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라, 파라과이 인디오 추장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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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로 들어가 그땅 주인 과라니족 선교사로
10월 말 제19회 인디언추장학교 '에델린' 앞둬
복음과 함께 양봉·양계·양어·영농 등 기술 전수

[기독일보 오상아 기자] 38년전 가족과 함께 파라과이에 이민자로 갔던 한 사람을 하나님은 그 나라의 주인인 과라니족 인디오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가 되게 하셨다.

과라니족은 파라과이와 브라질 남부에 거주하는 원주민을 뜻하는 말이다. 영화 '미션'에 나오는 이과수 폭포 주변에 살던 원주민이 '과라니족'이라고 양창근 선교사는 소개했다.

과라니족은 16세기까지는 약 50만명이었으나 스페인의 식민지가 되면서 90% 이상이 혼혈인 메스티소가 됐다. 10%인 12만8천여명만 순수 원주민으로 남아 200군데 마을에 흩어져 살고 있다고 했다.

지난 9월에 한국에 입국한 양창근 선교사는 한달여 한국에 머무는 동안 일정이 매우 빡빡한 듯 했다. 인터뷰 약속 잡기가 쉽지 않았다. 양 선교사를 만난 날은 그의 출국 바로 전날이었다. 이날 밤 10시가 다 되는 시간까지 잠실 근처의 교회에서 간증집회를 하고 그 다음날 파라과이로 떠났다. 이달 26일부터 30일까지 진행되는 제19회 인디언추장학교를 지역교회에 소개하고 후원을 얻느라 백방으로 뛴 것 같았다.

▲제1회 인디언추장학교 후 추장들이 생계 자립을 도울 농기구를 들고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생명의샘터교회

1991년부터 파라과이 람바레 지역에서 생명의샘터교회(Centro de Vida, 센트로 데 비다)를 개척해 현지인을 목회하던 그에게 그땅에 인디오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전한 것은 기도를 많이 하던 할머니 성도 한 명이었다.

"기도 중에 한 손이 나타나더니 늪지대를 가르켰어요. 그리고 '저 곳이 나의 사랑하는 양떼들의 땅이 될 것이다'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결단하고 그 땅을 구입했어요. 목사님, 그곳에 교회를 세워주세요. 쓰레기를 주우면서 소망이 없이 사는 그곳 사람들에게 천국의 소망이 생기도록 교회를 세워주세요."

그곳 주꾸뜨(Jukyty) 지역은 쓰레기 매립장이 있어 주민들은 섭씨 45도(111℉)가 넘는 날씨에도 쓰레기를 주우며 생계를 이어갔다. 주끄뜨는 과라니어로 ‘소금의 땅’이라는 뜻으로 나무가 자라지 않는 척박한, 극빈층이 모여 살고 있는 곳이다. 마약 중독자도 많고 살인 사건도 수시로 일어나는 우범지대다.

양창근 선교사는 "당시는 IMF 직후라 후원도 끊어져서 재정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었어요. 빈민촌에다 교회를 한다는 건 그들을 많이 도와줘야한다는 이야기라 그 얘기를 듣고 '할렐루야' 하지 못하고 '기도합시다'고 대답했어요. 그런데 수요예배와 금요기도회때 성도들이 기도제목을 내는데 매번 그 성도가 그곳에 교회를 세워달라는 기도제목을 냈어요"라고 말했다.

양 선교사는 "그렇게 6개월쯤 지났을 때 하나님께서 '성도가 땅을 바치면서 그곳에 교회를 세워달라 하는데 너는 선교비를 계산하면서 할 수 있나, 없나 계산하고 있느냐, 그런 네가 내가 여기 보낸 선교사냐, 목사냐 하는 책망의 음성을 듣게 됐습니다"고 했다.

주끄뜨 지역에 천막교회 지어 복음 전하며 무료급식
생계 때문에 도시 나온 꾸르바뜨 지역 추장 세례 받고
자신의 부족에게 복음 전해달라 간청
인디오마을 찾아가 복음 전해도 변화는 더디기만

그 음성을 듣고 양창근 선교사는 그 성도가 샀다는 땅에 천막교회를 지어 어린 아이들을 불러 모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무료급식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6개월 후 그곳 담당 사역자에게 인디오 가족이 교회에 왔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임산부가 갓난아이 둘을 안고 남편이랑, 덮을 것도 입을 것도 없이 찾아왔다는 얘기였다.

인디오 부부 중 남편이 먼저 세례를 받고 양 선교사를 찾아왔다. 그는 자신이 꾸르바뜨라는 지역의 추장이었는데 먹고 살 길이 없어서 도시에 왔다면서 쓰레기 매립장에서 쓰레기를 주우며 생활하지만 그래도 복음을 듣고 세례를 받아서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고 감사를 전했다. 그는 복음을 듣지 못한 꾸르바뜨 인디오들에게 복음을 전해달라고 간청했다. 꾸르바뜨는 차로 5시간쯤 걸리는 곳에 위치한 인디오 마을이었다.

"파라과이에서는 인디오의 삶을 볼 수 없어요. 오지에 사는 이들이라 저도 파라과이에서 수십년 살았어도 인디오 마을은 그때까지 가보지를 못했어요. 그런데 그 마을에 들어서서 첫번째 집의 거적문을 들쳐 보았더니 한 여인이 얼굴에 붕대를 감고 누워 있었는데 얼굴이 퉁퉁 부어 있었어요. 이가 아파서 일주일 이상을 얼굴이 부어 있었다고 그래요. 약국에 가려면 반나절 가야 하고 치과에 가려면 하루를 걸어가야 해요. 기도해 주고 나오는데 왠 동양남자가 기도를 하고 나가니 그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 보더라고요. 그런데 해가 어둑어둑 져서 차를 몰고 흙길을 가는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어요. 운전을 하는데 그 여인이 물끄러미 보는 모습이 눈앞에서 떠나지를 않는 거에요. 수요예배때 성도들에게 이 얘기를 했더니 다들 가보고 싶다고 해서 같이 갔어요"

양창근 선교사는 "그 마을에 가서 그들이 사는 곳에서 같이 자고 옥수수와 고구마도 얻어 먹으며 성도들 안에 긍휼한 마음이 생겼다"며 "우리가 옷도 모으고 금식해서 헌금도 모으고 먹을 것도 3~4개월 모아서 청년들 30명이 방학 동안 그 마을을 방문하게 됐어요. 가서 그들에게 복음도 증거하고 게임도 하고 3일 동안 지냈는데 추장이 저를 부르더라고요"라고 기억했다. 추장은 "사랑하는 저희 자녀들은 사람답게 살아가게 해달라"며 그 마을에 복음을 전해달라고 간청했다. 자녀들의 미래를 염려한 것이었다.

양창근 선교사는 "인디오들은 토속신앙이 있어서 선교사들이 들어오는 것을 원치 않는데 그런 말을 해서 깜짝 놀랬다"며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환상을 보고 달려갔던 사도 바울이 생각이 났다"고 말했다.

그때부터 4군데 인디오 마을을 다니며 그들을 돌보기 시작했지만 아무리 도와도 변화가 더뎠다. 양 선교사는 그때부터는 인디오 선교의 전략을 놓고 기도했다고 말했다. '누가 변화돼야 인디오 마을이 변화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새로운 전략으로 인디오 추장들 찾아나서기 시작
추장들 일일이 만나 설득하는 것에도 한계
제1회 인디언추장학교 선포…첫회만 93명 참여
일일이 찾아다니면 30년 동안 30명 될까 싶었는데

그래서 인디오 마을의 추장들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그런데 추장을 만나는 것도 힘들고 만나더라도 도와만 달라고 하지 복음을 전하기는 더 어려웠다. 양창근 선교사는 '내가 설득해서 되지 않겠구나' 싶어 2004년 5월 마지막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1회 인디언 추장학교를 한다고 선포했다. 추장들을 어떻게 불러야 될지 모르지만…

그때 이미 복음을 들은 한 추장이 "제가 추장들을 모을테니 파라과이식 바베큐를 구워주세요"하고 나섰다. 그렇게 76명의 추장들이 모였다.

갈비를 통째로 올려놓고 거기에 소금을 뿌려 무릎 높이만큼 숯불을 쌓아 2~3시간을 구워서 정성껏 대접했다. 그들이 전국 인디오 대표들이었다. 인디오 마을에 대한 정부 지원을 요구하기 위해 주꾸뜨 지역에 모여 2박 3일 전략 회의를 하고 마지막날 저녁에 양 선교사의 집에 온 것이었다.

양 선교사가 인디오들에게 복음과 함께 양봉, 양계 기술 등을 가르쳐주려고 했다고 말했더니 그들은 저희가 그런 내용을 정부에 건의하려고 했다고 답해왔다.

그리고 2월 말 제1회 추장학교에 추장 93명의 추장이 왔다. 양창근 선교사는 "처음 인디오 마을을 찾아가 추장을 만나던 방식으로는 30년 열심히 뛰면 30~40명 모이겠구나 했는데 하나님이 93명 추장을 막 모아줬다"고 말했다.

추장들에게 양 선교사는 양계, 양봉, 양어, 농사짓는 기술 등을 가르쳐주고 밤에는 예수영화를 보여주며 부흥회를 했다. 선글라스를 선물로 줬더니 서로 추장처럼 보인다며 어린 아이처럼 기뻐했다. 그렇게 일주일간 인디오 학교를 하고 가장 좋았던 것이 무엇이었냐고 물었더니 한 추장은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인간다운 대접을 받았다"고 말했다.

▲제1회 파라과이 인디언추장학교에서 한 단기선교대원이 추장의 발을 씻기고 있다. 이 대원은 후에 파라과이 선교사로 왔다. ©생명의샘터교회

양창근 선교사는 인디오 추장들이 "세족식을 했는데 한 추장 부부가 얼굴을 가리고 계속 엉엉 우는 모습을 보았다. 그들은 신발을 거의 안 씻고 다니는데 자기 발을 무릎 꿇고 씻어주는 모습을 보면서 그들의 아픔과 상처, 응어리진 것들을 하나님께서 풀어주시는 시간이었다"고 했다.

양 선교사는 "그때 추장들이 우리를 왜 섬기느냐"고 물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때문"이라고 답했다며 1회 추장학교에서 13명이 세례를 받았다"고 했다. 또 그때 선교팀으로 온 한 집사는 세족식 했던 그 순간을 잊을 수 없어 3~4년 후 파라과이 선교사로 왔다고 했다. 달라스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연구원으로 일하던 성도였는데 말이다.

방송에 인디언추장학교 소개되기도 했건만
1,2부 방영 후 3박4일간 후원전화 온다더니
걸려온 전화는 단 2통… 한통은 오래된 친구 전화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르다는 말씀에 마음 다잡아

2011년에 KBS에서 인디언추장학교가 소개되기도 했다. PD가 "1부, 2부로 방영되는데 선교사님 이후서부터 3박4일간 전화기 옆을 떠나지 마세요. 방송에서 070 다이렉트 전화번호를 알려주면 많은 분들 전화가 올거에요. 네팔에 한 선교사님은 이것 나가서 5~6년간 선교후원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후원금이 들어왔어요"라고 말해 양 선교사는 하나님이 길을 열어주시는구나 하고 기대했는데 1부, 2부 방영이 끝나고 온 전화는 단 2통이었다고 했다.

오래된 친구에게도 한통 전화가 왔지만 기대했던 도움도, 후원도 없었다고 말했다.

2004년 5월 시작한 인디언추장학교가 9년째 되던 2013년 16회를 앞두고는 "'하나님 힘든대요. 정말 확실하게 인디언 선교에 대한 비전을 주셨는데 이렇게 다니면서 하기는 지쳤습니다. 이걸 또 해야됩니까' 하고 제 안에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준비해도 추장들에게 왕복 차비를 주고 한주 동안 행사하는데 쓰면 경비가 끝이 나요. 그런데 추장학교가 끝나고 추장들이 부족에 와달라고 하면 얼굴만 비출 수도 없고 약품도 갖고 가야 되고 7~8명이 가야 되니까 한번 움직일때마다 200~300만원이 드니까 가는데 부담감이 있었어요"라고 말했다.

"이것을 계속 가야되나 말아야되나 하던 그때 그순간에 이사야서 55장 8~9절이 생각났어요.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하나님께서 얘기하시는 것 같았어요"

16회 인디언추장학교 준비 위해 한국 왔다 깜짝
영흥도, 김포의 두 목회자 '파라과이 가라'는 음성 들어
이름 같은 두 목회자, 한 목회자에겐 10월 말 가라고까지
한국서 온 17명 선교대원 거의가 60세 전후 할머니여서 또 깜짝
덩실덩실 춤추던 할머니 권사 손에 이끌려 추장들도 덩실덩실

양창근 선교사는 그해 추장학교 준비를 위해 한국에 왔을 때 놀라운 일을 목격했다. 인천 근처의 작은 섬 영흥도에서 기도원을 하는 한 목회자와 김포에서 목회를 하는 한 목회자가 기도 중에 파라과이로 가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것이다. 영흥도의 목회자는 10월 말에 가라는 음성까지 들었다고 했다. 이 기도원에 기도하러 왔던 양창근 선교사의 누나가 기억나 연락을 한 것이다.

또 김포의 그 교회에는 1년간 파라과이에서 양 선교사의 선교를 도왔던 한 형제가 있어 양창근 선교사와 연결이 됐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영흥도의 목회자와 김포의 목회자가 성(姓)만 다르지 이름이 같았다.

양창근 선교사는 "환상을 보고 음성을 듣고 하는 것이 저에게 잘 안맞아요. 영흥도, 김포에서 기도하다 알고 왔다고 해도 제가 안 믿을 것 같고, 두 목회자가 이름이 같아도 그래도 안믿을 것 같아서 하나님께서 10월말 날짜까지 찍어 주신 것 같다"고 말했다.

▲제16회 파라과이 인디언추장학교에서 한국에서 파송된 단기 선교팀이 추장들의 발을 씻기고 있다. ©생명의샘터교회
▲제16회 파라과이 인디언추장학교에 한국에서 파송된 17명의 마하나임 선교팀이 양창근 선교사(가운데 왼쪽에서 세번째)와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생명의샘터교회

그렇게 17명의 선교팀이 모였다. 파라과이 공항에 도착한 선교팀원들을 보고 양 선교사는 너무 놀랬다고 했다. 도착했는데 대다수가 60세 전후의 할머니 성도들이었다. 할머니들이 짐을 잔뜩 끌고 오시는 거다"며 마음 속으로 '주님, 골라도 잘 고르시지…' 하며 인간적으로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그런데 추장학교 마지막 날 수료증을 다 주고 끝이 났는데 70세가 가까운 권사가 앞에 나와서 덩실덩실 춤을 추더라는 것이다. 고소공포증이 있어서 비행기를 오래 타는 것이 불가능했던 권사였는데 단짝 권사 2명이 같이 가고 싶어 파라과이까지 3시간 걸린다고 해서 오게 된 권사였다. 이 권사가 춤을 추자 다른 선교팀원들도 질세라 덩실덩실 춤을 추며 추장들의 손을 붙잡고 나와 같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양창근 선교사는 "추장들을 만나면서 이들이 아무리 재미난 얘기를 해도 웃지도 않고 슬픈 얘기를 해도 울지도 않고 가만히 있는 모습을 많이 보았아요. 그렇게 1회, 2회, 3회를 하면서도 이해를 못했어요. 그러다가 나중에 알게 됐어요. 스페인 사람이 그땅을 점령해서 인디오들에게 일을 시키는데 웃으면서 다니면 일이 별로 많지 않은가보다 하면서 더 많이 일을 주고 일을 많이 줘서 인상을 쓰면 인상 쓴다고 일을 더 많이 주고요. 웃어도 안되고 울어도 안되고 희노애락 감정을 표현하면 안되니까 다들 너무나 심오한 철학가들 같이 된 추장들이었어요"라며 "권사님들이 손을 붙잡고 춤을 추니까 덩실덩실 춤을 추는 거에요. 기차놀이까지 하면서요. 추장들이 웃는데 깜짝 놀랬어요. 젊은 선교팀이 어떤 퍼포먼스를 해도 연극을 해도 반응을 안할 그들이 할머니 선교팀이 오니까 웃었어요. 제가 생각한 거랑 전혀 다른 모습을 보게 됐어요"라고 말했다.

양창근 선교는 올해는 10월 26일부터 30일까지 제19회 추장학교를 한다며 기도를 부탁했다. 할머니 성도 한 명의 마음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모든 파라과이 인디오의 가슴에 그리스도를 심으시는 그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한다.

■양창근 선교사 소개

양창근 선교사는 19살때 파라과이로 이민을 갔다 파라과이 선교에 대한 소명을 받고 1977년 한국으로 다시 돌아와 사당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대한예수교장로교 합동 총회세계선교회(GMS)에서 파라과이 선교사로 파송받았다.

1991년 10월 파라과이 람바레시에 생명의샘터교회를 개척하고 주꾸뜨 지역의 지교회를 포함해 4곳의 지교회를 개척했다. 또 세인트폴 스쿨(Saint Paul School)을 설립해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교육사역을 병행하고 있다.

현재 인디오 마을 6군데에도 학교를 지었으며 2012년부터는 '아리바, 인디헤나스(Arriba Indigenas, 일어나라 인디언들이여)'라는 집회를 열어 20개 마을 인디오 추장들과 인디오들이 모여 축구대회를 하고 있다. 이 대회에는 700여명이 모인다.

2005년부터는 만여명 어린이들이 모이는 대형집회 '아리바, 니뇨스(Arriba Ninos , 일어나라 어린이들아)'와 '아리바, 호베네스(Arriba Jovenes, 일어나라 청년들아)'라는 청년 전도 집회를 열고 있다.

또 2015년부터는 파라과이와 중남미의 영적 리더 양성을 위해 선교사관학교(Academy for Missions of America)를 열어 청년 목회자 지망생들을 집중 훈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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