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노 칼럼] 혈루증 여인

오피니언·칼럼
편집부 기자
press@cdaily.co.kr
▲푸른교회 조성노 담임목사

오랜 가뭄 끝에 찬 가을비가 내립니다. 고마운 단비입니다. 지난 주중에는 남이섬을 다녀왔습니다. 온 대지 위에 내려앉은 색바랜 나뭇잎들을 즐기며 하루 종일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마치 반 고흐의 <해바라기> 화폭처럼 은행나무의 샛노오란 낙엽들이 차라리 여러 색으로 채색된 풍경보다 훨씬 더 정겨워 보이기도 했습니다. 이번 비가 그치면 아무래도 기온이 더 내려가겠지요? 옷 따뜻하게 챙겨 입으시고 모쪼록 늦가을 건강하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회당장 야이로는 당시 유대 사회의 지체 높은 신분이었지만 제 자식이 당장 숨넘어가게 생기자 어쩔 수 없이 평소의 위엄을 다 내려놓고 질퍽한 바닷가 맨땅 위에 무릎을 꿇고 주님께 간청했습니다. 당시 유대 사회 지도층의 대부분이 주님을 경원시하며 이단이니 선동가니 하고 배척하던 상황을 생각해 보면 야이로의 이같은 모습은 참으로 놀랄만한 일이었습니다. 성경은 이때의 장면을 전하며 <이에 예수께서 그와 함께 가실 새 큰 무리가 따라가며 에워싸 밀더라>(막 5:24)고 했습니다. 그런데 돌연 그 행렬을 일시에 정지시킨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느닷없이 주님이 무리들을 둘러 보시며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고 물으신 것입니다. 바닷가에서부터 수많은 사람들에게 에워싸인 채 거의 떠밀리다시피 여기까지 왔으니 주님 옷에 손을 댄 자가 어디 한둘이었겠습니까? 개중에 어떤 이들은 주님이 야이로의 딸을 고칠 자신이 없어 괜히 핑계거리를 찾고 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을 무렵, 다행히도 잔뜩 겁먹은 표정의 한 여인이 주님 앞에 나와 머리를 조아렸습니다. 그 여인이 바로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다 조금 전 주님의 옷에 손을 대고 병나음을 입은 기적의 장본인이었습니다. 결국 주님이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하시며, 주님 뒤에서 몰래 구원을 훔쳤다는 죄책에서 놓여나게 해주셨고 또 축복까지 선언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일로 더 큰 사단이 벌어졌습니다. 혈루증 여인의 등장으로 길에서 시간이 지체되는 동안 회당장의 집에서 급히 사람이 와 딸의 사망 소식을 전하며 더 이상 주님을 집으로 모실 필요가 없게 됐다고 한 것입니다. 회당장이 주님과 여인을 번갈아 쳐다보며 낭패스러움과 절망스러움을 가눌 길 없어 했습니다. 사실 화급을 다투는 병도 아닌 일로 지체하는 바람에 자기 딸의 목숨을 잃은 셈 아닙니까? 눈앞이 아뜩하여 자꾸만 무너지려는 회당장에게 주님이 급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막 5:36). 이것은 너야말로 이 순간 필히 저 미천한 여인의 믿음을 배워야 한다는 암시요 모든 것이 다 끝나고 허사가 된 것 같은 때, 저 여인과 같은 믿음을 따르지 않고는 누구도 감히 구원을 만날 수 없다는 주님의 명쾌한 선언이기도 한 것이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성경은 혈루증 여인이 주님 옷가에 손을 대는 순간 주님이 곧 자기 몸에서 능력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셨다고 했습니다. 회당장 야이로는 주님이 손을 얹어 내 딸을 살려달라고 했지만 혈루증 여인은 자기 스스로 손을 대 주님의 기(氣)를 후욱하고 빨아들인 것입니다. 당시 밀고 당기는 와중에 주님 옷가에 손이 닿은 사람이 어찌 한 둘이었겠습니까마는 강력한 믿음의 흡인력으로 주님의 능력을 훔친 사람은 오직 혈루증 여인 한 사람 뿐이었습니다. 그랬기에 주님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며 그녀의 믿음을 축복하신 겁니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에워싼 채 밀고 당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옛날처럼 사람들을 둘러보시며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고 물으신다면 우리 중 과연 혈루증 여인처럼 <접니다!>하고 나설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가을은 풍성한 열매의 계절입니다. 혈루증 여인과 같은 아름다운 믿음의 열매로 주님을 감동하시게 합시다.

* 노나라의 별이 보내는 편지에서

#조성노

지금 인기 많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