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말씀묵상]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 아버지와 아들을 드러내는 것이다

1. 오늘의 말씀 : 요 13:31-38
31 그가 나간 후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지금 인자가 영광을 받았고 하나님도 인자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도다
32 만일 하나님이 그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으면 하나님도 자기로 말미암아 그에게 영광을 주시리니 곧 주시리라
33 작은 자들아 내가 아직 잠시 너희와 함께 있겠노라 너희가 나를 찾을 것이나 일찍이 내가 유대인들에게 너희는 내가 가는 곳에 올 수 없다고 말한 것과 같이 지금 너희에게도 이르노라
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36 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오리라
37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내가 지금은 어찌하여 따라갈 수 없나이까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
38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가 나를 위하여 네 목숨을 버리겠느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2. 시작 기도
아버지! 숨 쉴 수 있게 되면 다시 완악해지는 것이 바로의 본성이요 인간의 본성입니다.
늘어난 고무줄을 놓아버리면 원상태로 돌아가는 것은 어찌할 수 없는 본성입니다.
몸이 호전되면 더욱 열심을 낼 줄 알았는데, 게으름의 불청객이 고개를 쳐들고 있습니다.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어야 하듯, 주께서 붙들지 아니하시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이옵니다.
시간 죽이기로 방탕하는 자를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때가 악하오니 주의 뜻을 분별하여 깨어 의를 행하기 원합니다.
주께서는 나의 앉고 일어서는 것을 다 아시나이다.
주의 팔로 붙드소서. 악을 향하는 본성을 제어해 주소서.
불쌍히 여기사 구원하소서. 내 영혼이 주를 앙모하며 내 육체도 그러하나이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3. 본문 주해
유다가 떡 조각을 받은 후 나갔다. 그 때가 밤이었다. 이로써 예수의 공적 선교도 마감되었다.
유다가 나간 후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지금 인자가 영광을 받았고 하나님께서도 인자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되셨다. 하나님께서 인자를 통하여 영광을 받게 되셨으니 하나님께서도 자기 안에서 그에게 영광을 주실 것이요 이제 곧 주실 것이다"(31-32절).

"내 자녀들아, 아직 잠시 동안은 내가 너희와 함께 있겠다. 그러나 너희가 나를 찾을 것이다. 내가 일찍이 '내가 가는 곳에 올 수 없다'고 유대인들에게 말한 것과 같이 지금 나는 너희에게 말해둔다. 이제 새 계명을 너희에게 준다.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으로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게 될 것이다"(33-35절).

시몬 베드로가 예수께 물었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올 것이다"(36절).

베드로가 다시 말하였다.
"주여 내가 지금은 어찌하여 따라갈 수 없나이까?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37절).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네가 나를 위하여 네 목숨을 버리겠느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말한다. 너는 닭 울기 전에 세 번 나를 부인할 것이다"(38절).

유다가 떠났고 예수도 이어서 떠나신다. 예수의 떠남은 그의 죽음이다.
그러나 그 때는 인자가 영광을 받고 하나님께서도 인자로 인하여 영광을 받으신 때이다(31절).
이것은 헬라인들이 그를 보고자 하셨을 때 이미 고지된 바이다.
"지금 내 마음이 괴로우니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하시니 이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하시니"(12:27-28).

창세전부터 아들은 아버지께 복종하여 그의 사랑 안에 거하셨다(15:10; 17:24).
아버지는 복종하는 아들을 사랑하셔서 그에게 자기의 본질을 계시하셨다(1:14).
본질의 계시가 곧 아들을 사랑하여 그에게 주신 영광이다(17:24;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곧 아들의 복종은 아버지의 본질을 계시하여 아버지께 영광이 된다.
동시에 아버지는 복종하는 아들에게 자신을 본질을 계시하는 영광을 주신다.
이로써 아버지가 영광을 받으시고 아들도 그로 인해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다(32절).
이렇게 본질의 계시인 영광에 있어서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가 되신다.

이제 예수께서는 자기 사람들인 제자들을 향하여 '나의 자녀'(헬, 테크니아)라고 부르신다.
그는 잠시 동안 그들과 함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곧 그들은 그를 찾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유대인들에게 한 말씀처럼 '그가 가는 곳'에 그들은 올 수 없다.
예수께서 일찍이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셨다.
"다시 이르시되 내가 가리니 너희가 나를 찾다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겠고 내가 가는 곳에는 너희가 오지 못하리라. 유대인들이 이르되 그가 말하기를 내가 가는 곳에는 너희가 오지 못하리라 하니 그가 자결하려는가"(8:21-22).

그가 말한 '내가 가는 곳'은 아버지 집이다(14:2-3).
그리고 아래에서 난 자, 곧 아담 안에서 죄인으로 태어난 자는 아버지 집에 갈 수 없다.
흙에서 난 자는 흙으로 돌아가며, 아래에서 난 자는 죄가운데 살다가 사망에 이른다.
오직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신 아들이 인도해야만 갈 수 있다.
그곳은 창세전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사랑하며 영광중에 거하신 곳이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새 계명을 선포하신다.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서로 사랑하라. 그리하면 모든 사람이 그들이 나의 제자인줄 알 것이다.

'내가 사랑한 것 같이'는 '내가 발을 씻겨주신 것 같이'와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본을 보였노라"(13:15).
그의 발씻김은 그의 죽음을 표상하며 이는 아버지께 대한 아들의 복종에서 나온 행위이다.
그러므로 '내가 사랑한 것 같이'는 사랑의 정도나 강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행위의 근거'를 함축하는 것이다(불트만).

이에 '서로 사랑하라'는 아들 안에서 아들이 아버지께 대한 복종하는 사랑에 근거한다.
그리할 때 모든 사람(혹은 세상)은 그들이 예수의 제자임을 알게 될 것이다.
이 말씀은 17장 23절에 의해 다시 설명된다.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17:23).

새 계명은 죄인들 혹은 세상 사람들에 대한 계명이 아니다.
이는 아들을 믿어 영생을 얻은 영생의 공동체에 주신 계명이다.
창세전 아버지와 아들은 서로 사랑하였다. 물론 사랑의 본질은 다르다.
아들은 아버지께 복종하는 사랑을, 아버지는 자기의 본질을 계시하시는 영광을 주심으로써 사랑하셨다.
아들의 생명을 얻은 자로 구성된 영생의 공동체는 이 같은 아버지와 아들의 사랑을 세상에 드러내야 한다.
이를 위해 각자가 아들 안에 거하고 아버지 안에 거하는 사귐의 실재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은 교화적인 목적이 아니라, 아버지와 아들을 세상에 드러내는 것이다(찰스 바레트, 요한복음 주석).

한편 베드로는 예수가 어디로 가시는지 묻는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는 지금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올 것이다.
베드로는 지금 유대인과 동일한 위치에 있다.
그는 아래에서 났고 죄가운데 있고 아들이 가는 곳에 갈 수 없는 자이다.
예수를 따르는 것은 그의 죽음과 영광의 자리까지 따르는 것이다.
단지 희망은 후에는 따라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때는 예수께서 죽으시고 죄를 사해주시고 영생을 주시는 때이다.

그러나 베드로는 '지금' 따라가겠다고 하며 주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겠다고 한다.
이에 예수께서 그에게 진리를 말씀하신다. 베드로는 닭 울 기전 세 번 주를 부인할 것이다.
그는 주님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 목숨을 위하여 주님을 버릴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자기 의지에도 불구하고 영생이 부재한 자가 도달하는 신앙의 귀결점이다.
오직 주님만이 그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신다.
그리하여 영생을 얻게 되었을 때 그도 주를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15:13-14).

예수께서 영광을 받으신 후 베드로는 그를 따르는 자가 되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21:18-19).

4. 나의 묵상
나는 아버지을 알지 못하고 아들도 알지 못한 자였다.
창세전 서로 사랑하며 서로 영광중에 있던 아버지와 아들을 알지 못하였던 것이다.
아들이 있는 곳, 곧 창세전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하여 주신 영광을 보지 못한 자였다.
아담 안에서 죽은 자 되어 아들이 있는 곳에 갈 수 없는 자였다.

그런데 베드로의 열심이 내 안에 넘쳐났다.
주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겠다는 신념과 각오를 실천하였다.
모든 것을 버려두고 신대원에 들어갔고 거기에서도 열심이 특심이었다.
적어도 10년간 세상과의 관계를 단절하였다.
영화, TV, 노래방등 세속적인 문화 활동을 완전히 끊고 주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

그런데 어찌하랴!
영생의 부재는 아무리 열심을 내어도 자기 인생을 얻는 길로 가는데 말이다.
시간이 갈수록 나의 실체가 드러났다.
바리새인처럼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하나 속에는 탐심과 악독이 가득하였다.
말로는 주님을 위해 내 목숨을 버리겠다고 했으나 실제는 내 목숨을 위해 주님을 버리는 자였다.

목회를 비롯한 여러 사역들은 내 인생을 얻고자 함이 목적이었다.
'지금은' 아버지 집에 갈 수 없다는 말씀을 들었어야 했다.
그런 비참한 자에게 참된 구원이 임하였다.
성령으로 복음을 깨닫고 복음을 통해 영생을 얻은 자 되었다.
심판의 자리에 말씀이 찾아왔고 그 말씀은 생명이 되었다.
요한복음 17장23-24절이 나의 고백이 되었다.

날마다 아들을 통해 아버지 품에 나아가는 영생의 삶을 산다.
비록 소수이나 그들이 모인 영생의 공동체가 실재한다.
이제 더 이상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교화적으로 이해하지 않는다.
그것이 영생의 공동체 안에서 아버지와 아들을 드러내는 것임을 안다.

연초 마다가스카르 현지인 캠프 때의 일이다.
첫날 아버지와 아들을 아는 영생의 말씀을 전하였다.
다음날 한 자매가 나와서 들은 말씀을 견증(見證)하였다.
'이제 내가 할 일은 아들 안에서 아버지께 복종하는 것뿐이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서로 사랑하는 이들을 세상 사람들이 볼 것이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도 서로 사랑하는 이들에게로 이끌림을 받을 것이다'
단 하루, 그것도 삼중통역으로 전했는데, 그녀는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완전히 깨달았다.

교회의 본질은 이렇게 '서로 사랑'하는 영생의 공동체에 있다.
오늘날 교회에 '답이 없다'고 말하나 예수께서 하신 말씀에 답이 있다.
아버지와 아들을 알고 그래서 서로 사랑하는 영생의 공동체가 그 해답이다.
이를 위해 오늘도 아버지와 아들을 아는 영생의 진리를 전한다.

5. 묵상 기도
아버지...
베드로처럼 무지한 채 열심을 내던 자였습니다.
주를 위해 목숨을 버릴 듯 한 각오로 신학하고 목회했습니다.
그러나 아니었습니다. 그때는 아니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을 알지 못하는 자, 결국 내 인생을 위해 주를 버리는 자였습니다.
내 속에 탐심과 악독의 정체가 다 드러났습니다. 심판에만 합당한 자가 되었나이다.

아버지여...
제게 임한 심판은 참되고 의로운 심판이었습니다.
심판의 자리에 말씀이 임하고 생명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아들의 죽음과 무덤에 연합되어 영생이 실재되었습니다.
창세전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사랑하며 영광중에 있음을 보았나이다.
이제는 영생을 전하는 사도가 되었나이다.

아버지...
서로 사랑하는 것은 아버지와 아들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무너져 가는 교회에 영생의 공동체를 세우소서.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아버지와 아들을 아는 영생에 이르게 하소서.
저들을 위해 공의로 심판하소서.
저들은 열심이 특심이나 결국 자기 인생을 위해 예수를 버리지 않습니까!
주여 영생의 진리가 밝히 드러나게 하소서.
때가 악하니 기회를 주시는 대로 영생을 전하는 일에 충성하게 하소서.
또한 종이 아니라도 선교회가 아니라도 이 일을 행하소서.
창세전부터 서로 사랑하신 아버지와 아들을 아는 은혜가 충만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서형섭 목사는... 한국외대에서 경영학(B.A.)와 연세대 경영대학원 경영학(MBA)를 졸업하고, 서울신대 신학대학원 목회학(M. Div.)을 공부했다. 논문 '말씀묵상을 통한 영적 훈련'(Spriritual Training through Meditiatioin on the Word)으로 풀러신학교에서 목회학 박사(D. Min.) 학위를 받았다.

그는 지난 2000년 반석교회를 개척하고, 치유상담연구원에서 6년간 수학 후 겸임교수를 지내며 동시에 한국제자훈련원에서 8년간 사역총무를 역임했다.

현재 서형섭 목사는 말씀묵상선교회(http://cafe.daum.net/wmmission) 대표로 섬기며 특히 '복음과 생명', '말씀묵상과 기독교 영성'에 깊은 관심을 갖고 저술과 세미나 사역에 집중하고 있다.

저서로는 <말씀묵상이란 무엇인가>(갈릴리, 2011년)과 최근 출간된 <복음에서 생명으로>(이레서원, 2013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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