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주 목사] 남북의 화해와 평화와 통일을 어떻게 이룰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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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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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복음주의협의회 11월 월례회, NCCK 총무 김영주 목사 발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총무 김영주 목사

분단 70년의 기간 동안 남과 북은 끊임없는 부침을 겪었다. 금방 통일이 될 것 같기도 하고 또 전쟁이 날 것 같기도 했다. 이로 인해 사람들이 긴장하고 (한국 내에서보다 국제사회에서 더 걱정) 전쟁의 위협 속에 빠져 있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우리는 남북관계를 너무 낙관적으로 간단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돕고 협력하고 그러다보면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남과 북은 70년동안 켜켜이 불신을 쌓아왔고, 70년동안 서로 다른 이념과 사상으로 교육받아왔다. 남한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북을 저주하는 것이 애국하는 것이고 북을 미워하는 것이 옳은 것이라고 배웠으며, 북을 긍정적으로 보는 것은 용공, 좌경, 종북이라는 단어까지 나올 정도로 적대시한다. 이것이 우리 삶을 전반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남북관계이다.

통일이 되면 다 잘 될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상주의적인 생각이다. 독일이 통일된지 1년이 되었을 때 한독교회협의회의 실무자로 따라간 적이 있다. 동독지역을 방문하며 '과거 시장이었던 사람'의 안내를 받았는데, 그에게서 폭발할 것 같은 분노가 느껴졌다. 동독시장으로 있다가 갑자기 통일이 된 뒤 시장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었다는 그는 지역의 안내가이드를 하며 살고 있지만 매우 분노하고 있었다.

통일문제는 매우 심각한 것이다. 통일은 '사건'이 아니고 '과정'이라는 설정이 있어야 한다. 휴전선이 무너지고 물리적으로 정치적으로 통일되어 한반도에 하나의 정부/ 하나의 정치체제가 세워진다고 해서 그것을 진정한 통일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에 대해 깊이 고민해봐야 한다.

우리는 전쟁의 잔인함을 경험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전쟁을 피해, 신앙을 지키기 위해, 삶의 이유 때문에 피난을 했던 경험이 있다. 그분들에게는 사회적 갈등이나 분노가 단지 이념이나 생각이 아니다. 그들의 내면에 자리 잡힌 것은 체험적 반공이다. 내 부모, 내 형제가 눈앞에서 죽임을 당하는 현장을 목도한 사람들, 자기 삶의 존재가 찢겨져나가는 것을 경험한 사람들에게 '화해'라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남북의 관계에는 죽이고 죽임을 당한 분노가 깔려있다. 자기 삶을 다 걸만한 갈등과 분열이 존재하는 것이 남북관계이다. 정상회담하고 대화하면 금방 해결되는 그런 문제가 아니다.

남쪽에는 전쟁이 남긴 독특한 문화가 있다.

1. 승자독식주의

우리 문화에는 경쟁만 있지, 서로 타협하고 적절하게 분배하는 것이 없다. 이긴 사람이 다 가져가는 승부의 세계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있다.

2. 결과주의

우리 사회에서는 과정이 별로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무엇인가를 얻고 형성하는 과정에서 도덕적이고 신사적이며 정직한 프로세스를 거쳤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 오직 결과만을 중요하게 여긴다.

3. 연고주의

전쟁 끝에 여기저기 흩어져서 살다보니 연고를 중요하게 여기는 문화가 자리잡았다. 고향과 학교와 출신을 따지며 나와의 인연을 헤아려보는 것이 사람들을 맺어주는 끈이 되었다. 실질적이고 합리적인 사고의 유무, 같은 생각의 공유, 동지적 연대가 중요하지 않고, 고향이나 학교 등의 연고가 더 중요하였다. 연고가 우리 사회를 결속시켜주고 그것을 중심으로 사회가 구성되었다. 특히 전쟁 후 미국의 원조를 받는 부분에 있어서는 국기기관에 누구라도 인연이 있어야 생존이 가능했기 때문에 연고주의가 확실하게 자리잡았다.

4. 흑백논리

우리 사회에서는 무지개색으로 세상을 보고 생각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서로 다른 생각이 공존한다는 것이 불가능하고, 맞느냐 틀리느냐의 흑백적 사고가 만연하다.

한국의 이런 상황에서 교회가 무엇을 할 것인가 생각해보아야 한다. 정치/국토적 통일은 교회가 감당하기에는 벅찬 과제이다.

나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국민/민주시민으로서 교회라는 하나님의 공동체가 감당해야 할 것이 화해라고 본다.

냉정하게 살펴볼 때 오늘날의 교회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포기한 것 같다. 교회 내에서조차도 배타적 관념이 지배적이다. 기독교를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라!' 인데 교회의 실제적 상황은 전혀 그렇지 않다.

기독교의 사랑은 도무지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나에게 잘해주는 사람, 나와 생각이 같은 사람, 함께 공존할만한 건강한 내면의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교회에 이 그리스도의 완전한 사랑을 실천해보겠다는 굳은 결단과 기도가 필요하다. 교회가,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는 그리스도의 공동체가 되기로 결심한다면, 남북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통일문제에 참여하면서 하나님께서 왜 한국교회에 이렇게 큰 부흥을 허락하셨는가를 생각해보았다. 물론 한국교회의 부흥에는 영적 지도자들의 헌신과 기도라는 밑거름이 있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셨다면 부흥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하나님께서 한국교회에 부흥을 허락하신 것이 '도무지 화해할 수 없는 남북관계' 앞에서 교회가 화해의 중심에 서라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한국교회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진정으로 실천해보겠다고 다짐하면 남북관계에 희망이 있고, 그런 다짐없이 우리 사회에 깔려있는 체험적 반공주의에 그대로 온존하면 희망이 없다고 생각한다.

통일은 사건이나 결과가 아니라 이루어가는 과정이다. 통일을 사건으로 보는 시각을 가지고 있을 때 갑작스러운 통일, 준비되지 않은 통일을 만나는 것은 재앙이 될 것이다. 통일을 이루기 위한 과정 속에서 내가, 그리고 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찾으며 노력하는 것이 전제가 되지 않고, 어느날 갑자기 정상회담을 통해 결과물로 내밀어진 통일을 마주한다면 엄청난 혼돈과 갈등이 시작될 것이다. 우리는 통일의 준비를 어떻게 할 것인지를 근본적으로 다시 검토해봐야 한다.

통일 문제만큼은 한국교회가 인식을 같이 할 수 있는 긴밀한 대화와 협력, 연대가 절실히 필요하다. 남북통일을 말하면서 남쪽의 사람들 사이에서도 생각을 모으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통일은 어려운 일이다. 한국 교회가 통일에 대한 정보와 생각을 나누고 갈등을 풀어내며 마음을 준비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평화교육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는 반공교육만 받아왔지만, 이제는 평화교육이 꼭 필요하다. 평화를 이루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평화란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인지에 대한 각 개인의 주체적 고민과 사고가 필요하다.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평화교육,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한 교육, 그것이 한국교회가 감당해야 할 과제일 것이다.

/한국복음주의협의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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