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오 칼럼] 종교개혁 500주년 루터에게 듣는다(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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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길: 하이델베르크 논쟁(1518)-논제 11-

▲정진오 목사(미국 시온루터교회 한인 담당목사)

<논제 11> 모든 인간의 행위 안에서 정죄의 심판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면, 교만을 피할 길이 없고, 참된 소망이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은 논제 4에서 분명하게 나타난다. 모든 피조물들 가운데 절망하는 자, 그리고 하나님 없이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아는 자만이 하나님을 믿을 수 있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이, 이러한 순수한 희망을 가진 자가 없기 때문에, 그리고 여전히 우리 자신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분명한 사실은 이러한 모든 것들에 존재하는 불순함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심판을 두려워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행위뿐 아니라 성향이 오만하게 되는 것을 막아야만 한다. 이것은 인간 자신을 확신하는 것은 여전히 우리를 불쾌하게 만들어야만 한다.” (LW 31, 48)

루터는 앞선 논제 10에서 중세 스콜라 전통이 그리스도를 믿지 않지만 선한 행실을 하는 소위 ‘인자한 이방인’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죽은 행실’(dead works)과 ‘죽이는 행실’(deadly works)을 구분하는데, 그러한 구분은 실제로 전혀 이해할 수 없는 호언난어(胡言亂語)와 같다고 주장한다.

논제 11에서 루터는 다시 한 번 중세 스콜라 전통의 그러한 구분을 거부하며, 우리가 행하는 모든 행위들이 심지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행위들 조차 하나님의 심판을 피해 갈 수 없는 죄라는 사실을 고백해야만 한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면 인간은 결국 교만을 피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루터에 의하면, 교만은 모든 인간의 행위를 심지어 ‘선한 행위들’ 조차도 죄악 된 것으로 만든다. 루터는 이를 다음과 같이 날카롭게 표현한다: “모든 인간은 가장 비밀스러운 교만의 악 때문에 끊임없이 죽음에 이르는 죄(mortal sin)를 범한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LW 32: 91) 루터는 1515년과 1516년에 행한 로마서 강해에서 자기 중심적 교만함이 인간 속에 얼마나 깊이 뿌리 박혀 있는지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간 본성은 스스로 자기 자신에게만 관심하고, 자신의 유익만을 추구하며, 자신에게 방해가 되는 것들은 언제나 무시한다. … 인간 본성은 모든 것을 대신해서, 심지어 하나님의 자리에까지 자신을 위치시키고, 하나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자신의 목적만을 추구한다.”(WA 56, 356f)

따라서 인간이 교만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두려움뿐이라고 루터는 말한다: “그러므로 그대가 교만하거나 자랑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대 속에 (하나님의) 심판과 엄격함을 두려워할 이유가 있으며 자비 이외에는 향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대의 행위가 선한 것은 자비를 통해서이지, 그대의 노력을 통해서가 아니다. 그러므로 그대는 한편으로는 자신을 하나님의 심판이 지닌 엄격함에 따라,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자비 속에 있는 관대함에 따라 판단 해야 할 것이다.” (LW 32:212)

루터는 시편 기자의 고백 “주의 종에게 심판을 행치 마소서. 주의 목전에서 의로운 인생이 하나도 없나이다”(시 143:2)를 언급하면서 인간의 선행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견딜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 땅에 있는 한 성도들의 모든 선행은 죄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인간이 선을 행할 때에라도 죄를 짓는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이나, 경미한 죄는 그 본성상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에 의해서만 용서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바울과 그리스도를 동시에 짓밟는 것과 같다. 또한 세례를 받은 후에 아이에게는 죄가 남아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로 바울과 그리스도를 한꺼번에 짓밟는 것과 같은 것이다. (LW 31:317)

그렇다면 심판에 대한 두려움이 어떻게 참 소망이 될 수 있는가?

참된 신앙은 인간의 행위에 대한 하나님의 정죄와 심판의 두려움을 통해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에 대한 신뢰로 나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이 자신의 행위가 죄 없는 선행이며 전적으로 과실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런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가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인간에게 어떤 참 소망이 있을 수 있겠는가? 라고 루터는 질문한다.

반면에 참된 신앙은 하나님의 자비를 구한다. 그것은 자신의 의로운 행위를 내세우지 않고, 오히려 스스로에게 가리킬만한 의로운 행위가 있을지라도 자신의 죄인 됨을 인정한다. 자신의 모든 행위가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기에 회개를 통해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를 갈망한다. 그러므로 참된 소망은 인간이 자신의 모든 행위에 있어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할 때에만 발견된다. 이에 대해 루터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날개의 그림자와 보호 아래 살고 있다. 따라서 우리의 의로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를 통해 그 분의 심판을 모면한다. (LW 31.63)

지난 세기 세계에서도 그 유래를 찾아 볼 수 없을 만큼 폭발적인 교회 성장을 이룬 한국 교회가 이제는 사회적 지탄을 받을 만큼 그 신뢰를 잃어버린 지금, 우리 안에 하나님의 정죄와 심판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지 자문자답해야만 한다. 혹 하나님을 두려워하기보다 힘있고 부유한 교인을 두려워하는 목회자는 아닌가?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신학이나 죄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아니라, 대형 교회와 교인들의 입맛에 맞는 신학을 생산해 내는 것은 아닌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그저 물질적 축복과 이 세상에서의 부와 명예를 얻는 데에만 이용하는 기독교인이 아닌가?

논제 11은 오늘 우리의 신앙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인간이 모든 신뢰를 하나님께 두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을 신뢰하고 자신을 드러내고자 함으로서 십계명의 첫 계명, 곧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하지 말라”를 언제나 위반한다. 참된 신앙은 인간의 모든 행위가 하나님의 심판과 정죄 아래 있음을 두려워하며 오직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를 간구할 때 주어지는 것임을 잊지 말자.

◈ 필자인 정진오 목사는 루터 대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대학원 신학과에서 석사와 박사를 취득했다. 이스라엘 히브리대학교 Research Fellow와 예일 신학대학원 Visiting Scholar를 거쳐 현재 미국 시온루터교회 (LCMS) 한인부 담임목사로 재직중이다. 연락은 전화 618-920-9311 또는 jjeong@zionbelleville.org 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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