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구멍에도 볕들 날 있다는 속담이 실감났다. 새 천년이 시작되던 2000년. 태양은 반세기 넘도록 녹을 줄 모르던 남과 북 사이의 빙벽을 녹이기 시작했다.
북한의 김용순 비서와 인민군 대장이 서울에 모습을 나타냈고, 다음엔 김영남 위원장이 온다고 했다. 이어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답방하기로 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입장식에는 남북한 선수들이 손을 마주잡고 입장하면서, 온 세계 관중들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얼마나 감격스런 순간이었나?
15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보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는지 기억조차 희미하기만 하다. 금년은 광복과 분단 70년 되는 해이다. 큰 기대를 품고 출발했던 새 천년도 15년이 지나고 있는, 2015년 오늘의 현실은 어떤가? 남북 간의 기 싸움은 서로에 대한 불신과 증오가 풍선처럼 부풀어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수준에 이르렀다.
한국은 북한의 무력도발에 대비한다며, 연일 한미연합군사훈련에 더하여 일본과 군사협력까지 추진하고 있다. 북한은 이에 대비한다며 선군청치와 핵무기를 만들고,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을 자체 개발하여 쏘아 올렸다. 미국은 이 기회를 이용하여 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를 한반도에 판매하려고 열을 올린다.
THAAD는 북한의 LSBM과 핵 공격을 막기 위한 것이라지만, 미국의 속내는 중국을 겨냥한 무기로 그것을 한국에 배치하는 순간 중국과 한국의 관계는 급속하게 냉각 될 것이다. 또한 미국과 중국이 서해에서 충돌하게 되면, 그 전쟁은 한반도로 확산 될 것이고, 한반도는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전철을 답습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될 것이다.
어떤 학자는 한국의 국력은 더 이상 새우가 아니라 돌고래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오죽이나 좋을까 만은, 남과 북이 서로 경쟁하듯 모든 기를 서로에게 쏟아 붓는 현실에서, 우리를 노리는 일본을 비롯한 주변국가에 대해 우리는 힘없는 새우에 불과하기는 마찬가지가 아닐까?
광복과 분단 70년이라면, 그래도 금년 광복절엔 남북관계에 축제를 열만한 어떤 희망적 결과물이 있어야 했다. 그러나 최근 교류 협력을 위한 남북관계와 평화통일의 희망은 사라지고, 역사는 퇴행을 거듭하고 있다. 정부는 금년 8월14일까지 공휴일로 하고 그 날 고속도로 통행료를 무료로 하는 등, 요란한 축제를 벌였다. 그러나 남북관계의 진전을 위한 어떤 결과물도 없는 대단한 축제 행사들은 공허할 뿐이다.
2차 세계대전 시 세계 최강의 육군을 보유한 프랑스는 최강의 해군력을 가진 영국과 동맹국이었다. 또한 프랑스는 독일과의 국경에 막대한 자금으로 완벽한 수비의 마지노선(Maginot Line) 방어진지를 구축했다. 탱크나 포, 어떤 공격으로도 함락할 수 없는 철벽요새였다. 프랑스와 연합군은 이 마지노선을 철석같이 믿고 안심했다. 그러나 예상 밖으로 독일군의 공격에 프랑스는 함락되는 수모를 당했다. 강하고 우세한 군사력은 전쟁에서 승패의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군대가 많다고 해서 왕이 나라를 구하는 것은 아니며, 힘이 세다고 해서 용사가 제 목숨을 건지는 것은 아니다. 주님의 눈은,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을 살펴보시고, 그들의 목숨을 죽을 자리에서 건져내시고, 굶주릴 때에 살려주신다. 주님은 우리의 구원자이시오. 우리의 방패이시니, 우리가 주님을 기다립니다. (시편 33편 16-20절)
나라를 통치하는 데 정치적 트릭과 이기적 욕심만 있을 뿐, 영적 지성이 부재한 현실에서 통일대박, 내년에라도 통일이 올 수 있다는 등, 열매 없는 빈 수레는 소리만 요란하다. 나라의 정체(政體)는 수렁에 빠진 채 용을 쓰지만 헛바퀴를 돌 뿐이다.
한반도는 국내외의 위기 상황에서 분단과 부패, 불신, 불통의 깊은 병으로 신음하고 있다. 이 병을 치유하고 민족과 사회를 구해야 할 교회의 많은 지도적 인사들은 이미 수구화(守舊化)하여, 사회발전에 뒤쳐진 채, 뒷북만 칠 뿐 바른 처방을 하지 못하고 있다.
오늘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존재이유는 무엇인가?
너희는 날씨를 볼 줄 알면서 시대의 징조들은 분별하지 못하느냐? (마태복음 16장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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