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사람은 말이 없다. 억울한 누명을 해명하거나 남 모르게 선행을 했다고 알릴 수도 없다. 그러나 산 사람은 죽은 사람에게 할 말이 너무도 많다.
"아쉽다. 좀더 오래 살면서 선한 일들을 계속 했으면 우리 주위가 더 밝아지고 살기 좋은 세상이 될 수 있었을텐데"하며 애석해 한다.
얼마 전에 돌아가신 박태준 씨 같은 분이다. 516 혁명의 주체이면서 대통령의 절대 신임을 얻어 세계적인 포항제철을 세워 한국 근대화의 일등 공신이 되었고 후에는 정치인으로 막강한 권력과 힘을 가지고도 깨끗하게 국가에 헌신했다. 심지어 돈뭉치인 포항제철의 주식을 한 주도 갖지 않았고 오히려 그가 세상을 떠나자 유족들이 장례비를 걱정할 정도였다니 오늘처럼 혼탁한 정치계나 기업인들에게는 새벽별처럼 빛난다.
또 한 분이 있다. 한국 교계의 대부였던 한경직 목사다. 그 분은 초대형교회에 시무하면서도 많은 사립학교를 비롯해 10여 곳의 이사장직을 수행했다. 그러나 그의 형제나 자녀들이 그 분의 영향력으로 어느 직장에서 거들럭거리거나 문제를 일으킨다는 말을 들어 보지 못했다. 그 분은 청빈하게 살기도 했지만 누구에게나 섬기는 자세였다. 오늘날 사회의 지탄을 받는 교계에 그 분이 불로초라도 드시고 오래 사시며 참된 영적 지도자의 모습을 좀더 보여 주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쉽다. 그런 분들이 남긴 진한 향기는 두고 두고 오래 간다.
"잘 죽었다. 그 사람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고 피를 흘렸어!" 자기 개인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바른말 하는 사람들을 무서운 죄목을 씌워 무수하게 죽이다가 사살 당한 독재자 카다피나 또한 인민공화국이라고 자처하면서 일가친척으로 높은 성을 쌓고 수백만명이 굶어 죽는데도 삼대에 걸쳐 특별한 왕국을 세우고 궁궐에서 외제 양주를 마시며 미인부대를 거느리고 허세를 부리던 김정일이 죽었을 때 많은 사람들은 잘 죽었다고 했다.
자신이 죽으면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살아서 그 경험을 한 사람이 있다. 알프레드 노벨이다. 그는 1882년 다이나마이트를 발명해서 세계 역사를 다시 쓰게 했다. 그가 발명한 엄청난 폭발물이 건설현장에서 많이 사용되면서 대박을 터뜨려 초수퍼 부자가 되었고 재산은 자나깨나 늘어나게 되어 있었다. 그는 어느날 불란서를 여행하던 중 한 호텔에서 아침 신문을 보다가 기절할 뻔 했다. 첫 페이지에 대문짝만하게 "다이나마이트 발명자 노벨 사망"이라는 제목이었다. 더욱이 그 기사 내용은 그를 괴롭혔다. 다이나마이트가 좋은 일에도 쓰이지만 전쟁에 쓰여지면서 엄청난 많은 사람이 죽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큰 충격을 받고 모든 스케줄을 취소하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후에 안 일이지만 그의 동생이 교통사고로 죽은 것이 오보가 된 것이다) 노벨은 많은 생각 끝에 한가지 아이디어를 내 놓았다.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데 큰 공을 세운 사람에게 상을 주는 일을 위해 자기의 재산과 여생을 바치기로 한 것이다.
내가 숨을 거두면 주위 사람들이 어떤 코멘트를 할까?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고 하는데 말이다. 사실 그 답은 나의 관 뚜껑을 덮은 후에 다른 사람들이 할 몫이다. 자신은 오직 죽을 때까지 주를 믿으며 열심히 선행을 하는 것 뿐이다.
#현순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