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김병구 장로] 한국 장로교회는 한국교회를 이끌어 왔으며, 1960년대 경제개발계획이 추진되기 전까지는 장로교회는 웨스터민스터(웨민) 신앙고백을 교회의 신조로 규정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말씀에 순종하는, 거룩한 삶을 사는 자만이 영생을 얻는다”(예장 헌법 제 9항)는 신조를 지켰습니다.
경제개발 추진을 수반한 물질만능주의가 한국사회에 팽배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물량주의에 함몰된 대형교회 목사들이 교회의 양적 성장을 위하여 신자들의 구미에 맞춰 강단에서 “믿기만 하면 반드시 천국에 간다”는 칼빈의 예정과 견인론에 뿌리를 둔 ‘한 번 구원 영원 구원론’을 설교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한 번 믿기만 하면 반드시 천국에 간다고 믿게 된 신자는, 마치 면죄부를 받은 것처럼 제멋대로 살기 마련입니다. 육신의 욕심, 안목의 정욕, 그리고 이생의 자랑을 좇아 세속적인 삶을 살게 되는 것이지요. 아무렇게나 살아도 반드시 천국을 가게 된다고 믿게 된 그들은, 죄를 지으면 지옥에 간다고 생각하는 세상 사람들보다 더 쉽게 죄를 짓게 됩니다.
세속화의 길을 걷기 시작한 한국교회는 지난 50년 동안 장로·집사가 사기를 치는 일에서부터 대형교회의 목사가 여신도와 간음을 범하는 일에 이르기까지 타락하여 왔습니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기는커녕 세상의 비난을 받기에 족한 길을 걸어왔습니다.
신실한 목사·장로와 신자들은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죽어가는 한국교회를 살려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2007년 옥한흠 목사가 교회의 양적 성장을 위하여 변질된 복음을 가르쳐 왔음을 10만 성도가 참예한 성령강림 100주년 기념 예배 중에 회개하며 동료 목사들의 회개를 권면함을 계기로 그러한 기도들이 응답되기 시작했습니다.
최근에 대형 장로교회의 목사들이 “행함이 있는 믿음으로 말씀에 순종하는 성화의 삶의 과정을 거쳐서만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칭의-성화-영화’의 바른 구원론을 구체적으로 진지하게 열심히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이찬수 목사의 “복음이 그것을 가능케 한다” 설교 바로 가기]
그런데 아직도 한번구원 영원구원론과 행위 없이 믿음 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칼빈의 신학이 개혁신학이란 이름으로 행세하고 있음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 칼빈신학이 주장하는, 행위와 구원의 관계
칼빈은 무엇이 영생을 얻게 하는가에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행위는 은혜에 반대되는 것이 아니라 은혜를 뒤따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자가 자신의 구원을 이루는 자가 아니고, 구원은 그들의 행위의 결과가 아니다. 그러면 무엇이란 말인가? 그들이 복음에 대한 지식과 성령의 조명에 의하여 그리스도와 교제에 들어가는 순간에 그들의 영생은 시작된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서 선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것이다’(빌 1:6) 그리고 그것은 의로움과 거룩함 가운데 그들이 하늘의 아버지를 닮게 되어, 타락한 자녀들이 아님이 증명될 때 이루어진다.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CH XVIII, 1).”
칼빈의 위의 진술은 다음과 같이 풀이될 수 있습니다. “신자들의 선한 행위는 절대주권의 하나님께서 은혜로 신자들로 하여금 행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드신 행위이다. 그러므로 행위는 하나님 은혜의 결과이다. 따라서 구원의 원인은 인간의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다. 한편 칭의로 시작된 구원은 선한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께서 신자에게 성화의 과정(칼빈의 지속적인 중생)을 거쳐 하나님을 닮는 열매를 맺게 하실 때에 성취된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칼빈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이지 인간의 행위로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도, 그들이 성화의 과정을 거쳐 하나님 닮음을 열매를 맺을 때에 구원이 완성된다고 주장합니다. 결국 칼빈은 칭의가 구원의 완성이 아니며, 성화가 구원 완성을 위한 필수 과정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빈은, 구원 완성으로 가는 필수 과정 속에서 인간이 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절대주권으로 은혜를 베풀어 인간으로 하여금 행하도록 한다고 함으로써, 인간의 자유의지에 의한 어떤 행위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따라서 인간의 행위가 구원의 원인이 될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가 구원의 원인이라고 주장합니다.
■ 행위와 구원의 관계에 있어서 칼빈신학과 웨민신조의 차이
한편 전세계 모든 복음주의 교회들이 신조로 삼고 있는 웨스트민스터신조는 다음과 같이 가르칩니다.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선한 행위는, 진실되고 살아있는 믿음의 열매이며 증명이다. 그리고 그러한 선한 행위로 신자들은 그들의 감사를 표시하고, 그들의 확신을 강화하며, 그들의 형제들을 교화하며, 복음의 선언을 빛나게 하며, 반대자들의 입을 막고,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의 작품으로 예수 안에서 창조된 그들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웨스트민스터 신조 CF XVIII, 2)
.“선한 행위를 할 수 있는 그들의 능력은 전혀 그들의 것이 아니고, 전적으로 성령에서 나온다. 그리고 그들이 선행을 하도록 능력을 받기 위해서는, 그들이 이미 받은 은혜 이외에,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저희들로 소원을 두고 그들 안에서 행하시는 동일하신 성령의 사실상 영향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성령의 특별한 움직임이 없이는 어떤 의무도 실행하지 않도록 그들이 묶여 있는 것처럼 그들이 태만해져서는 안 된다; 그들은 내주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은혜가 움직이도록 열심을 내야 마땅하다(웨스트민스터 신조 CF XVIII, 3).
위의 두 항목을 살펴보면, 웨민신조와 칼빈신학은 둘 다 성화의 열매인 ‘하나님 닮음을 맺음으로써 영생에 이름’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또한 둘 다 신자의 선한 행위는 근본적으로 성령의 능력에 의한 것임을 인식합니다.
그러나 웨민신조는 “성령의 특별한 움직임이 없이는 어떤 의무도 실행하지 않도록 묶여 있는 것처럼 그들이 태만해져서는 안 된다. 그들은 내주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은혜가 움직이도록 열심을 내야 마땅하다”고 가르침으로써, 특히 다음의 견해로 칼빈신학과 궤를 달리하고 있습니다.
1. 인간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의하여 묶여 있지 않다. -인간의 자유의지 인정
2. 인간은 자기 구원의 완성에 일말의 의무를 가진다. -구원에 있어서 인간의 몫을 인정
3. 인간은 자기 구원 완성을 위하여 성령님의 은혜가 움직이도록 열심을 내야 한다. -인간의 행위가 필요함을 인정
이와 같이 “인간의 자유의지를 인정하고, 인간이 구원 완성에 있어서 담당해야 할 의무를 수행할 것을 격려하며, 자기의 구원 완성을 위하여 성령님의 은혜가 자기의 행위에 영향을 미치도록 열심을 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웨민신조는 “예정으로 선택된 신자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의한 성도 견인으로, 자신의 구원에 있어서 수행해야 할 의무를 지지 않고, 하나님께서 반드시 영생을 얻게 해주신다”고 주장하는 칼빈 신학과는 다른 구 원론을 가르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하나님은 독생자를 통하여 신자의 행위를 보신다
웨민신조는 인간은 순종을 통한 선한 행위로 그들의 의무를 다하지 못하며, 최선의 행위도 영생을 얻을 만하지 못한 것임을 가르칩니다. 그러나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자가 그리스도를 통하여 받아들여지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행위도 받아 주신다. 그의 독생자를 통하여 그들의 선한 행위를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많은 연약함과 불완전함을 가진 것임에도 불구하고 신실한 행위를 기뻐 열납하시고 상을 주신다”고 가르칩니다.
“그들은 순종함으로 이생에서 가능한 최고의 높이에 도달할 수 있으나, 그들이 마땅히 이르러야 할 수준, 또는 하나님께서 요청하시는 수준에는 크게 미치지 못한다. 즉 그들은 그들이 의무적으로 행해야 할 의무를 다 행하지 못하는 것이다(웨스트민스터 신조 CF XVIII, 4)
.“우리의 최선의 행위로도 우리들은 하나님께 죄를 용서받을 만하거나 영생을 얻을 만하지 못하다. 왜냐하면 우리들의 최선의 행위와 우리가 받게 될 영광 간의 지대한 불균형, 그리고 우리들과 하나님 간의 무한한 거리 때문이다. 우리의 최선의 행위로 우리는 우리들이 전에 지은 죄의 빚을 갚을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다 했을 때에도 우리는 우리의 의무를 다하지 못한 것이며, 우리는 여전히 무익한 종이다. 그리고 우리의 행위가 선한 것은, 그것이 하나님의 성령으로부터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의 최선의 행위가 우리가 행한 것일 때에는, 그 최선의 행위는 불결하고 하나님의 심판의 엄격함을 견디어 낼 수 없이 매우 연약하고 불완전하다(웨스트민스터 신조 CF XVIII, 5)
.“하나님 보시기에 이 세상에서 전적으로 나무랄 데가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신자가 그리스도를 통하여 받아들여지는 것처럼, 그들의 행위도 하나님께서는 받아주신다. 그의 독생자를 통하여 그들의 선한 행위를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많은 연약함과 불완전함을 가진 것임에도 불구하고 신실한 행위를 기뻐 열납하시고 상을 주신다(웨스트민스터 신조 CF XVIII, 6)
칼빈은 신자가 육신적으로 살면, 성령님께서 그에게 삶 속에서 고난을 주심으로 거룩한 삶을 살도록 만들어 간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므로 신자가 하는 일은 고통을 감내하는 일에 불과하며, 그 고통을 감내함에 대한 상급은 있으나 인간의 행위는 구원과는 상관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칼빈신학과는 대조적으로 웨민신조는 “하나님께서는 많은 연약함과 불완전함을 가진 것임에도 불구하고 신실한 행위를 기뻐 받으시고 상을 주신다”고 가르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칼빈신학은 인간의 행위가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로만 영생을 얻는 것이라고 가르치는 데 비하여, 웨민신조는 예수님의 공로를 보시고 칭의 구원을 주신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부족한 우리의 행위를 기뻐 받으시며 영생을 주신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그들이 성화의 열매를 맺음으로써 마침내 영생에 이를 수 있게 된다”는 로마서 6장 22절을 인용한 신조 CF XVIII, 2의 끝마디가 재확인하는 가르침입니다.
■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인간의 순종을 강조하는 웨민신조
16세기 종교개혁 이후 1백 년 동안 칼빈신학의 예정론과 성도견인론은, 오직 은혜와 믿음을 구호로 하는 개혁주의의 핵심 교리로서, 면죄부를 팔 정도로 극도로 타락한 로마가톨릭의 신인협력설에 대하여 투쟁하는 데 매우 강력한 무기였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칼빈신학은 다른 한편으로 신자들에게 “나는 하나님의 예정에 따라 선택되어 구원을 받았으니, 성도 견인으로 반드시 천국에 간다”는 그릇된 확신을 갖게 하여, 육신 대로의 삶이 유행되게 하였습니다.
구원은 오직 은혜로써 충분하게 완성된다는 칼빈신학의 성도견인·구원보장론이, 은혜와 값비싼 제자도의 불가분의 관계를 와해시켰습니다. 한번구원 영원구원론의 시작인 즉석 구원론이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졌습니다. 법적 선언인 칭의가 곧 완성된 구원인 양 여겨지고, 의로움은 생애에 걸친 성화를 통하여서만 성취되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게 됐습니다
바울 당시에도 칭의구원론을 신봉한 신자들에게 있었던 일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에게 로마서 6~8장에서 강력하게 성화필수구원론을, 12~13장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산상수훈을 반복하여 가르치고 있습니다.
“퓨리터니즘은 종교개혁에 뒤따른 위와 같은 현실 속에서 상실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인간의 순종을 강조하였습니다. 퓨리턴들은 웨스트민스터신조를 통하여서도 ‘십자가를 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름 없이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어떠한 구원도 있을 수 없음’을 분명히 하였습니다(Essentials of Evangelical Theology by Donald G. Bloesch Vol.I P.207).
▶ 김병구 장로는 싱가폴 장로교단 장립 장로, 시카고 '약속의 교회' 은퇴장로로서 바른구원관선교회(바로가기)를 섬기며 기독교신문 '크리스천투데이'에서 칼럼니스트로도 기고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영원한 성공을 주는 온전한 복음>(한솜미디어 펴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