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방이 잠든 줄 알고 추행 행위를 했더라도 실제론 깨어 있으면서 잠든 척을 하고 있던 상황이라면 유사강간 내지 강제추행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는 당사자의 의사에 반하는 추행에 해당하더라도 폭행이나 협박, 기습적인 유형력을 수단으로 사용하지 않은 '단순추행'일 경우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처벌하지 못하는 현재의 법 체계를 명확히 한 것으로 대법원의 판단이 주목된다.
서울고법 형사12부(부장판사 이원형)는 지인의 여자친구가 잠든 줄 알고 추행해 유사강간 혐의로 기소된 강모(37)씨에게 원심과 같이 무죄를 선고했다고 19일 밝혔다.
강씨는 지난해 5월 자신의 집에서 술을 마시다 잠이든 지인의 여자친구 A씨의 신체를 손으로 더듬거나 민감한 부위에 부적절한 신체접촉을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강씨는 A씨가 이붕을 들춰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잠들었다고 생각해 이 같은 행동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당시 A씨는 잠들지 않은 상태였고, 잠에서 깨어난 티를 내면 난처한 상황이 벌어질 것을 우려해 계속해서 잠든 척을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1심 재판부는 "강씨가 추행 과정에서 A씨의 항거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의 유형력을 행사한 사실은 없었다"며 유사강간죄가 성립할 정도의 폭행·협박이 없었다고 봤다.
검찰은 이에 "유사강간죄가 성립되지 않더라도 기습적으로 추행이 이뤄졌기 때문에 사실상 A씨의 항거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며 "강씨의 행위는 기습적인 유형력 행사에 의한 강제추행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1심 재판부는 그러나 강씨가 A씨를 추행하기 전 이불을 들추는 등 충분히 추행을 예견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는 점을 토대로 "강씨의 추행이 기습적으로 실현돼 사실상 항거가 불가능하거나 곤란한 상황이었다고 할 수 없다"는 판단을 했다.
1심 재판부는 다만 강씨가 A씨가 잠들었다고 생각해 추행을 한 점에서 심신상실·항거불능인 상대방을 추행한 경우에 적용되는 '준강제추행'의 범의는 인정된다고 봤다. 준강제추행은 공중밀집장소에서의 추행과 함께 우리 법상 폭행·협박 등이 수단으로 사용되지 않는 단순추행이라도 처벌하는 예외적 경우에 속한다.
그러나 A씨가 실제론 깨어있었다는 점에서 준강제추행죄가 성립되기 위한 '심신상실·항거불능' 요건이 충족되지 않아 이 역시 유죄로 인정되지 않았다. 아울러 추행이 이뤄진 강씨의 안방은 지하철 등 공중밀집장소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공중밀집장소에서의 추행 혐의 역시 적용되지 않았다.
2심 재판부 역시 1심 재판부의 이 같은 판단이 정당하다고 봤다. 2심 재판부는 다만 A씨의 남자친구가 강씨의 부하직원이었던 점 때문에 A씨가 '사실상의 위력'을 느껴 저항하지 못한 것으로 판단했다. A씨가 자신이 저항할 경우 남자친구에게 불이익이 가해질지도 모른다는 우려로 저항을 못했다는 것이다.
2심 재판부는 그러나 이 경우에도 미성년자에 대한 위계·위력 간음만 처벌하는 우리 형법에 따라 성인인 A씨가 사실상의 위력을 느꼈다고 해서 위계·위력에 의한 간음죄로 강씨를 처벌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결국 폭행·협박에 의한 강제추행, 위력 등에 의한 추행, 준강제추행 등 우리 법상 추행과 관련해 규정된 어떤 조항으로도 강씨는 처벌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결론이다. 검찰은 현재 이 사건 1, 2심 판결에 불복해 상고장을 제출한 상황이다.