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선교신문] 6월 8일부터 15일까지 8일간 지진 후유증으로 힘들어하는 선교사들을 디브리핑하고 상담하고자 네팔을 방문했다. 더운 공기가 카트만두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후끈 우리를 맞아주었다. 숙소로 이동하면서 지진으로 건물들의 무너진 잔해들과 벽돌들이 길에 수북이 쌓여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한쪽으로 기울어진 벽에 기둥을 받쳐놓고 장사하는 네팔인들을 바라보면서 가족과 친지들을 잃은 슬픔을 돌아볼 여유가 없는 그들이 너무나 안쓰러웠다.
많은 선교사가 지진으로 인해 두려움과 무기력감, 탈진, 죄책감, 불면증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대부분의 선교사는 지진 후 침대나 소파에만 누우면 흔들리는 느낌이 계속 있고 지진이 또 날 것 같은 두려움에 힘들어했다. 그리고 지진 이후 줄곧 긴급구호사업에 매달려 있어야 했던 선교사들은 많이 지쳐있었고 탈진해 있었다. 이들을 위해 누군가 들어주고 쉬어야 된다는 이야기를 해줄 사람이 필요했다. 이를 위해 한국위기관리재단은 터닝포인트 회복상담센터에 이들을 도와줄 것을 의뢰하여 나와 놀이치료사 백은영 선교사가 8일간 함께하며 성인상담, 아동상담, 가족상담, 부부상담을 진행하였다.
우리 일행은 이들을 위해 아침부터 밤까지 이어지는 상담으로 인해 피곤하기도 했지만 보람도 많이 느꼈다. 한 시간 반, 또는 두 시간의 상담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한인 선교사들 부부, 가족들, 아이들이 그 동안의 무력감, 짜증, 두려움, 어렸을 때의 상처로부터 벗어나는 경험을 하고 다시 힘을 얻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은 당신이 세우신 선교사들이 회복되기를 정말로 원하시며 매우 사랑하신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번에 네팔은 뜻하지 않은 지진이라는 위기를 겪었지만, 한편 이 위기는 동시에 여러 가지 기회가 되었다. 특히 한국위기관리재단, 한국교회, 정신과 의사들 등 다방면의 적극적인 도움은 위기관리와 선교사 멤버케어 차원에서 시의적절하였다고 생각한다. 또한 이번의 네팔 현장 방문을 통한 상담사역은 그 동안 많이 지쳐 있던 네팔의 한인 선교사들과 한인들, MK들, 그리고 네팔 사람들에게는 치유와 회복의 시간이 되었고 위로, 격려, 힘과 용기를 얻는 기회가 되었다. 이번 우리들의 방문과 위기 디브리핑, 상담사역으로 인해 무엇보다 선교사들이 회복되어 네팔 영혼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더욱 힘있게 전파할 수 있게 된다면 우리들의 수고는 결코 헛되지 않으면 값진 것이 되리라 믿는다.
이현숙 선교사(터닝포인트 회복상담센터 소장)
"지진 후 처음으로 큰 소리로 웃을 수 있었던 네팔인 교사들"
네팔의 카트만두 길거리에는 무너져 내려 나뒹구는 벽돌들과 흙먼지가 길 위에 자욱했다. 곳곳에 지붕과 벽들이 허물어져 내린 건물들이 즐비하였고 그 앞에서 뜨거운 햇볕을 받으며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었다. "이리와 우리 집 안을 보세요. 안은 더욱 더 엉망이 되었어요"라며 한 노파가 우리를 불러 세웠다. 비닐 천막에 여기 저기 누워 있던 네팔인들은 외국인들을 향해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지진을 겪은 네팔의 한국선교사들과 자녀들에게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증상들이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틱 장애, 등교거부, 불안증, 음식거부, 공포증 등의 증상이었다. 네팔에 오기 전 한국에서 이미 카톡을 통하여 증상 완화를 돕는 문자 상담을 진행했었다.
일주일의 짧은 기간 동안 집단놀이 치료 강의와 워크숍을 통해서 두려움과 무서움, 분노의 감정들을 발산할 수 있었고 넓은 하나님의 두 날개 아래 안전하게 거하는 활동을 하면서 안전함과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깊이 경험하였다. 선교사 자녀들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연령별 집단 놀이치료가 진행되었다. 아동은 놀이를 통해서 자신들의 감정과 어려움, 갈등, 고통을 발산하고 표현한다. 선교사 자녀들은 놀이치료를 통해서 억눌린 감정, 긴장감, 불안 등을 표출하는 기회를 가졌고 치료과정을 통해 점차적으로 안정감을 찾아 나갈 수 있었다.
또한 현지 네팔 교회지도자, 네팔학교 교사, 방과 후 지도자들을 대상으로 놀이치료와 팀 빌딩 강의와 워크숍을 진행하였다. 네팔인들은 자신들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는 것에 미숙하고 감정을 관습적으로 억압하는 문화 속에서 살고 있었다. 땅이 흔들리고 갈라진 틈 사이로 이웃들과 가족들이 매몰되어 버리는 슬픔과 고통, 건물들이 무너져 길이 막혀버리는 두려움과 공포감을 표현하는 것을 어려워했다. 가장 슬펐던 이야기를 하던 한 네팔 교사는 내면의 깊이 묻어 두었던 슬픔의 감정이 북받쳐 올라와 치료자의 가슴에 안겨 한참을 울었다. 어떤 네팔학교 교사들은 "지진 이후 처음으로 큰 소리 내면서 웃을 수 있었다"고 하며 무서움을 씻은 것 같다고 하였다.
특별히 이번에 선교지를 찾아가는 상담을 통해서 네팔에 있는 한인 선교사들은 고통을 당한 사람들의 마음을 공감하고 위로하며 회복시키는 돌봄의 사역과 상담 사역의 필요성을 실감할 수 있었다. 나아가서 현지 사역자들을 격려하고 용기를 주어서 지진 트라우마를 겪은 네팔인들에게 현지 사역자들이 직접 찾아가는 실천을 시작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백은영 선교사(터닝포인트 회복상담센터 전문 상담가)
한국위기관리재단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