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이 향년 88세를 일기로 22일 새벽 서거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날 오전 0시 22분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에서 패혈증과 급성심부전으로 숨을 거뒀다고 오병희 서울대병원장이 이날 긴급 브리핑을 통해 밝혔다.
지난 19일 정오께 고열과 호흡곤란 증상으로 입원한 김 전 대통령은 계속 상태가 악화돼 21일 오후 중환자실로 옮겨 치료를 받았지만 상태를 회복하지 못하고 사망에 이르렀다고 오 원장은 설명했다.
서거 당시 김 전 대통령 옆에는 차남 현철씨 등 가족이 자리해 임종했으나 부인 손명순 여사는 곁에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병원에 따르면 김 전 대통령은 2009년부터 반복적인 뇌졸중과 협심증, 폐렴 등으로 수차례 치료를 받아왔으며 지난 2013년 4월부터 2014년 10월까지 반신불수를 동반한 중증 뇌졸중과 급성폐렴으로 입원한 적이 있다.
김 전 대통령은 입원 당시 고열이 동반된 호흡곤란을 겪는 등 이미 상태가 많이 악화된 상태였다. 과거 심장병 관련 스텐트 시술을 받은 이후에도 여러 혈관질환이 있었고, 뇌졸중이 동반되면서 최종 사망한 것으로 병원은 보고 있다.
고인의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에 마련됐다.
김 전 대통령의 서거로 한국 현대정치를 양분해 이끌어왔던 김대중-김영삼으로 상징되는 '양김 시대'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1993년부터 1998년까지 제14대 대통령을 지낸 김 전 대통령은 1927년 12월20일 경남 거제군 장목면 외포리에서 아버지 김홍조(金洪祚)와 어머니 박부연(朴富蓮)의 외아들로 태어난 김 전 대통령은 장목소학교, 통영중학교, 경남고등학교와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1954년 3대 민의원 선거에 최연소로 당선돼 제 5·6·7·8·9·10·13·14대 국회의원까지 9선 의원을 지냈다.
야권 후보단일화에 실패한 채 통일민주당 후보로 독자출마한 1987년 12월 대통령선거에서 당시 민주정의당 노태우(盧泰愚) 후보에게 패해 2위로 낙선했다.
하지만 민주정의당ㆍ신민주공화당과의 3당 합당을 통해 탄생한 거대 여당 민주자유당에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 굴에 들어간다'고 합류, 박철언 전 의원과의 사활을 건 대결 끝에 대선후보에 올랐다. 1992년 대선에서 필생의 라이벌 김대중(金大中) 후보를 물리치고 당선돼 '군정 종식'을 이뤄내며 이른바 '문민시대'를 열었다.
'대도무문'을 좌우명으로 삼았던 김영삼 전 대통령은 평생을 민주화 투쟁과 인권 증진의 외길을 걸으면서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자신의 신조처럼 군사독재 종식과 민주체제 정착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재임 기간 '칼국수'로 상징되는 검소함과 청렴함을 표방하면서 하나회 청산과 금융·부동산 실명제 도입, 지방자치제 실시, 전방위적 부패 척결 등을 통해 사회 시스템을 전반적으로 한 단계 끌어올리는 성과를 냈다.
하지만, 이 같은 업적에도 불구하고 임기 중 '친인척' 비리와 '외환 위기'에 따른 국가 부도 사태 초래하면서 임기 초반 누렸던 국민의 절대적 지지를 대부분 상실하기도 했다.
고인의 유족으로는 부인 손명순 여사와 딸 혜영(63)·혜정(61)·혜숙(54)씨, 아들 은철(59)·현철(56) 씨 등 2남 3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