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 1절에서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쓰기를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라." 합니다. 여기서 "말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마지막 때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부활과 오순절 성령의 강림으로부터 주님의 재림 때까지의 기간을 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 우리도 이 말세를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라"고 말합니다. "고통하는 때"란 끔찍한 때를 말합니다. 사도 바울이 본문 5절에서 말하듯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는 자들"이 활개 치는 때를 말합니다. 즉 겉으로는 그리스도인 같지만 기독교의 진리를 부인하며 그리스도인들이 지녀야 할 신앙의 자세와는 전혀 다른 삶의 모습을 보이는 자들 때문에 교인들이 혼란스러워하고 고통스러워하게 되는 때를 말합니다.
그들은 어떤 자들입니까?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 침투한 거짓 교사들을 두고 말한 것이겠지만 그들의 모습은 바로 오늘날 우리 가운데서도 찾아볼 수 있는 거짓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이기도 한 것입니다.
먼저 본문 2절에 보면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합니다. 극단적인 자기중심주의, 개인주의, 이기주의를 말합니다.
그 다음은 "돈을 사랑하며" 합니다. 돈만 가지면 못할 것이 없고, 그래서 돈을 위해서라면 못할 것이 없어지는 황금우상주의를 말합니다. 그래서 부패하고 불의하고 불행한 사태들이 꼬리를 물고 빚어지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자랑하며 교만하며" 합니다. 4절에서도 "자만하며" 합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겸손을 덕으로 아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자기선전 잘하는 것이 유능한 것으로 여겨지는 때가 된 것입니다. 자기중심적인 사람들은 대체로 자기 자신을 과대평가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왕자병"이니 "공주병"이니 하는 말들이 생깁니다.
그 다음은 "비방하며" 합니다. 하나님 중심주의가 아닌 자기중심주의에 빠지면 하나님을 모독하게 되고 남을 비방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자기자랑 잘 하고 교만한 사람은 더더군다나 남을 비방하기 잘 합니다.
그 다음은 "부모를 거역하며" 합니다. 자기중심주의에 빠진데다 돈을 사랑하게 돈을 사랑하게 되면 부모의 말도 듣지 않습니다. 자기 심기를 건드리면 아버지든 어머니든 상관없이 폭력을 휘두르게 되고 살인까지 하는 일을 우리는 종종 듣습니다.
그 다음은 "감사하지 아니하며" 합니다.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의 특징이 바로 감사할 줄 모르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거룩하지 아니하며" 합니다.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는 것은 아마도 보통 사람들의 가장 보편적인 모습일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사랑이 우선이고 모든 것을 하나님중심으로 행하는 사람은 거룩한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즉 보통 세상 사람들과 다른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는 사람이 거룩하지 않은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본문 3절에서는 "무정하며" 합니다.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는 사람은 남을 생각할 줄 모르기 때문에 무정해지기 쉽습니다.
또 "원통함을 풀지 않으며" 합니다. 자기 위주로만 생각하고 남의 입장에서 생각할 줄 모르는 사람은 자기만 손해보고 자기만 억울하다는 생각에 언제나 사로잡혀서 원통함을 풀지 못합니다. 용서할 줄 모릅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또 "모함하며" 합니다.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사랑을 성취하고 돈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남을 모함하는 일도 서슴치 않게 됩니다.
3절에 계속 보면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하고 4절에서는 "조급하며" 합니다. 자기통제를 잘 못하면 사납고 거칠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조금 참고 기다릴 줄 모릅니다.
3절 끝에 보면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중심으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대로 선을 알고 그의 말씀을 따라 행합니다.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대로 선을 알고 그의 말씀을 따라 행하지 않고 스스로 하나님과 같이 되어 자기가 보기에 좋은 대로 행한 것이 첫 인간들의 첫 번째 죄였습니다. 자기를 사랑하고 자기중심주의를 따라가는 사람이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은 당연합니다.
4절에서는 "배신하며" 합니다. 배신은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는 자들이 쉽게 저지를 수 있는 일입니다.
4절에서는 또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합니다. 쾌락을 사랑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의 욕심을 채우며 기쁨을 추구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사랑이 우선이 아니고 자기사랑이 우선인 사람은 하나님의 기쁨을 구하기보다 자기의 기쁨을 먼저 구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말한 끝에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명하기를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합니다. 이 말은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한 말이지만 동시에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들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그런 자들에게서 돌아설 수 있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합니다. 그 안에서 하나님의 무한한 은혜와 무조건적인 사랑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보다 자기와 돈을 더 사랑하지 않게 될 수 있고, 부모를 거역하거나 감사할 줄 모르는 것과 같은 패역무도한 일로부터 돌아설 수 있는 것입니다.
어느 엄마가 저녁준비를 하고 있는데 어린 아들이 부엌에 와서 엄마에게 뭐라고 쓴 종이쪽지 하나를 내밀었습니다. 엄마는 앞치마에 손을 닦고는 그 종이를 받아 읽었습니다. 거기에는 이렇게 씌어 있었습니다: "잔디 깎은 값 5달러, 이번 주 내 침대 정리한 값 1달러, 가게 심부름 값 50센트, 엄마 가게 간 동안 동생 돌봐준 값 25센트, 쓰레기 버린 값 1달러, 좋은 성적표 받아온 값 5달러, 마당 쓴 값 2달러, 총 청구액 14.75달러."
자기가 청구한 금액을 엄마로부터 받을 것을 잔뜩 기대하고 있는 아이를 보면서 엄마의 마음속에는 만 가지 생각이 스쳐지나갔습니다. 잠시 후 엄마는 펜을 들어 그 종이 뒷면에 이렇게 썼습니다: "아홉 달 동안 내 배 속에서 너를 키운 값 무료, 너 아플 때마다 잠 못 자고 너를 위해 기도하고 간호해준 값 무료, 수년 간 너를 위해 시간 투자하고 너를 위해 눈물을 흘린 일들 무료, 모두 다 더하면 네게 준 내 사랑의 값은 무료구나. 또 네 걱정으로 가득했던 나날들, 네 장래를 위해 한 염려들 무료. 네게 준 충고와 가르쳐준 값, 네 학교 교육비 무료. 장난감, 음식, 옷, 네 콧물 닦아준 일도 무료란다, 내 아들아. 다 더해도 나의 모든 사랑의 값은 무료란다."
엄마가 쓴 글을 다 읽은 아이의 눈에는 커다란 눈물이 글썽이고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엄마를 올려다보며 말했습니다: "엄마, 정말 사랑해." 그리고는 펜을 들어 자기가 내밀었던 청구서 맨 아래에 아주 크게 이렇게 썼습니다: "완불." 참 사랑의 값은 그냥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들을 볼 줄 아는 믿음의 눈을 가진 사람이라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비싼 것들을 날마다 무료로 주시는 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날마다 주시는 햇빛 무료, 날마다 숨 쉬는 공기 무료, 때를 따라 하늘에서 내리는 비 무료, 아름다운 하늘과 산과 강과 바다 무료, 하늘에서 즐기는 달과 별 무료, 산과 들에 철따라 바뀌며 피는 예쁜 꽃들 구경 무료, 겨울철의 새하얀 눈도 무료, 나에게 생명을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신 것도 무료, 지금까지 연장시켜주신 수십 년의 내 생명도 무료, 앞으로 살 수십 년도 무료, 온갖 생각을 하고 많은 것을 깨닫도록 주신 두뇌 무료, 놀라운 세상 실컷 구경하도록 주신 눈 무료, 숨 쉬고 냄새 맡을 수 있도록 주신 코 무료, 온갖 소리 들을 수 있도록 주신 귀 무료, 맛있는 음식 먹을 수 있고 말을 할 수 있도록 주신 입 무료, 온갖 놀라운 일들을 행할 수 있도록 주신 손 무료, 가고 싶은 데 맘껏 다닐 수 있도록 주신 발 무료, 하나님이 주신 얼굴 뜯어고치는 것은 유료. 머리에 덮이게 하신 머리카락 무료, 가발은 유료.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죄 때문에 죽을 수밖에 없게 된 우리를 살려주신 은혜가 무료라는 것입니다. 우리 대신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 무료, 그 예수 그리스도 만나는 것 무료. 그의 사랑 무료, 그의 말씀 무료, 그의 제자 되는 것 무료, 우리에게 오신 성령 무료, 성령께서 우리에게 맺히게 하신 그 많은 열매 무료, 하나님나라에서의 영원히 복된 삶 무료, 그 나라에서 누릴 하나님의 영광 무료. 생각하면 할수록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공짜 선물은 한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입이 만 개가 있어도 이루 다 감사할 수 없는 은혜입니다. 사도 바울은 롬3:23-24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렇게 놀라운 은혜를 입은 백성이라면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것 다 바쳐도 모자라기만 할 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너무 배은망덕하거나 인색한 삶을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가 가지고 있고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께서 무료로 주신 것인데 우리는 그것을 움켜쥐고 하나님을 위해, 그의 뜻을 이루기 위해 바칠 줄 모른 채 바득거리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우리가 바치는 것에 비해 하나님께서 베푸실 것은 비교도 안 되게 크고 풍성한데 어리석은 계산을 하면서 하나님의 복을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를 돌아볼 수있기를 바랍니다.
한 아버지가 4남매를 잘 키워 모두 대학을 졸업시키고 시집장가 다 보내고 한 시름 놓으려 할 때 그만 중병에 걸린 사실을 알고는 어느 날 아들들과 며느리, 딸과 사위를 모두 불러 모으고 말했습니다: "내가 너희들을 키우고 대학 보내고 시집장가 보내고 사업을 하느라 7억 원 정도 빚을 졌다. 알다시피 내 건강이 안 좋고 이제 능력도 없으니 너희들이 얼마씩 좀 갚아다오. 이 종이에 각자 얼마씩 갚겠다고 좀 써다오." 아버지 재산이 좀 있는 줄 알았던 자식들은 서로 얼굴만 멀뚱히 쳐다보며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형제 중 그리 잘 살지 못하는 둘째 아들이 종이에 5천만 원을 적었습니다. 그러자 마지못해 나머지 자식들은 경매가격을 매기듯 종이에 적었습니다. 큰아들이 2천만 원, 셋째 아들이 천오백만원, 딸이 천만 원을 적은 것입니다. 그 후로는 문병 한 번 없고 그 흔한 휴대전화로 안부 한 번 묻지 않는 자식들을 아버지는 다시 모두 불러 모았습니다. 이번에는 며느리들과 사위는 오지 않고 네 남매만 왔습니다. 아버지가 입을 열었습니다: "내가 죽고 나면 너희들이 얼마 되지 않는 유산으로 싸움질하고 형제간 반목할까봐 내 전 재산을 정리하고 공증까지 마쳤다. 지난번에 너희가 각자 적어준 액수의 다섯 배씩을 지금 준다. 이것으로 내가 너희에게 줄 재산상속은 끝이다. 큰애 넌 1억이다. 둘째는 2억5천이다. 셋째는 7천5백이다." 그리고 딸에게는 "너는 5천만 원이다." 했습니다. 상속을 적게 받은 자식들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있었던 실화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바치는 것의 다섯 배가 아니라 오십 배, 오백 배, 오천 배, 아니 그 이상의 무한한 복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교회가 새 성전을 건축하기로 하고 건축헌금을 모으는 지 벌써 만 6년이 지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큰 복 받을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건축헌금이 우리에게 시험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오히려 기쁨으로 드리고 더 놀라운 은혜와 복을 누리는 기회가 되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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