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초 필자는 미국 연방 대법원의 동성애 결혼 합헌 결정 이후 동성애 문제에 있어 찬반 양론으로 극명하게 나뉜 미국 교회의 입장을 설명하고자 "왜 미국 교회들은 동성애를 허용할까?" 라는 제목의 칼럼을 기독일보에 기고했다. 칼럼이 나간 후 이와 연관된 많은 질문을 받았다. 그 질문의 내용을 살펴보면 대략 다음의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동성애 합법을 선언한 교단에 속한 한인 교회들은 어떤 희생을 무릅쓰더라도 교단을 탈퇴해야 하는가? 아니면 교단에 잔류해야 하는가? 둘째, 동성애를 지지하는 목회자, 또는 그 교단에 속한 목회자의 성찬과 집례는 유효한가? 동성애를 지지하는 교단은 이단인가?
초기 기독교 역사에서 이와 유사한 논란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어거스틴과 도나투스 논쟁이다. 이 논쟁을 통해 우리는 위에서 제기되는 질문들에 대한 적절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도나투스와 어거스틴 논쟁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Diocletianus)가 305년 당시 기독교인들의 거룩한 책인 성경을 몰수하여 불태우라는 칙령을 내렸다. 특별히 이것은 성직자나 교회 지도자들에게 해당되었다. 일부 성직자들은 이 명령을 거부하여 감옥에 갇히거나 순교 당하였고, 일부는 이 칙령을 받아들여 성경을 불태우도록 넘겨주었는데, 이들을 소위 '배교자'(traditor) 라고 불렀다. 이 당시 성경을 넘겨주는 것은 예수를 배신한 가룟 유다와 같이 기독교에 대한 배신을 의미했다.
박해가 끝나고 교회 내에 한 가지 질문이 생겨났다: 이 배교자들이 자신들이 한 행위를 회개하고 다시 교회로 돌아올 수 있는가? 배교자 성직자들이 다시 세례와 성만찬과 말씀 선포의 사역을 감당할 수 있는가?
이 문제와 연관하여 교회는 크게 두 그룹으로 나뉘게 되었다. 카르타고 감독이었던 도나투스는 교회가 이런 죄를 용서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교회의 거룩성이 교인들의 거룩성에 달려 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이런 배교자로부터 세례를 받거나 가르침을 받는 것은 무효라고 생각했다. 반면에 당대 가톨릭 교회는 '교회의 연합'이라는 측면에서 도나투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양 그룹은 모두 초대교회 유명한 교부인 키프리안(Cyprian)의 저술 "가톨릭 교회의 연합"(Unity of the Catholic Church, 251)에 의존하는데, 이 저술에서 키프리안은 다음의 두 가지 믿음의 조항을 강조한다.
1. 교회의 분열은 어느 경우를 막론하고 정당화 될 수 없다.
2. 신앙을 잃어버리고 타락한 성직자들은 성만찬 집행이나 가톨릭 교회 목회 사역의 모든 권한을 박탈당해야만 한다.
도나투스주의자들은 키프리안의 두 번째 조항에 근거하여 교회의 순결성을 강조한 반면, 가톨릭 교회는 첫 번째 조항에 의존하여 도나투스주의자들을 교회 분열을 꾀하는 자들이라고 비판했다. 이렇듯 교회는 배교한 성직자 문제에 관해 두 진영으로 나뉘어 오랜 시간 동안 대립했다. 도나투스주의자들과 가톨릭 교회의 극렬한 대립은 때로 폭력성을 띠기도 했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로마 정부의 공권력을 힘입어 도나투스주의자들을 가혹하게 탄압하고 심지어 살상도 서슴지 않았다. 도나투스주의자들도 자신들의 교회만이 흠도 주름도 없이 신앙의 순결성을 지켜 온 참 교회라고 주장하면서 가톨릭 교회를 불결하고 이중적인 배교의 무리들이라고 혹평했다. 이들의 순수성 주장은 도에 지나친 나머지 폭력 사태로까지 흔히 이어졌다.
이러한 대립은 초대 교회를 집대성한 성 어거스틴(St. Augustine)에 의해 해결되기에 이른다. 어거스틴은 이 땅에 존재하는 교회는 완벽한 교회로서가 아니라, 순례자의 교회라고 주장했다. 어거스틴에 의하면, "낯선 땅을 순례하는 순례자처럼 교회는 세상의 박해와 하나님의 한 복판에서 앞을 향해 나아가며 주님이 오실 때까지 십자가를 선포하는 순례자"라고 말한다.
어거스틴은 노아의 방주와 베드로의 그물 안에는 깨끗한 동물들뿐만 아니라 더러운 동물들 모두 그 안에 있었음을 말하면서, 도나투스 교회나 가톨릭 교회 양쪽 모두 죄인들이 있음을 지적했다. 또한 마태복음 13장 가라지 비유를 들어 도나투스파가 주장하듯이 교회는 "오직 성자들만의 모임"이 아니라 "성자와 죄인들이 모두 섞여 있는 모임"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므로 어거스틴에게 있어 교회의 거룩성은 성직자와 교인들의 삶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순결함에 기초한다. 그래서 사도 신조에 나오는 "거룩한 공회" 라는 말은 우리가 선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거룩하기 때문이다. 교회의 거룩함은 마지막 심판 때에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완성된다.
교단 잔류인가? 탈퇴인가?
최근 미국에서는 동성애 인정을 선언한 교단에 속한 한인 교회들이 교단 잔류와 탈퇴를 놓고 심각한 내홍에 휩싸여있다. 교단 탈퇴를 주장하는 자들은 동성애를 인정한 교단은 이미 신앙의 순결성을 잃어버리고 불결함으로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교단을 탈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이에 반대하는 자들은 교단 탈퇴시 발생하는 현실적인 어려움을 들어 교단 잔류를 주장한다.
일부 한인 교회는 이미 이 문제로 교회 내외부적으로 심각한 내홍에 휩싸여있다. 내부적으로는 교단 탈퇴를 주장하는 교인과 잔류를 주장하는 교인들 사이에 심각한 대립 양상을 보이고 있고, 외부적으로는 교회가 노회와 교단을 상대로 고소와 고발 사건이 이어지며 법적 소송이 진행 중이다. 이렇게 보면 이 문제는 가희 현대판 '도나투스 논쟁'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닐 듯싶다. .
이에 필자는 교회가 다시 한 번 어거스틴의 신학적 진술에 귀를 기울이기를 바란다. 어거스틴의 말처럼, 교회는 성자들만의 모임이 아니다. 이 땅에 존재하는 교회는 성자와 죄인들이 함께 섞여 있는 모임이다. 교회의 거룩성은 교인들의 거룩성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들만이 신앙의 순결성을 지켜 온 참 교회라고 주장하며 다른 교회를 불결하다고 비판함으로써 교회가 거룩하게 되는 것이 아니다. 교회의 순결함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그 분에게만 있다. 그것은 마지막 심판 때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실 일이다. 그 전까지 우리는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선포하는 사명만 주어졌을 뿐이다.
어거스틴의 이러한 신학적 입장에 비추어 볼 때 앞서 제기된 문제들에 다음과 같이 답 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세례와 같은 성례전의 유효성은 이를 집전하는 인간 사제의 주관적 거룩성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신적 사제인 그리스도 자신에게 달려 있다. 즉 세례의 객관적인 타당성은 교회와 성례전의 원천이 되시는 그리스도 한 분으로부터 온다는 것이다. 따라서 비록 개인적으로 동성애를 인정하지 않지만, 동성애를 인정한 교단에 속한 목회자의 성찬과 세례의 집례는 유효하다. 그 유효성은 인간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머리요 교회의 창설자이신 그리스도로부터 오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비추어 볼 때, 비록 동성애를 인정하지 않지만 동성애를 인정하는 교단에 속한 한인 교회라고 해서 배교자나 이단에 속한 무리라고 비판하는 것은 옳지 않다. 도리어 교단 내에서 한인 교회들이 일치성과 보편성을 지키면서 지속적으로 동성애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것도 교회 개혁을 위해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둘째, 교회 공동의회를 통해 교회들이 종교개혁의 정신이 '오직 성서만으로'의 정신에 입각해서 교단 탈퇴를 결정했다 하더라도 그것을 분파주의라 비판할 수 없다. 어거스틴이 도나티스트들에게 가장 경계했던 것은 그들이 가톨릭교회에 끼치는 물리적 손상이나 파괴가 아니라 교회의 일치성과 보편성을 심각하게 해치는 분파주의였다. 양자 사이에는 교리적 차이보다 도나티스트들의 신앙적 우월성 주장이 훨씬 더 큰 문제였던 것이다. 도나투스주의자들은 가톨릭 교회에 대한 비판과 정죄에 근거해 자신들의 신앙의 순수성을 정의했다. 이러한 자기 의(self-righteousness)에 근거한 비난은 성도의 양심에 현존하시는 성령의 표식인 '사랑'을 훼손하는 일이었고, 그들의 분열주의는 참된 교회의 표식인 '일치성'을 파괴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교단 탈퇴를 고려하고 있는 교회들은 먼저 교회는 순수한 성자들의 모임이 아니라 죄인을 포함하는 모임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교단 탈퇴가 동성애를 인정한 다른 교회와 교단에 비해 자신들의 신앙적 우월성과 순수성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직 종교개혁의 정신 - '오직 성서만으로', '오직 믿음만으로', '오직 은혜만으로' - 에 근거할 때 분파주의가 아닌 진정한 교회 개혁을 위한 길임을 보여 줄 수 있을 것이다.
◈ 필자인 정진오 목사는 루터 대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대학원 신학과에서 석사와 박사를 취득했다. 이스라엘 히브리대학교 Research Fellow와 예일 신학대학원 Visiting Scholar를 거쳐 현재 미국 시온루터교회 (LCMS) 한인부 담임목사로 재직중이다. 연락은 전화 618-920-9311 또는 jjeong@zionbelleville.org 로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