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 박성민 기자] 국민연금은 삼성물산 지분 11%, 제일모직 지분 5%를 가진 두 회사의 주요 주주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은 미국계 펀드 엘리엇이 반기를 들고 나온 이후 삼성을 중심으로 하는 합병 찬성 세력과 반대 세력 간에 치열한 지분 확보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국민연금이 지난 10일 투자위원회를 열어 삼성물산 합병에 대한 입장을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연금은 결정 내용과 관련해 공식적으로는 표명을 하지 않고 있지만, 비공식적으로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찬성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공식 발표는 오는 17일 두 회사 합병을 결의하는 주총에서 하기로 했다.
국민연금은 합병에 찬성하는 뜻을 흘린 뒤 그동안의 논의 과정과 결정 배경에 대해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고 있다. 공적 연금을 위탁받은 관리자로서 2000만 가입자들에게 가장 기본적인 설명 책임을 다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국민연금의 이러한 행보에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며 13일 입장발표를 하기도 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비율이 삼성물산 주주들에게 불리하게 산정되었으므로 삼성물산 주주들이 합병안에 대해 반대 의결권을 행사해야한다"는 권고를 세계적 의결권 자문기관인 ISS와 글래스루이스 뿐만 아니라 한국의 의결권 자문기관인 한국기업지배구조원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일모직 주식은 이른바 승계 프리미엄으로 인해 증권분석전문가들이 추정하는 적정 가치보다 80~100% 정도 고평가되어 있고 삼성물산의 시가총액은 삼성물산이 보유한 삼성계열사의 주식 총액의 3분의 2 정도에 불과한 시점에서 합병비율이 산정되었기 때문.
국민연금이 합병안을 찬성하려면 찬성 이유와 근거를 명확히 밝혀야만 할 것이다. 또 이처럼 중요하고 논란의 여지가 많은 사항에 대한 결정권을 의결권전문위원회로 넘기지 않은 합리적 이유를 제시해야만 할 것이다.
합당한 설명 없이 함구하고 있다가 주총 당일 입장을 밝히겠다는 것은 국민연금의 의사결정과정과 내용의 합리성에 문제가 있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셈이다. 또 당당하지 못할 뿐더러 연금의 주인인 국민을 무시하는 행위이다.
또한 기업합병 발표 이후 국민연금이 2% 정도 삼성물산 주식을 추가 매입한 것도 결국 삼성 재벌 총수일가를 돕기 위한 것이었다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이런 국민연금의 의사결정 과정과 내용은 향후 엘리엇이 제기할 것으로 예상되는 ISD 소송에서 한국 정부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따라서 국민연금의 작금의 결정은 국민의 세금으로 삼성재벌 총수일가의 세습 비용을 충당해도 무방하다는 것과 다름없다. ISD 소송비용과 패소할 경우 손해배상액은 삼성그룹이나 이건희 일가가 아닌 대한민국 정부가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하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30대 그룹 상장 계열사 184곳 중 절반인 93개사에서 지분 5% 이상을 가진 주요 주주다. 그룹 오너보다 국민연금의 지분이 많은 회사도 60여개에 달한다. 그만큼 국내 기업들에 영향력을 휘두를 수 있는 힘을 가진 조직인 것이다. 때문에 국민연금이 이 회사들 경영에 대한 의결권을 행사하려면 어떤 기준과 원칙을 갖고 결정하는지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
국민연금은 재논의를 통해 삼성물산 주총에서 합병안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명확히 밝혀야 할 것이다. 공적기관으로서의 책무와 연금 가입자의 이익 존중이라는 본연의 역할에 충실할 것인지, 아니면 삼성 총수일가의 대변자가 될 것인지 선택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