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부모들, 왜 '하버드'에 목을 건단 말인가!

하버드에서 정치철학을 가르치는 마이클 샌델 교수에게 '한국'은 특별하다.

학자로서 기대하기 어려운 것들을 그에게 안겨주었다.

정치학이나 정치철학 혹은 학문이라는 자체가 대중적 인기와는 거리가 멀다.

그런 고정관념이 한국에서 그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지난 2009년 펴낸 그의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는 2010년 한국에서 번역 출간된 후

초 대박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120여만 부가 팔리면서 그가 벌어들인 인세는 무려 14억8,000만원,

100만 달러를 한참 뛰어넘었다. 미국에서의 판매부수는 10만부 정도라고 한다.

책의 인기는 그의 인기로 이어졌다. 록스타가 무색할 정도이다.

지난 2012년 그가 신간 홍보 겸 한국을 방문했을 때 무료 강연장인 연세대 노천극장은 말 그대로 미어터졌다.

8,000여명 정원인 공간에 1만5,000명이 모여들었다.

무료 강연티켓이 암표로 거래되기도 했다.

이후 그는 프로야구 경기장에서 시구도 하고, 서울시 명예시민도 되면서 거의 매년 한국을 방문하고 있다.

초청이 끊이지 않는 것이다. '이 못 말리는 인기~!'에 대해 그는 나름대로 이렇게 해석했다.

"한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정의와 공정함에 대해 열정적으로 논쟁을 한다는 점이 놀랍다.

민주주의가 살아있는 건강한 사회라는 증거이다."

그런 부분이 없지는 않겠지만 그게 다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매년 천 여 명의 하버드대 학생들이 수강하는 전설의 명강의!"라는 책 선전문구가 구매충동을 부추기지는 않았을까?

판매량에 비해 완독 비율이 현저히 낮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거칠게 표현하자면 그에게는 한국 사람들을 껌뻑 죽게 만드는 단어가 따라붙는다. '하버드'이다.

한국사회 최고의 명품 브랜드인 '하버드'가 그의 인기에 크게 기여했을 수 있다.

'하버드'가 일을 냈다. '하버드'로 상징되는 명문대 집착으로 한 소녀가 인생을 망쳤다.

이번 사태로 개인 신상과 얼굴사진이 인터넷에 영구적으로 남아 떠돌 텐데,

소녀가 앞으로 어떻게 새 삶을 개척해나갈 수 있을 지 가엾다.

6월초 한국 언론은 하버드와 스탠포드가 서로 탐내는 '수학 천재' 소녀에 대해 일제히 보도했다.

몇몇 방송은 소녀를 직접 인터뷰하기까지 했다.

소녀는 자신을 입학시키기 위해 두 명문대학이 얼마나 공을 들이는지,

교수들이 자신과의 연구기회를 얼마나 학수고대하는지,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가 어떤 제안들을 했는지...차분하게, 사실은 천연덕스럽게, 전했다.

'하버드' '천재' '한국소녀'라는 단어들의 흡입력을 아는 한국 언론은 신나서 보도했다.

일주일 쯤 지나면서 이 모두가 거짓말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신문기자 아버지가 워싱턴 특파원으로 파견되면서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버지니아에서 자란 소녀는

영재학교인 토마스제퍼슨 과학고에 입학할 만큼 공부를 잘했다.

공부를 잘하니 부모의 기대는 높아지고, 그런 부모를 기쁘게 해주고 싶은 마음,

실망시키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전직 장관인 할아버지, 미국에서 동북아 문제 권위자인 고모부 등 집안 분위기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거짓말은 거짓말을 낳으면서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금방 탄로 날 거짓말을 소녀는 왜 할 수밖에 없었을까?

우리 사회의 일류병, 학벌주의, 성적지상주의로 야기된 과도한 교육열이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부모의 맹목적 교육열이 자녀에게는 숨 막히는 중압감이 되고,

이를 견디지 못하면 거짓말, 커닝, 심하면 자살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학벌주의, 성적지상주의는 어디서 오는 걸까? 획일주의이다.

유치원, 12년의 초중등교육 그리고 대학 4년 ... 모두 똑같이 길러져서 모두 같은 방향으로 달려간다.

표준에 따라 규격에 맞춰 대량생산되는 제품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모두가 한 방향으로 달리니 길은 좁고 경쟁은 치열하다.

남보다 더 빨리, 더 높은 곳을 차지해야 성공한다는 강박감이 '일등-일류대-일류 직장' 경쟁으로 이어진다.

중도 탈락하면 사회의 불량품 취급을 받는다.

다행일까, 시대가 변하고 있다. 21세기에는 획일주의가 통하지 않으리라는 전망이다.

규격화한 실력보다 개성과 창의성이 중시된다는 것이다.

틀을 벗어남으로써 성공에 이른 예는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가 대표적이다.

둘 다 남들 다 가는 길 대신 자신이 좋아하는 길을 택함으로써 자신의 왕국을 건설했다.

이들이 한인부모 밑에서 자랐다면 가능했을까.

학부모들이 용기를 내서 자녀를 키웠으면 한다.

점수, 등수 보다 아이의 개성과 창의성을 중시하는 용기이다. 너무 정해진 틀에 맞추려다 보면

프로메테우스의 침대 꼴이 날 수가 있다. 부모가 들이미는 '하버드'라는 침대,

명문대 집착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자녀들이 상처를 받고 있는가.

권정희 (미주한국일보 논설위원, 서울 본사 외신부기자 역임)

/글·사진=케이아메리칸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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