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도 드문 고산습지인 '제주 '숨은물뱅듸'가 람사르 습지에 등록됐다.
'뱅듸'는 벌판을 뜻하는 제주 방언으로 물을 머금은 넓은 벌판이 숨어 있다는 의미다.
숨은물뱅듸는 한라산 중턱 980m 고지에 위치해 있는데 삼형제샛오름, 노르오름, 살핀오름 사이에 습지를 형성하고 있다. 구멍이 숭숭 뚫린 현무암으로 생성된 화산지대의 산 중턱에 이런 평지가 있고 이 평지가 습지라는 건 대단히 이례적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지표수가 흔하지 않은 화산섬의 지질 특성에도 불구하고 한라산 고지에 발달했다"며 "투수성이 낮은 조면 현무암으로 구성되고 습지식물로 인한 두꺼운 이탄층이 생성돼 습지가 지속적으로 유지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습지 표면 아래에는 식물의 사체로 이뤄진 진흙이 있는데 이 층이 물이 빠지는 것을 막아주는 것이다.
습지는 일반적으로 생물다양성의 보고(寶庫)로 불린다. 물이 1년 내내 마르지 않아 동식물이 모이고 자연스럽게 먹이사슬을 통해 서로 유기적으로 작용하면서 공존하기 때문이다.
숨은물뱅듸는 여기에 원시성을 유지하며 주변 생태계에 중요한 서식처를 제공한다는 특징이 더해졌다.
제주대 오홍식 교수는 "숨은물뱅듸는 습지를 중심으로 산림생태계가 연속적으로 연결돼 있어 원시성을 유지하고 있다"며 "지역 생태계의 핵심거점으로 중요한 서식처를 제공한다. 고산지대지만 짧은 시기에 많은 동식물을 볼 수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환경부 관계자도 "1000m 이상 오름 3개에 둘러싸인 와지 형태의 환사면에 발달해 있어 주변의 오름 생태계와도 연결된다"고 특기했다.
실제 이곳에는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이며 식충식물 자주땅귀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두견 등 490종 이상의 야생생물이 서식하고 있다.
정부는 람사르 습지 등록에 따라 숨은물뱅듸의 보존관리계획을 수립하는 한편 이 곳을 생태관광으로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생태자원의 보전·관리를 단순 규제중심에서 현명한 이용으로 전환하는 것으로 생태계 보호의 중요성을 교육함과 동시에 지역 경제에도 도움을 주기 위해서다.
관건은 습지와 인간의 공존을 위한 균형점을 찾는 것이다. 제주 동백동산 습지의 경우 먼물깍습지 한곳만 교육용으로 개방하고, 나머지는 일반인 출입 금지 구역으로 정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습지의 경우 이용객이 많으면 사람 발길에 따라 땅속 물길이 달라져 습지의 형성에 악영향을 준다"며 "생태계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목제 데크로 길을 연결하고 개방 장소를 제한하는 등의 관리 계획을 마련할 것이다"고 했다.
현원학 제주생태교육연구소 소장은 "습지 보호 관리에 어려운 점은 주민과의 소통과 공생이다. 보호구역 지정을 규제로 인식해 반대하는 주민들이 여전히 많다"며 "지역 주민과의 공생을 위해서도 인간과 자연의 접점을 찾으며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되는 생태관광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