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에는 왕으로 탄생하신 주님께 대한 동방박사들의 경배가 나옵니다. 지난주에 살핀 헤롯이 적대적이라면 오늘의 박사들은 경배하는 자들, 예배하는 자들이었습니다. 헤롯의 태도와는 대조적인 흐름입니다. 이런 대조는 마태복음에서 계속됩니다. 하나님 나라와 이 땅의 나라의 대립구도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오늘 경배하는 동방으로부터 온 박사들을 통해 주시는 교훈을 살펴보겠습니다.
◆진정한 왕은 오직 한 분 = 동방의 박사들은 탄생하신 아기 예수께만 경배를 드렸습니다. 2절, "경배하러 왔노라" 11절, "아기께 경배하고" 이 "경배"는 마태복음의 도 하나의 중요한 샌드위치적 구조를 보여줍니다. 예수님이 경배 받을 왕임을 말씀하는 이 중요한 주제가 마지막에도 나옵니다. 28:16,17 "열 한 제자가 ...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2장의 경배는 주님의 지상 생애 초기의 경배입니다. 그리고 28장의 경배는 주님의 지상 생애 마지막 시간의 경배입니다. 마태는 이렇게 마태복음의 처음과 끝에 왕께 대한 경배를 통해 이 분이야말로 진정한 왕이심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박사들이 헤롯에게 경배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헤롯은 당시 땅의 왕이었습니다. 그는 군사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의 명령으로 사람이 죽고 살기도 하는 힘있는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박사들은 헤롯에게 경배하지 않습니다. 헤롯은 화려한 궁전에 거하는 왕입니다. 그러나 박사들은 화려한 궁전도, 보좌도 아닌 어린 아기가 누운 집에 들어가 경배하였습니다. 경배 받으실 분은 오직 주님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사야 9장에 한 아기의 탄생을 예언하셨는데 그 분이 왕임을 말씀합니다. 주님 이외의 다른 것을 경배함은 곧 우상 숭배임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1장은 예수 그리스도가 존귀와 영광을 받으실 왕임을 보여주고 있으며 2장에서는 그가 경배 받고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윗의 후손임을 통해 왕임을 암시한 후 동방의 박사들을 통해 왕으로 호칭되고 경배와 예물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이 세상에서 헛된 것을 왕으로 경배하지 않습니까? 세상의 것들을 얻기 위해 세상을 경배하고 돈을 경배하는 어리석음을 갖지 않습니까? 주님의 시험이 나오는 4장에서 주님은 그런 어리석은 경배를 물리치시고 승리하십니다. 4:9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우리는 눈에 보이는 세상의 것을 취하기 위해 세상을 향해 경배하지 않습니까? 오직 주님을 왕으로 경배하십시오. 그 안에 모든 것이 있습니다.
◆유대인의 왕은 모든 족속의 왕 = 2절,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이렇게 묻는 사람들은 다른 아닌 동방으로부터 온 박사들입니다. 단순한 "유대인의 왕"이라면 동방으로부터 경배하러 올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이것은 마태가 유대인 독자들에게 분명하게 밝히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족속의 왕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명령과 아주 중요하게 연결되는 것입니다. 28:19,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적극적으로 모든 족속에게 가라는 것입니다. 민족적 장벽을 뛰어 넘는 것입니다. 이미 구약에서도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것을 보다 분명하게 하십니다. 복음의 세계화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유대인의 개념을 깨고 아브라함 자손의 개념을 깨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민족과 국경을 초월하는 왕임을 마태는 선포하는 것입니다.
◆경배하고 예물을 드리는 동방 박사들 = 11절, "아기께 경배하고" 많은 사람들이 보통의 한 아기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상당한 지위와 부요함을 가진 동방이라는 먼 곳에서 온 사람들에 의해 경배를 받으시므로 그 아기가 누구인가를 보여 주는 것입니다. 마태는 이 아기가 이미 유대인들에게 왕임을 분명히 보여 주기 위해 이 박사들의 이야기를 이곳에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경배하고"란 원문 상 '몸을 던져 엎드렸다'는 의미입니다. 마태는 그들의 경배가 얼마나 진지하고 열정적인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미 이들은 동방으로부터 오는 것으로도 충분한 경배입니다. 그들은 여기까지 오기 위해 많은 것을 잃어야 합니다. 예배를 위해 우리는 때론 많은 것을 잃어야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경배하고 예물을 드렸습니다. 이들은 경배와 함께 귀한 보물을 드렸습니다. 당신은 가장 귀한 분이라는 표현입니다. 황금과 유향과 몰약이라는 예물에서 의미를 찾을 수도 있습니다. 황금은 왕들이 주로 사용되는 것이었기에 이 아기가 왕임을 보여주는 것이며 유향은 구약 제사에서 하나님께 올리는 향이므로 하나님을 향한 예배의 의미로 드려졌다는 것입니다. 즉 이 왕으로 탄생한 아기가 예배를 받으실 분임을 상징합니다. 또한 몰약은 시신을 장사치를 때 사용되는 것이었기에 주님의 죽으심을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 장례를 치르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요19:39에 니고데모가 몰약을 100근쯤 가지고 나왔다고 되어 있습니다. 동방 박사들의 경배를 통해 주님이 진정한 왕이요, 예배의 대상자요, 그럼에도 구속의 죽음을 통하여 우리를 구원하실 분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삶을 통해 완성되는 경배 = 12절,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하심을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가니라" 이 박사들의 진정한 경배는 이것을 통해 더욱 진지하게 드러납니다. 경배하기 전에 별로 인도하시던 하나님은 경배 후에는 직접 지시로 인도하셨습니다. 경배하고 나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였습니다. 그들은 경배 후 주신 말씀을 헤롯왕의 명령보다 우선하였습니다. 경배 후에 '다른 길로 가라'는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 그것을 순종하며 돌아갔습니다. 예배 드리고 내게 임한 주님의 말씀을 좇아 순종하는 것입니다. 다른 길로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경배입니다. 형식적인 경배만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외식하는 유대인들에게 진정한 경배가 무엇인지를 강조하는 것입니다(사1:10-11, 삼상15:21-22). 주님이 정말로 원하시는 것은 예배라는 형식이나 의식이 아닙니다. 진정한 예배는 주님의 뜻을 깨닫고 그 뜻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통해 왕 되신 주님을 경배합시다. 우리는 얼마나 귀한 것을 드리고 있습니까? 얼마나 순종합니까? 진정한 경배는 주님을 우리의 삶에 왕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