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기독교사학회, 제8회 정기학술대회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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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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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독교 출판역사와 캄보디아 기독교 역사, 일본 기독교 역사를 돌아보다

[기독일보 이수민 기자] 아시아기독교사학회(회장 안교성 교수)가 한국과 일본, 캄보디아의 개신교 역사를 주제로 '제8회 정기학술대회'를 열었다. 31일 오전 장신대에서 열린 행사에서 홍승표 박사(연세대)는 먼저 "19-20세기 동아시아 기독교 출판의 제관계와 동향"(한국 기독교 출판을 중심으로)을 발표했다.

홍승표 박사는 "한국의 기독교 출판은 한·중·일 3국 가운데 가장 뒤쳐진 측면이 있어 처음 근대출판 및 기독교 서적의 도입 역사가 가장 빠르고 길었던 중국의 성과물들을 중요하게 참고해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지만, "선교사들의 한글서적 출판정책이 자리를 잡고, 대중들도 기독교 한문서적보다는 한글서적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게 되면서 한문서적의 영향력은 점차 감소해 가기 시작했다"면서 "결국 1910년 일제에 의한 한국병합으로 인해 한반도가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면서, 일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영역 뿐 아니라, 기독교를 포함한 종교계도 일본의 근대화에 영향을 받게 됐다"고 전했다.

특히 "일제강점이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근대 일본의 다양한 번역서들과 저술들이 한반도에 유입됨으로 인해 한국의 출판 시장에서 일본의 영향력은 증대되어 갔다"고 밝히고, "일본에서 출간되어 반향을 일으켰거나, 보급률에 있어서 검증이 된 책들과 저명한 일본인 기독교 지도자들의 저술 등을 소개하는 경향이 두드러져 갔다"면서 "결국 동아시아에서의 개신교 선교 초기 '구미 → 중국 → 일본 → 한국'이라는 근대 기독교 출판계의 영향 구조는 '구미 + 일본 → 한국'이라는 도식으로 점차 변화해 갔음을 확인하게 된다"고 분석했다.

홍 박사는 "혹자가 이러한 한국기독교 출판의 구도변화를 일제의 식민지근대화론을 합리화하는 근거로서 활용하려 할지 모르겠지만, 이러한 역사적 사실은 오히려 당시의 한국 기독교 출판이 일제당국의 엄혹한 검열과 금압정책, 선교사들의 신학적 규제와 출판 검열이라는 이중구조 하에서 한국 그리스도인들의 주체적 신학수용과 자기신학화가 얼마나 강력하게 제한되고 통제받았는지를 확인하게 해주는 중요한 사례"라면서 "이러한 일제와 선교사에 의한 이중적 기독교 출판 통제의 폐해는, 한국 기독교 출판이 1945년 해방 이후에야 비로소 '구미 → 한국'이라는 직접적이고 능동적인 신학의 수용과 창출을 통해, 주체적 한국 기독교 출판의 역량을 확보하고 모색하는 방향으로 전환되어 갔다"고 설명했다.

장완익 교수(아신대, 캄보디아 주재 GMS 선교사)는 "캄보디아의 1923년 이전 기독교 전래 연구"를 발표하면서, "첫 개신교 선교사가 입국한 1923년 이전에도 캄보디아에는 여러 번 기독교가 소개되었으며, 적지 않은 열매들이 있었지만 그러한 시도와 노력들이 캄보디아 사회와 민족에 뿌리를 내렸다고는 보기 어렵다"고 했다.

장 교수는 "이에 대한 가장 큰 이유는 힌두교와 불교의 두꺼운 표피를 뚫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라 말하고, "힌두교와 불교는 사실상 서로 다른 종교임에도 서로 충돌하지 않고 오히려 서로 도와가며, 캄보디아 사회와 민족에 깊은 뿌리를 내렸다"면서 "기독교가 기독교라는 종교의 모습으로만 접근할 경우, 캄보디아에는 이러한 일이 계속 될 것"이라 했다. 그는 "캄보디아인들에게 새로운 도전과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힘은 또 하나의 종교가 아닌 복음 그 자체"라면서 "캄보디아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들에게 주어진 중요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서정민 교수(일본 메이지가쿠인明治学院 대학)는 "파시즘 절정기 일본기독교에 대한 미국 측 인식"에 대해 발표했다. 그는 "1941년 하와이 진주만 공습을 시작으로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일본에서 '일본 기독교'가 신학적으로는 철저히 ‘일본적 기독교’, ‘일본신학’을 구축하여, 당시의 국가사회의 기본 가치인 천황제 이데올로기에 봉사하고 복속되는 ‘기독교’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서 교수는 "기독교가 스스로 일본 국가사회 내에서 국가가 목표로 하는 세계침략과 파시즘 헤게모니의 실천과정인 전쟁을 미화하고, 심지어 성전(聖戰)으로까지 선양해 나갔으며, 이른바 ‘종교보국’이라는 자발적 애국신앙을 모토로 국방헌금, 부역, 기독교인의 솔선 참전과 교회조직의 전시 효율성 강화를 통해 전쟁수행에 직접 참여하기까지 했다"고 했다. 그는 "일본 파시즘의 절정기에 보인 일본기독교의 이러한 전쟁협력 태도는 당시 시대를 단면화 하여 볼 수 있는 특별하고 돌발적인 현상이 아니라 일본기독교의 수용과 전개 전체가 지닌 일정한 역사성에서 해석될 수 있는 측면"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아시아기독교사학회는 "한국 기독교의 역사는 이제 전환점에 서있다"고 밝히고, "지난 한 세기 한국 기독교의 역사가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만나는 시간이었다면, 지금 한국의 기독교는 해외선교와 디아스포라 공동체를 통해 세계와 만나고 있다"면서 "이처럼 한국의 기독교가 세계로 향해가는 전환의 시점에서 우리는 아시아 기독교인들의 역사적 경험을 이해하고 한국교회의 아시아 경험을 점검하기 위해" 학회를 창립한다며 그 취지를 밝힌 바 있다.

#아시아기독교사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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