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갑작스런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으로 국론이 분열되고, 국가적 차원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검정역사교과서 집필진의 80%가 편향된 역사관을 가져 결국은 하나의 좌편향 교과서라고 볼 수밖에 없다”며 국정화의 정당성을 피력했고,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이번 국정화 문제를 “꼭 이겨야 하는 역사전쟁”으로 규정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수많은 역사학자들과 교사들, 학생과 시민들이 정부의 일방적 결정과 맹목적 강행을 시대착오적・비민주적 발상으로 강력히 비판하며, 이의 저지를 위해 다양한 방식의 운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 나라의 구현과 한국 기독교의 재구성’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신학운동을 전개해온 ‘기독연구원 느헤미야’의 연구위원 및 학생 일동은 정부의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우리의 입장을 천명합니다.
첫째. 우리는 현행 한국사 교과서의 검인정제도를 국정화하려는 정부의 결정을 시대착오적・비민주적 결정으로 간주하고 이를 강력히 반대합니다. 그동안 이 나라 백성은 일제식민통치, 해방과 한국전쟁, 군부독재기를 거치면서, 자주독립과 경제발전, 그리고 민주화를 위해 숭고한 피를 흘려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한국 근대사에 대한 연구와 이해의 수준도 크게 향상되어, 일제의 부정적 잔재인 식민지 근대화론을 상당부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국정교과서가 검인정 교과서로 전환되면서 이런 학문적 성과들이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적절히 반영되어, 한국사 교과서와 수업의 질도 크게 향상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대한민국이 봉건주의적 전근대사회에서 민주주의에 기반한 근대사회로 발전했다는 구체적 증거들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사 교과서를 검인정제도에서 국정화로 전환한다는 정부의 결정은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는 반역사적, 반민주적, 반민족적 행위입니다. 만약 현행 검인정 제도에서 집필진 구성과 집필내용에 심각한 문제가 발견된다면, 이것은 현행 제도를 유지하면서 얼마든지 효과적으로 교정・보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정부의 책임은 역사학자와 교사들이 한국적 상황을 충분히 공감하면서, 학문의 세계적 흐름과 수준에 준하는 연구와 교육을 수행하도록 제도와 환경을 마련해주는 것입니다. 이로써 학생과 국민은 한국의 역사에 대해 더 정확하고 깊이 있는 정보를 획득할 수 있으며, 이 나라의 역사와 현실에 대해 더 큰 사랑과 자부심을 갖게 될 것입니다. 이에, 우리는 정부의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결정을 강력히 반대하며, 이의 철회를 단호히 요구합니다.
둘째. 우리는 근거 없는 비난과 이념공세로 학계와 강단을 모욕하고, 국민에게 잘못된 정보를 유포함으로써 분열과 갈등을 초래한 것에 대해, 정부와 청와대의 진정한 사과를 촉구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검정역사교과서 집필진의 80%가 편향된 역사관을 가져서 하나의 좌편향 교과서라고 볼 수밖에 없다” “학생들이 배우는 역사교과서에는 대한민국은 태어나선 안 될 나라이고, 북한이 정통성이 있는 것처럼 서술돼 있다”고 말했으며, 새누리당은 “김일성 주체사상을 우리 아이들이 배우고 있습니다”란 현수막을 내걸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발언들과 구호들은 사실과 무관한 주관적 판단과 일방적 주장에 불과합니다. 언론을 통해 발표된 대통령과 정부여당의 발언들은 대부분 사실에 대한 정확한 검증과 명백한 근거 없이, 또한 다양한 해석이 공존할 수밖에 없는 역사(학)의 현실에 대한 기본적 이해 없이, 정부의 특별한 정치적 목적을 위해 현재의 검인정 한국사 교과서 집필진을 좌파로 규정하고, 현재 사용 중인 교과서를 좌편향 교과서라고 공개적으로 선언한 것입니다. 이것은 정부의 지침에 따라 한국사 교과서 집필에 성실하고 책임 있게 참여했던 집필진들의 명예를 훼손하고, 기존의 역사교육 자체를 부정하며, 국민에게 왜곡된 정보를 유출하여 국가에 심각한 혼란과 위기를 초래한, 정부와 여당의 무책임하고 비열한 행동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정부와 청와대의 진심어린 공개적 사과를 요구합니다.
셋째. 우리는 정부의 국정화 결정을 맹목적으로 지지하고, 이것을 한국사 교과서 내에 개신교의 지분을 확대할 기회로 삼으려는 일부 개신교 단체와 학자들의 행보에 개탄하며, 통렬한 반성을 촉구합니다. 19세기 말, 우리 민족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을 때, 복음이 전해지고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개신교는 학교와 병원을 세워 민족의 근대화에 크게 공헌했고, 일제에 항거한 수많은 독립운동가와 민족지도자를 배출・후원했습니다. 3.1운동에는 전국의 교회가 참여하여, 수많은 교회와 교인들이 희생되었습니다. 한국전쟁 중에는 다수의 신자들이 신앙을 이유로 공산주의자들에게 목숨을 잃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군부독재 시절, 군사정권의 비민주적 폭정에 적지 않은 수의 기독교인들이 신앙적 양심에 따라 용감히 저항하여, 민주주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이것은 한국교회가 기억하고 보존해야할 소중한 역사입니다. 하지만 3.1운동 이후 수많은 기독교 지도자들이 일제에 협력했고, 강요된 신사참배에 대다수의 교회와 교인들이 참여했습니다. 해방 이후 군부독재를 거치면서, 대다수의 한국교회가 침묵하며 정권에 동조했고, 소수는 적극적으로 협력했습니다. 이것은 교회가 세상 권력과 타협했던 부끄러운 기억의 역사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정부의 국정화 결정과 강행에 일방적 지지를 표명한 일부 기독교 단체와 학자들의 모습에서 일제와 독재의 반민족적・반민주적 정책에 맹목적 지지를 표명하고 협력했던 오욕의 역사를 다시 봅니다. 같은 신앙인으로서, 수치스럽고 안타깝습니다. 현재, 한국교회는 돈과 성과 권력의 유혹 앞에 힘없이 무너지며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교회역사 130년 만에 최대의 위기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교회가 취해야 할 일차적 행동은 교회의 지분을 확보하기 위해, 정부의 부당한 정책을 맹종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위기에 처한 한국교회는 자신의 역사와 현실에 대해 철저히 반성하고 회개함으로써, 기사회생의 전기를 마련하도록 분투해야 합니다. 기억합시다! 이번 정부의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결정에 맹목적 지지를 보내면서 반사이익을 도모하는 것은 한국교회사에 또 하나의 수치스런 기록으로 남을 것입니다. 더 이상의 추락을 멈추시라!
2015년 10월 29일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연구위원 및 학생 일동
(연구위원)
권연경, 김구원, 김근주, 김동춘, 김응교, 김형원, 우종학,
박득훈, 배덕만, 이만열, 이형일, 정대성, 조석민
(학생 및 교직원)
강경란, 강경민, 강도영, 강수연, 강신하, 고상환, 고용주, 공경표, 공영찬, 곽명화,
권경욱, 권명재, 권성호, 권세윤,김경모, 김난희, 김남호, 김대연, 김동신, 김래산,
김민수, 김석주, 김세움, 김소희, 김아름, 김아주, 김연희, 김영문, 김우종, 김유성,
김재근, 김정현, 김종욱, 김주석, 김준길, 김지인, 김 진, 김진협, 김태윤, 김태환,
김 현, 김현주, 김형욱, 나종삼, 남태일, 노성은, 노향림, 노활석, 동방호현, 문형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