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노 칼럼] 애국주의와 은혜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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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교회 조성노 담임목사

이번 헤지펀드 <엘리엇>의 삼성물산과의 힘겨루기에서도 확인됐듯이 기업들의 경영권 방어능력이 가장 취약한 나라가 바로 우리 한국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기업 중 브랜드 가치가 가장 높다는 삼성전자의 외국인 지분율은 51.8%, 현대 모비스도 51%나 됩니다. 반면 국내 지분율은 30%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에 헤지펀드가 눈독을 들이면 언제라도 경영권이 휘청거릴 수밖에 없는 불안한 구조라는 것입니다.

 

헤지펀드는 해적 펀드(pirate fund)입니다. 적도에서 발생한 작은 물방울들이 한 데 뭉쳐 무시무시한 태풍이 되듯이 지금도 오직 수익만을 찾아 지구촌 곳곳을 수색하며 비행하고 있는 시커먼 뭉칫돈이 바로 헤지펀드입니다. 그들은 먹잇감이 사정권에 들어오면 가차 없이 덮쳐 무자비하게 기업을 사냥합니다. 그들에게는 도덕성 혹은 윤리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고 오로지 큰 시세차익만이 최고의 미덕일 뿐입니다. 이번 삼성물산 뿐 아니라 이미 헤지펀드에 혼쭐이 난 국내 기업들은 여럿 있습니다. 대주주의 지분율이 지극히 낮은 SK그룹의 경우는 타이거펀드와 소버린의 공격을 받지 않았습니까? 지금도 악명 높은 대형 헤지펀드들이 한반도 상공을 비행하며 언제든 독수리처럼 하강해 채갈 먹잇감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습니다. 삼성물산의 경우는 다행히 한고비 넘겼지만 현대차, SK텔레콤, LG 같은 기업들은 하루라도 빨리 최대한 높은 방호벽을 쌓아야 할 과제를 떠안게 됐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국민연금이나 소액주주들이 일단은 삼성편을 들어줬지만 마음은 여전히 편치 못하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합병 결정을 누가, 왜, 언제 했는지에 대한 납득할 만한 해명도 없었고, 평소에는 전혀 투명하거나 주주 친화적이지 않다가 사정이 다급해지자 그제서야 소액주주들을 찾아다니며 애국심에 호소하는 태도에 많은 주주들이 위임장은 내주면서도 여전히 유쾌하지 못한 느낌을 털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찜찜한 구석은 또 있습니다. 우리나라 기업들의 고질병인 순환출자를 개선한다는 명분은 옳다 치더라도 여기에 다시 경영권 승계가 얽히게 되면 셈이 한결 더 복잡해집니다. 저는 늘 그런 생각을 합니다. 도대체 우리나라 재벌기업들이 국민들에게 진 빚을 기억이나 하고 있을까? 솔직히 우리나라 양대 재벌기업인 삼성과 현대는 모두 국민들의 <강제적 저축>과 <애국적 소비>를 발판으로 오늘과 같은 글로벌 기업이 되지 않았습니까? 이번에도 엘리엇의 공세를 방어하고 제압한 것은 소액주주들의 맹목적인 애국심이었습니다. 찬성 69.53%라는 낙승 속에는 손익을 따지는 시장 합리성 사고보다는 우리 국민 특유의 온정주의와 애국주의가 상당 부분 내재해 있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해 그게 언제까지 작동할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으므로 냉혹한 주주 자본주의에서 국민 다수를 든든한 원군으로 확보하려면 기업들이 지금보다 훨씬 더 진지하게 공익증진에 힘써야 한다는 얘깁니다. 보다 도덕적이고도 윤리적인 경영에 매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기업들이 더 이상 온정주의와 애국주의에 기댈 수 없게 된 것처럼 한국 교회도 이제는 더 이상 맹신주의와 은혜주의에 숨어서는 안 됩니다. 계속해서 터져 나오는 메가 처치들의 수백억 규모의 비자금 의혹과 회계상의 비리 문제들은 다 목회자에 대한 맹신주의와 일이 터질 때마다 <은혜롭게 합시다!>하는 맹목적인 은혜주의의 산물입니다. 애국주의가 결국은 기업을 안일하게 만들고 체질을 약화시켜 헤지펀드의 타겟이 되게 할 뿐이 듯 은혜주의 역시도 한국 교회를 타락하게 하여 교회가 비리의 온상으로 전락하게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교회도 사회도 냉철한 이성주의, 정직한 양심주의가 절실한 시대입니다.

/노나라의 별이 보내는 편지에서

#조성노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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