면서 "내가 책임지겠다"고 말하면서, 결단을 굳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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